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연수 특파원은 지금,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이 살아 숨쉬고 AI가 새벽마다 진화하는 바로 그 현장입니다. 미국 빅테크의 심장에서 일어나는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주 1회 생생한 리포트로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실리콘밸리에 대한 뉴스를 읽다 보면 대부분 AI가 앞으로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식의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가 먼저 보인다. 지난 3월 산호세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행사 GTC 2026 현장에는 190여 개국에서 3만 명이 넘는 참석자가 모였다.
젠슨 황 CEO가 약 2만 석 규모의 SAP 센터 무대에 오르자 관객은 일제히 환호했고 그는 차세대 AI 칩 블랙웰과 베라 루빈을 통해 2027년까지 1조 달러 규모 매출을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의료, 에너지 같은 사회적 난제들도 AI가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가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체감되는 것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지나친 경쟁, 언제든 AI로 대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이 사람들 사이에 깔려 있다.
먼저 이곳에 있다 보면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가기 벅차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새로운 AI 모델이나 툴이 매일같이 수십 수백 개씩 쏟아지다 보니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조차 그 속도를 따라가기 버겁다는 분위기가 깔려 있다.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보니 점점 더 많은 일을 하고 워라밸을 포기해 가면서 일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최근에 엔비디아에 다니는 지인을 만났는데 주 70시간은 기본이라고 할 정도로 업무 강도가 높다고 했다. 엔비디아는 실제로도 업무 강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미국 경제지 포춘은 엔비디아 직원들이 주 7일 일하거나 새벽 1~2시까지 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보도했다. 한 전직 마케팅 직원은 하루에 30명 이상이 참여하는 회의를 10번까지 참석한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엔비디아뿐만 아니라 베이 에어리어에 있는 많은 테크 기업과 스타트업 사이에는 하루 12시간 근무나 주말 근무 같은 높은 업무 강도를 당연시하는 'grinding' 문화가 이미 많이 퍼져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996' 근무 모델, 즉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주 72시간 근무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AI 코딩 스타트업 코그니션의 스콧 우 CEO는 인수한 회사 직원들에게 "워라밸을 믿지 않는다, 주말에 일하든지 퇴직금을 받고 떠나든지 선택하라"고 통보해 화제가 됐다.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도 제미나이 팀에 주 60시간 근무가 "생산성의 최적점"이라고 권고한 메모가 공개됐다. 지난 2월 AI 연구자 네이선 램버트와 세바스찬 라쉬카는 이런 996 문화가 실리콘밸리에 번아웃과 건강 문제를 가져오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AI와 기술이 발달하면 사람들은 좀 더 편해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오히려 AI나 AI를 더 잘 다루는 동료에 의해 대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람들로 하여금 더 열심히 더 오래 일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심리는 'FOBO(Fear of Becoming Obsolete·도태될 것에 대한 두려움)'라는 신조어로 불린다.
회계법인 KPMG 조사에서 미국 노동자 4명 중 약 1명이 AI로 인한 일자리 상실을 가장 큰 두려움으로 꼽았다. 1년 만에 거의 두 배로 늘어난 수치다. 현지 매체 SF 스탠더드가 4월 1일 보도한 내용을 보면, 실리콘밸리 심리치료사들은 환자의 80%가 AI 관련 종사자라고 말할 정도로 상담 수요가 폭증했다.
한 치료사는 "예전에는 환자가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말하면 정신질환 증세였지만 지금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우려"라고 표현했다.
경쟁이 치열해진 또 다른 이유는 극소수의 AI 스타 인재에게 돈이 몰리는 시장이 됐기 때문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수백억~수천억 원 단위 보상을 들여 경쟁적으로 인재를 영입하는 현상이 보도되면서 현장의 평범한 엔지니어들은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메타는 지난해 6월 데이터 라벨링 회사 스케일 AI에 143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28세 창업자 알렉산드르 왕을 첫 최고AI책임자(CAIO)로 영입해 큰 이슈가 됐다. 이어 애플의 파운데이션 모델 팀장이었던 루오밍 팡을 4년간 2억 달러 규모 패키지로 데려오는 등 4년간 3억 달러까지 제시하며 오픈AI, 구글, 앤트로픽에서 인재를 빼냈다.
오픈AI는 이에 맞서기 위한 방안으로 주식 보상을 선택해 2025년 직원 1인당 평균 주식 보상이 150만 달러에 달했다. 이는 과거에 여러 사람이 나눠 해야 했던 일들이 AI의 발전으로 효율성이 극대화되면서 소수의 뛰어난 인재가 AI의 도움을 받아 모두 처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스타 인재 영입전이 벌어지는 한편으로 일반 엔지니어들에 대한 정리해고도 이어지고 있다. 채용정보 사이트 레이오프 FYI에 따르면 2026년 1분기에만 약 8만 명의 테크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약 3만 명)의 2.5배가 넘는다.
4월 24일에는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가 각각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하며 합쳐서 2만 명 이상이 추가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였다. 닛케이 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1분기 감원의 약 절반이 AI와 워크플로 자동화로 인한 인력 수요 감소가 직접 원인이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여전히 각종 행사, 발표가 이어지고 엄청난 투자와 주가 관련 뉴스로 화려하지만 그 안에서 실제로 일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는 면은 확실히 다른 측면이 있다.
AI가 가져올 미래와 혁신에 대한 기대를 가지는 것과는 별개로 실제로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경쟁, 불안, 우울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충분한 대응책을 갖추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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