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미국 나스닥 증권시장 상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성사되면 국내 반도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 증시에 입성하게 된다.
회사는 지난 3월 24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상장을 위한 등록신청서를 비공개로 제출했다. 미국 투자자가 한국에 상장된 주식을 직접 사기는 어렵기 때문에 SK하이닉스는 주식예탁증서(ADR) 방식을 택했다.
한국 주식을 은행에 맡겨두고 이를 근거로 미국 시장에서 거래되는 별도의 증서를 발행하는 구조다. 미국 투자자는 이 증서를 사고팔며 달러로 SK하이닉스에 투자할 수 있다. 4월에는 씨티, JP모건,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를 상장 실무를 맡을 주관사로 정했다.
남은 관문은 SEC 심사다. 미국 현지 시간 22일 심사 결과 발표가 예정돼 있었지만 한국 시간 23일까지 승인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SK하이닉스 측은 SEC가 특정 날짜에 일괄적으로 허가를 내주는 방식이 아니라 회사가 낸 서류를 두고 추가 질문과 답변을 계속 주고받는 구조여서 승인 시점을 확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승인이 나면 이르면 7월 말에서 8월 초 상장이 가능할 전망이다. 7월 말 2분기 실적 발표와 시기가 겹치면 해외 투자자를 상대로 한 재평가 효과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SK하이닉스가 미국행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저평가다. 현재 SK하이닉스의 주가는 1년 뒤 예상 이익 대비 6.6배 수준에 거래된다. 같은 메모리 반도체를 만드는 미국 마이크론은 10배가 넘는다. 비슷한 사업을 하는데도 한국 증시에만 있다는 이유로 절반 수준의 평가를 받아온 셈이다.
미국에 직접 상장하면 미국 시장에만 투자하도록 정해진 대형 펀드와 반도체 전용 펀드의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 특정 지수를 그대로 따라 사는 패시브 자금도 들어온다. 나스닥과 미국 대표 반도체 지수에 편입되면 이 지수를 추종하는 돈이 자동으로 유입되는 구조다.
상장 방식은 새 주식을 찍어내는 신주 발행이 유력하다. 시장에서는 발행 주식의 약 2.5%, 가치로는 최대 270억달러어치가 거론된다. 원화로는 40조원 안팎이다.
발행 한도에는 제약이 있다. 지주회사인 SK스퀘어가 지분 20% 이상을 유지해야 해 SK하이닉스가 새로 찍을 수 있는 주식은 기존 주식 수의 2.5%, 약 1780만주로 묶인다. 다만 회사 측은 이런 수치가 외부 추정일 뿐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1주당 가격은 수요 조사를 거쳐 상장 하루 전쯤 정해지고 정확한 발행 물량도 국내 금융당국에 신고서를 내는 시점에 공개된다.
조달한 돈은 생산 능력을 늘리는 데 쓰인다. AI 서버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여러 개의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고부가 제품이다. 회사는 이 HBM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한 새 공장 건설과 기존 라인의 첨단 공정 전환에 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다.
칩을 쌓아 붙이는 패키징 라인과 먼지 하나 없는 생산 공간인 클린룸 확보가 우선순위로 꼽힌다. 가장 큰 투자처는 총 사업비가 600조원까지 거론되는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다. 1기 공장에만 31조원이 들어갔다. 충북 청주 공장과 미국 인디애나주 공장도 대상이다.
이번 상장으로 SK하이닉스는 곽노정 사장이 내건 순현금 100조원 확보 전략을 달성할 수 있다. 빚을 뺀 현금을 100조원 이상 쌓아 미래 투자에 쓰겠다는 구상으로 삼성전자와 대등한 자금력을 갖추겠다는 뜻이다. 40조원이 들어오면 이 목표는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삼성전자도 미국 상장 압박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 주식을 10년 넘게 보유한 미국 운용사 아티잔파트너스는 삼성전자 역시 ADR을 상장해 제값을 받아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다만 삼성전자는 자금 조달이 급하지 않아 새 주식을 찍을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메모리와 비메모리 모바일 사업이 한 회사에 묶인 복잡한 지배구조도 걸림돌이다. 미국에 상장하면 사업부 사이의 내부 거래까지 미국 기준에 맞춰 공개해야 해 경쟁사에 정보가 새어나갈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00년대 초에도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다 실익이 없다며 접은 전례가 있다.
기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 주식을 찍으면 기존 주주가 가진 주식의 가치는 그만큼 묽어진다. 2004년 미국에 상장했던 LG디스플레이는 15달러로 출발한 증서 가격이 현재 4달러 중반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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