엔비디아가 일론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 지분을 대규모로 보유한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자사 AI 반도체를 가장 많이 사들이는 고객사의 주주가 된 셈이다.
엔비디아는 14일(현지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13F 보고서를 제출했다. 13F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관투자자가 분기마다 자신이 보유한 주식 내역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한 제도다.
이 보고서에서 엔비디아는 6월 말 기준 스페이스X 클래스 A 보통주 1억2280만 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주가로 환산하면 약 210억 달러 규모다. 엔비디아가 외부에 공개한 투자 중 반도체 회사 인텔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지분이다.
엔비디아가 이 지분을 직접 사들인 것은 아니다. AI 스타트업 xAI에 넣었던 투자가 스페이스X 지분으로 바뀐 결과다. xAI는 머스크가 만든 챗봇 '그록'을 개발하는 회사로, 올해 초 스페이스X에 흡수 합병됐다. 당시 합병은 스페이스X 기업가치를 1조 달러, xAI를 2500억 달러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엔비디아는 앞서 2025년 xAI에 20억 달러를 투자했는데, xAI의 대규모 컴퓨터 시설에 자사 칩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 투자를 위해 엔비디아는 별도의 투자 전용 회사를 세워 자금을 넣었고 xAI가 스페이스X에 편입되면서 지분이 자동으로 스페이스X 몫으로 전환됐다.
단순히 지분이 굴러들어온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두 회사의 사업적 결속은 최근 급격히 강해지고 있다. 스페이스X는 지난 4일 상장 후 첫 실적 발표에서 앞으로 모든 AI 서비스를 엔비디아 하드웨어로만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머스크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반도체 설계 방식인 '베라 루빈'을 최고의 AI 컴퓨터라고 평가하며 엔비디아 전용 체제로 가겠다고 밝혔다. 스페이스X는 이미 위성통신부터 AI 운영까지 대부분을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로 돌리는 대규모 연산 설비를 운영해왔다.
GPU는 원래 그래픽 처리용 부품이지만 방대한 계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능력 덕분에 AI 학습의 핵심 장비로 쓰인다.
물량 규모가 상당하다. 스페이스X는 자사의 대형 AI 학습 시설 '콜로서스'와 '콜로서스 II'를 운영하며, 지난 5월 AI 기업 앤스로픽과 엔비디아 GPU 약 32만5000개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6월에는 구글과도 GPU 약 11만 개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스페이스X는 올해 말까지 2기가와트, 2027년 말까지 약 10기가와트 규모의 연산 능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사가 쓸 칩을 사들이는 동시에 다른 AI 기업에 연산 능력을 되파는 구조여서,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최대급 수요처를 확보한 형태다.
우주로 사업을 넓히려는 계획도 배경으로 꼽힌다. 스페이스X는 엔비디아와 손잡고 '스타마인드'라는 궤도 위성군을 추진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를 지상이 아닌 우주 궤도에 올려 AI 연산을 돌리겠다는 구상이다. 머스크는 엔비디아 시스템의 최적화 버전을 탑재한 첫 위성을 내년부터 발사하겠다고 밝혔다.
칩을 파는 회사가 그 칩을 사는 회사의 주주가 되는 구조는 이례적이다. 대형 반도체 기업이 최대 고객사의 지분을 상당량 들고 있는 사례는 흔치 않다. 이 때문에 두 회사의 독점 계약이 반도체 수출 규제나 독과점 심사에서 도마에 오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시 자체가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았다. 발표 직후 금요일 시간외 거래에서 스페이스X는 0.35% 오르고 엔비디아는 0.12% 내렸다. 연초 이후 흐름은 엇갈렸다.
엔비디아는 약 20% 상승한 반면 스페이스X는 6월 상장 이후 약 7% 하락했다. 상장 직후 내부 주주들의 물량이 시장에 풀린 데다 스타링크 위성망과 차세대 로켓 스타십, AI 설비에 쏟아부어야 하는 막대한 투자 부담이 주가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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