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를 만든 오픈AI가 회사 역사상 첫 하드웨어 제품을 세상에 내놨다. 스마트폰도, 로봇도 아닌 손바닥만 한 키패드다. 이름은 '마이크로(Micro)', 정식 명칭은 '코덱스 마이크로(Codex Micro)'다. 지난 15일 오픈AI 온라인 스토어에서 주문이 시작됐고 가격은 230달러다.
이 제품은 오픈AI가 단독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맞춤형 기계식 키보드 전문 업체 '워크 라우더(Work Louder)'와 함께 개발했다. 워크 라우더는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겨냥해 자주 쓰는 기능을 버튼 하나에 연결해주는 소형 키패드를 만들어온 회사다.
마이크로 역시 이 회사가 기존에 팔던 '크리에이터 마이크로 2' 제품을 오픈AI 버전으로 다시 꾸민 형태에 가깝다.
마이크로는 일반 키보드를 대체하는 물건이 아니다. 책상 위 키보드 옆에 두고 쓰는 보조 장치다. 정사각형 모양에 작은 조이스틱과 다이얼(회전 손잡이)이 달려 있다.
핵심 용도는 오픈AI의 AI 코딩 도구 '코덱스'를 조작하는 것이다. 코덱스는 사람이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프로그램 코드를 짜고 실행하는 AI 프로그램으로 이런 자율형 AI를 흔히 '에이전트'라 부른다.
키패드 윗줄에는 반투명한 '에이전트 키' 6개가 있다. 이 버튼들은 색으로 AI의 작업 상태를 알려준다. 흰색은 대기 중, 파란색은 생각하는 중, 초록색은 작업 완료, 빨간색은 오류가 났다는 뜻이다.
여러 개의 AI에게 동시에 일을 시켜놓고도 화면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버튼 불빛만으로 진행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오픈AI의 설명이다. 아랫줄의 명령 키 6개는 코드를 승인하거나 거부하고 새 대화를 시작하는 등 자주 쓰는 기능을 연결해 쓸 수 있다.
편의 기능으로는 음성 입력 버튼이 눈에 띈다. 이 버튼을 누른 채 원하는 작업을 말로 지시하면 AI가 알아서 일을 처리한다. 다이얼을 돌리면 AI가 문제를 얼마나 깊이 고민할지 조절할 수 있다. 간단한 작업은 빠르게, 복잡한 작업은 더 많은 계산 자원을 들여 신중하게 처리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컴퓨터와는 블루투스나 USB 케이블로 연결하며, 맥과 윈도우 모두 지원한다. 버튼을 누를 때 소리가 나는 방식과 조용한 방식 중 선택할 수 있고, 모든 설정은 챗GPT 앱 안에서 밝기부터 버튼별 기능까지 바꿀 수 있다.
오픈AI는 마이크로가 한정판 협업 제품이며 재고가 소진되면 판매를 종료한다고 밝혔다. 대중을 겨냥한 제품이라기보다 하드웨어 시장 진출을 알리는 상징적 성격이 강하다.
정작 실제 사용자층인 전문 개발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는 "장난이지 진짜 제품이 아니다", "진지한 개발자라면 손대지 않을 것"이라는 혹평이 이어졌다. 독립 매체 아프터매스(Aftermath)의 리뷰는 더 신랄했다.
이 매체는 리뷰 제목을 "오픈AI의 비싼 마이크로패드는 나를 열받게 하려고 설계된 것 같다"고 달았고 마우스와 키보드로 챗GPT를 쓰는 것이 번거로운 사람에게나 쓸모 있는 물건이라고 평가했다. 230달러라는 가격이 직접 만들거나 시중에서 파는 저렴한 대안에 비해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픈AI의 하드웨어 진출은 잡음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애플은 지난 10일 오픈AI를 상대로 영업비밀 절도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에서 아이폰과 애플워치 제품 디자인을 총괄하다 오픈AI로 옮긴 탱 유 탄(현 오픈AI 하드웨어 총괄)과 전직 전기 엔지니어 창 리우 등이 피고로 이름을 올렸다.
애플은 이들이 회사 기밀 문서와 제조 공정, 공급망 전략을 빼돌렸다고 주장한다. 리우가 회사 노트북을 반납하지 않고 내부망에 접속해 기밀 파일을 내려받았고 탄은 입사 지원자에게 애플 부품을 면접에 가져오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애플은 오픈AI로 옮긴 전직 자사 직원이 4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오픈AI는 다른 회사의 영업비밀에는 관심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마이크로와 별개로 오픈AI가 준비 중인 진짜 대형 제품은 따로 있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오픈AI는 화면이 없는 휴대용 스마트 스피커를 첫 소비자 기기로 개발 중이다.
이 제품은 아이폰을 디자인한 조니 아이브가 이끄는 팀이 맡고 있다. 카메라와 각종 센서를 달고 스스로 움직이는 부품을 넣어 살아 있는 동반자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다. 가격은 200~300달러 선, 공개는 올해 안, 출시는 2027년으로 전망된다. 다만 애플과의 소송이 이 일정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썸네일 사진 출처: 오픈AI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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