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 투자자 마이클 버리가 건설·중장비 제조사 캐터필러를 상대로 생애 처음으로 공매도에 나섰다.
공매도는 주가가 내릴 것으로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서 먼저 판 뒤 나중에 더 싼값에 되사서 갚는 투자 기법이다. 예상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그 차익만큼 이익을 보지만 반대로 주가가 오르면 손실이 무한정 커질 수 있어 일반적인 주식 매수보다 위험한 방식으로 꼽힌다.
버리는 2008년 미국 부동산 시장이 무너질 것에 베팅하는 데 이 전략을 활용해 이름을 알렸다. 버리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구독형 소식지에 올린 글에서 캐터필러 주식을 주당 1060.98달러에 공매도했다고 밝혔다.
그는 캐터필러가 눈에 확 들어왔고 지금까지 한 번도 이 회사를 공매도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주가 상승에 베팅하는 매수 포지션으로 늘 좋은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버리가 이 회사를 지목한 배경에는 AI 투자 열풍이 있다. 캐터필러는 굴착기와 불도저 같은 중장비를 만드는 회사지만 최근 AI 산업의 최대 수혜주 중 하나로 떠올랐다. AI 데이터센터는 반도체 칩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대규모 전산 시설을 지으려면 부지 조성과 콘크리트 공사는 물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발전기와 냉각 설비가 필요하다.
이 장비들이 바로 캐터필러가 파는 제품이다. 특히 노후화된 전력망이 AI 시설의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이 현장에 직접 설치하는 디젤·가스 발전 시스템을 찾기 시작한 점이 수요를 키웠다.
빅테크 기업들이 올해 AI 인프라 구축에 쏟아붓는 돈은 총 7500억 달러에 이른다. 이 자금이 반도체를 넘어 산업 장비 공급망 전체로 흘러들면서 캐터필러 주가도 함께 치솟았다. 캐터필러는 올해 상반기에만 주가가 86% 올라 S&P 500 지수에 편입된 종목 가운데 가장 성적이 좋은 축에 들었다.
투자자들이 이 회사를 글로벌 AI 인프라 건설의 대리 투자처로 받아들인 결과다.
버리는 이 상승세가 실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은 거품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캐터필러의 주가매출비율이 최소 30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고 지적했다. 주가매출비율은 주가를 회사의 매출과 비교한 지표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회사가 실제 벌어들이는 매출에 비해 주가가 과도하게 비싸다는 뜻이다.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한 분석 지표에서도 캐터필러의 적정 가치는 417.84달러로 계산돼 당시 주가가 적정선보다 약 155%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3개월 동안 회사 내부 임원들이 8760만 달러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운 점도 고평가 신호로 읽혔다.
캐터필러는 버리가 겨냥한 여러 표적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는 같은 날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와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전기차 업체 테슬라, 그리고 반도체 종목을 묶은 상장지수펀드(ETF)에도 공매도 포지션을 새로 잡았다. 그는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200일 이동평균선보다 약 65% 높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동평균선은 일정 기간의 평균 주가를 이은 선으로 실제 주가가 이 평균에서 크게 벗어날수록 시장이 과열됐다는 신호로 본다. 버리는 이 정도로 벌어진 것은 2000년 닷컴 버블 당시에만 나타났던 현상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번 랠리의 직접적인 방아쇠로 한국발 대규모 투자 발표를 꼽기도 했다.
버리의 판단에 반론도 나온다. 캐터필러를 담당하는 프리덤 브로커의 세르게이 글리냐노프 선임 애널리스트는 버리의 공매도가 주가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캐터필러 주가가 AI 과열 때문이 아니라 인프라 지출의 구조적 변화 덕분에 오르고 있다는 점을 버리가 놓쳤다고 지적했다. 노후 전력망을 대체하려는 현장 전력 시스템 수요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버리가 공매도에 나선 직후 캐터필러 주가는 실제로 흔들렸다. 지난달 30일 공매도 이튿날인 7월 1일 주가는 7% 가까이 떨어져 마감했고 그다음 날에는 한때 4% 더 하락하며 6월 중순 이후 최저치인 949달러 선까지 밀렸다. 다만 버리가 실제로 얼마나 큰 규모로 공매도했는지는 다음 분기 투자 내역 공시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날 예정이다.
(썸네일 사진 출처: 캐터필라 공식 홈페이지)
BEST 뉴스
-
400억 달러 AI 펀드 '파산설'…반도체주 덮친 청산 공포
AI 전문 헤지펀드 '밸류얼라인드리서치어드바이저스(VARA)'의 파산설이 글로벌 반도체주 급락의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헤지펀드는 소수 거액 투자자의 돈을 모아 공격적으로 운용하는 펀드다. 실제 청산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VARA가 대량 보유한 종목들이 이번 주 매도세의 한가운데 있었다. 15일(미국 동부... -
캐시 우드 '스페이스X 줍줍' 멈췄다…로빈후드 팔고 코어위브·베라사이트 담아
'돈나무 언니'로 불리는 캐시 우드가 이끄는 미국 자산운용사 아크인베스트먼트(ARK Invest)가 지난주 스페이스X 지분 일부를 처분했다. 지난 6월 상장 이후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사들이던 종목이다. 같은 기간 아크는 AI·바이오·방산 기술주를 늘리고 로빈후드와 테라다인 등 많이 오른 종목은 덜어냈다. 12일 시킹... -
일자리 2만9000개 '고용 쇼크'에 웃은 월가…나스닥100 사상 최고치
미국의 9월 일자리 증가 폭이 시장 예상의 3분의 1 수준에 그치자 뉴욕증시가 일제히 올랐다. 고용 둔화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추가 금리 인상을 미룰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2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0.5% 오른 5만1176.96에 장을 마쳤다. 대형주 500... -
"팬더는 왔지만 반도체는 없었다"…미중 정상회담 성과는 '두 달짜리 휴전 연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국빈 방문이 25일(현지시간) 마무리된다. 사흘간의 일정에서 나온 가장 큰 성과는 양국 무역 휴전을 두 달 연장하기로 한 합의다. 그 외에 AI 부문이나 지정학 현안에서 눈에 띄는 돌파구는 나오지 않았다. 휴전 연장은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날 이미 공개됐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
연일 치솟는 국채금리…베선트가 급히 부른 '월가 채권통'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28일(현지시간) 월가 이코노미스트 데이비드 저보스를 재무장관실 카운슬러로 영입했다. 국채 금리가 19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며 채권시장이 흔들리는 국면에서 시장과 직접 대화할 인물을 전면에 세운 것이다. 카운슬러는 장관을 보좌하는 고위 자문직으로 상원 인준이 필요 없어 ... -
트럼프 "경유 수출 막자"…에너지장관도 재계도 유럽도 반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유 수출을 제한하거나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국제 석유제품 시장이 출렁였다. 22일 유엔총회가 열린 뉴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경유를 내보내지 말자고 행정부 내부에서 주장해 왔다며 결정은 빠르게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있던 스콧 ...
전체댓글 0
NEWS TOP 5
실시간뉴스
-
스타링크, 미국 4번째 이동통신사 노린다…"2036년 점유율 13%"
-
400억 달러 AI 펀드 '파산설'…반도체주 덮친 청산 공포
-
거꾸로 달리고 공중제비 돌았다…테슬라 '나는 스포츠카' 로드스터 9년 만에 공개
-
캐시 우드 '스페이스X 줍줍' 멈췄다…로빈후드 팔고 코어위브·베라사이트 담아
-
유럽이 끌어올린 테슬라…3분기 48만대 인도로 월가 예상 '완파'
-
아마존, 엔비디아 AI칩 80억달러어치 "팔고 다시 빌려 쓴다"
-
마이클 버리 "AI 열풍, 1960년대 컴퓨터 임대 버블과 닮았다"
-
S&P500 기업들 지금 너무 잘 번다?…골드만삭스 "거품 아닌 일시적 현상"
-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60여 년 만에 버크셔 회장직도 내려놨다
-
빅테크 몸값, 시장 평균으로 내려앉아…골드만 "프리미엄 사실상 소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