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교수 대신 창업, 개발 대신 검토…180도 바뀐 실리콘밸리 생태계

  • 글자크기설정

※ 배연수 특파원은 지금,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이 살아 숨쉬고 AI가 새벽마다 진화하는 바로 그 현장입니다. 미국 빅테크의 심장에서 일어나는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주 1회 생생한 리포트로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실리콘밸리 하면 누구나 ‘워라밸의 천국’을 떠올린다. 자유롭고 수평적인 문화, 오후엔 카페에서 노트북을 들고 일하다가 저녁엔 여유롭게 산책하는 개발자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회사마다 그 온도 차가 심했다. 

 

최근 오픈AI 엔지니어와 저녁을 함께하면서 들은 이야기는 내가 가지고 있던 인식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요즘은 새벽 두세 시까지 일하는 날이 대부분이다”라며 웃었지만 표정은 피곤해 보였다. 그의 팀도 마찬가지였다. 

 

프로젝트 마감이나 모델 업데이트가 있을 때면 다 같이 사무실 불을 끄지 않고 새벽까지 남아 일한다고 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개발자들도 그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잠을 줄이고 일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자율근무’나 ‘재택근무’로 대표되는 느슨한 문화로 알려져 있지만 오픈AI만큼은 예외였다. IPO(기업공개) 추진과 차세대 AI 모델 개발,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투자자와 사용자들의 요구까지 겹치며 엔지니어들의 하루가 끝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구글 시니어 엔지니어의 이야기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6시 퇴근이 기본이다. 주말에는 절대 일하지 않는다”라며 오히려 여유로워 보였다. 

 

구글은 직원이 스스로 일정을 관리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위에서 시키는 대로’보다는 ‘아래에서부터 아이디어가 올라오는’ 형태로 움직인다. 덕분에 직원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존중받지만 반대로 결정을 하나 내리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같은 사람이 전해준 애플 이야기는 정반대의 경우다. 위에서 결정하면 아래는 그 명령에 따라 즉시 움직인다. 애플 내부는 외부로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봉쇄되어 있어서 연구나 기술 문서를 외부에 공유하기 어렵고 오픈소스 같은 공개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제한된다. 

 

대신 이런 문화 덕분에 회사는 빠르고 강력하게 움직인다. 누가 결정권자인지가 명확하니 속도는 빠르다. 하지만 개발자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도 있다. 스스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기보다 위에서 정해준 방향을 구현하는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AI 개발자나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애플에서는 숨이 막힌다”는 말도 종종 나온다. 그래서 최근에는 구글이나 오픈AI처럼 좀 더 개방적이고 실험적인 분위기를 선호하는 개발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재미있는 건 이런 변화가 기술업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만난 한 변호사는 “이제 주니어 변호사는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판례 검색, 법령 리서치, 문서 초안 작성 같은 기본 업무를 챗GPT로 대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법률사무소에서 막 입사한 변호사들이 해야 했던 일을 이제 AI가 몇 초 만에 처리한다. 법조계조차 AI의 효율성 앞에서 구조가 바뀌는 중이다. 코딩도 비슷하다. 요즘 빅테크 기업들은 신입 엔지니어를 거의 뽑지 않는다. 대신 매니저나 경력직 위주로 채용한다. 이미 AI가 코드를 짜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픈AI 내부에서도 개발자들이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는다. AI가 코드를 만들어내면 엔지니어는 그걸 검토하고 수정하는 식이다. 즉, 사람이 하는 일은 이제 ‘만드는 일’이 아니라 ‘확인하는 일’로 바뀌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AI가 스스로 AI를 개발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된 셈이다. 

 

2.jpg

 

이런 실리콘밸리의 변화 흐름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던 자리가 있었다. 바로 지난 10월 30일,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열린 ‘Ph.D. × Tech Startup × VC Networking Day 2025’다. 

 

한국의 벤처캐피털 회사 SV인베스트먼트의 최일용 수석팀장이 주도한 행사로 그동안 서울에서만 열리던 네트워킹 이벤트를 올해 처음으로 미국 보스턴과 베이 에어리어로 확대한 것이다. 이 행사는 과학기술 스타트업뿐 아니라 금융, 법률, 회계, 특허 등 테크 비즈니스 전반에 걸친 전문가들이 모여 교류하는 자리였다. 

 

필자도 참석했는데, 당시 현장에는 100명 넘는 인원이 참석해 열기가 뜨거웠다. 행사는 SV인베스트먼트 소개로 시작해 한국과학창의재단 차대길 과학기술문화본부장이 한미 연구 교류 협력 방안을 발표했다. 이어진 ‘1분 파이어 토크’ 세션에서는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무대에 올라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짧게 소개했다. 

 

한국에서 개발자용 서버 접근 플랫폼을 만들고 미국에서 재출발 중인 ‘알파카X’, 정전기를 감지해 보이지 않는 정보를 시각화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소프티어닉스’, 타깃 단백질을 이용해 신약을 만드는 ‘매직불렛 테라퓨틱스’, 식품의 생산부터 유통까지 이력을 전자문서로 추적하는 비즈니스를 하는 ‘퓨처센스’ 등이 발표를 이어갔다. 

 

특히 퓨처센스는 “2028년부터 미국에 수출하는 유통사들은 식품의 이력을 전자문서로 관리해야 한다”는 FDA(미 식품의약국)의 새로운 규제를 미리 대비하고 있다고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행사장에는 스탠퍼드대 박사과정 연구자들도 다수 참석했는데 놀라운 건 그들의 진로였다. 이 지역에서는 이미 연구실에서 만든 기술로 창업해 성공하거나 회사를 매각한 사례가 많기 때문에 창업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진로처럼 여겨진다. 

 

과거에는 대학에 남아 교수가 되는 것이 연구자들의 자연스러운 목표였다면 이제는 대부분이 창업을 최종 경로로 보고 있었다. 기술을 논문으로 끝내는 대신 직접 사업화해 시장에서 검증받겠다는 흐름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박사과정 연구자 상당수는 “교수가 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창업이 목표”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여전히 일부가 교수직을 노리는 이유였다. 그들은 “교수가 되면 창업할 때 신뢰를 얻기 쉽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교수 출신 창업가’라는 타이틀이 투자자나 파트너에게 신뢰감을 주는 상징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교수직은 더 이상 학문의 종착점이 아니라 창업 성공을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사고 방식이다. 연구를 끝내면 바로 사업으로 이어지고 논문이 아니라 제품이 성과의 기준이 되는 분위기였다. 

 

지금의 실리콘밸리는 이처럼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실리콘밸리를 우리가 아는 하나의 이미지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실리콘밸리에 속한 사람과 기업들이 가진 철학과 리듬이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차이 속에서도 공통된 흐름이 있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면서 사람들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변호사는 AI로 판례를 찾고, 엔지니어는 AI가 짠 코드를 검토하고, 연구자는 연구실을 떠나 창업가로 변신하고 있다. 

 

기술이 일하는 방식과 일터의 문화를 바꿀 뿐 아니라 심지어는 사람의 선택까지 바꾸고 있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여전히 뜨겁게 움직이고 있지만 이제 그 중심에는 ‘AI와 함께 일하는 인간’이라는 새로운 풍경이 확연하게 자리잡은 것 같다.

ⓒ 와이이코노미 & yeconomy.ai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본 기사에 사용된 썸네일 이미지 중 별도의 출처가 명시되지 않은 이미지는 모두 Google Gemini AI 및 Nano Banana 2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전체댓글 2

  • 안진형2025-11-11 23:37:03

    생생한뉴스감사합니다

  • 안진형2025-11-07 07:15:18

    배연수 특파원/기자님 기사가 제일 알차네요! 생생한 실리콘밸리의 현장을 잘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교수 대신 창업, 개발 대신 검토…180도 바뀐 실리콘밸리 생태계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