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2일 미국 워싱턴DC 인근에서 송전선 한 가닥이 끊겼다. 통상 이런 사고는 전력망이 몇 초 만에 스스로 회복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회복까지 10분 넘게 걸렸다. 3기가와트가 넘는 데이터센터가 거의 동시에 전력망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이 사고는 미국 최대 전력망 운영기관인 PJM 인터커넥션이 관리하는 그리드에서 발생했다. PJM은 뉴저지주에서 일리노이주까지 13개 주 6700만 명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미국 최대 전력망 운영기관이다. 사고의 진앙은 미국 북부 버지니아였다. 전 세계에서 데이터센터가 가장 밀집한 지역이다.
문제의 메커니즘은 이렇다. 전력망은 공급과 수요가 거의 완벽하게 맞물린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둘의 균형이 깨지면 전압이 처지거나 치솟는다.
이날 송전선이 끊기자 버지니아의 데이터센터들은 전압이 흔들리는 것을 감지하고 일제히 자체 백업 전원으로 전환했다. 데이터센터가 전력망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한 곳이 이탈하자 다른 곳들도 연달아 이탈했고 약 30초 만에 3.1기가와트의 수요가 사라졌다.
갑자기 쓰던 곳이 사라지면서 남아도는 전기가 전력망에 몰렸다. 최고점에서 PJM 전력망에는 3.49기가와트의 전기가 추가로 얹혔고 안정을 되찾기까지 11분이 더 걸렸다.
정전은 없었지만 이 지역 곳곳에서 전등이 깜빡였다. 전압 급등은 버지니아에서 시카고까지 퍼졌다. 이 데이터를 포착한 곳은 가정용 콘센트에 꽂는 사물인터넷(IoT) 센서 망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팅랩스(Ting Labs)다. 화재 예방용 전기 감지 센서를 100만 가구 이상에 공급해온 이 회사는 지난 21일 사명을 위스커랩스에서 팅랩스로 바꿨다.
이번에 빠져나간 데이터센터는 사고 당시 PJM 전체 수요의 약 3%였다. 몇 퍼센트로 들릴 수 있으나, 전력망은 작은 변동은 견뎌도 그 폭이 커지면 안전장치가 작동해 설비가 스스로 떨어져 나가는 구조다. 작은 공급 감소가 더 큰 수요 감소로 번진 것이 이번 사고의 본질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고가 앞으로 더 잦아질 것으로 본다. 에너지 솔루션 기업 온에너지(ON.Energy)의 최고기술책임자 히카르두 지 아제베두는 이번 사고를 탄광 속 카나리아에 빗대며 데이터센터처럼 거대한 전력 수요가 얽힌 사고가 갈수록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이번 사고는 2년 전과 판박이다. 2024년 7월에도 같은 PJM 전력망에서 버지니아 데이터센터 약 60곳이 동시에 이탈해 1.5기가와트가 빠져나갔다. 이번 규모는 그때의 두 배다. 데이터센터가 PJM 전력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당시 약 6%였으나 2040년에는 24%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해법은 두 갈래다. 하나는 이탈과 재접속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서로 붙어 있는 데이터센터들이 동시에 떨어져 나가는 대신 순차적으로 끊고 다시 붙게 만들면 전력망 운영자가 미리 대응 절차를 마련할 수 있다. 데이터센터들이 수 초 사이에 일제히 판단해 이탈한 것이 이번 사고를 키웠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데이터센터가 아예 흔들림을 흡수하도록 짓는 것이다. 온에너지는 데이터센터 단지 전체를 대형 배터리와 전력 변환 장비 뒤에 숨기는 방식을 개발했다.
서버뿐 아니라 냉각기 등 부속 설비까지 배터리가 감싸면 전력망은 각 설비의 들쭉날쭉한 수요 대신 하나의 안정된 수요만 보게 된다. 이 방식은 전력망이 흔들릴 때 데이터센터를 떼어내는 대신 남는 전기로 배터리를 충전하고, 전기가 부족해지면 배터리에서 서버로 전기를 보낸다.
밀리초 단위로 전력망 상황을 따라가 전압이 처지거나 치솟는 것을 막는다. 온에너지는 현재 데이터센터 단지 네 곳에 총 3기가와트 규모의 이 시스템을 설치하고 있다.
전력망 관리 당국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텍사스 전력망을 운영하는 ERCOT는 데이터센터 같은 대규모 수요처가 전력망 장애를 스스로 견뎌내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하고 있다. 장애가 생겨도 곧바로 떨어져 나가지 말고 일단 버티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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