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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메모리에 손대기 시작한 애플...절박함일까 전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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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들어 AI 데이터센터가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를 흡수하면서 스마트폰과 PC에 들어가는 평범한 D램이 귀해졌다. 그 여파로 애플이 중국 최대 메모리 제조사인 창신메모리(CXMT)의 D램을 자사 제품에 넣어보는 시험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올여름 알려졌다. 

 

CXMT는 미국 국방부가 중국 군사기업으로 지정한 회사다. 세계에서 부품을 가장 까다롭게 고르기로 유명한 애플이, 하필 미국 정부가 견제하는 중국 기업의 부품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애플 주식을 들고 있는 투자자라면 이 소식이 회사에 좋은 신호인지 나쁜 신호인지 판단해야 한다. 

 

마진이 무너지기 시작한 위기의 전조인지, 아니면 잠깐 아픈 회사가 약을 찾는 당연한 행동인지에 따라 해석이 완전히 갈리기 때문이다. 소문과 추측이 뒤섞여 있는 이 사안에서 확정된 사실만 추려 하나씩 짚어본다.


지금 애플과 중국 메모리를 둘러싸고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애플은 2026년 들어 아이폰과 맥북을 포함한 여러 제품에 CXMT의 D램을 실제로 넣어보는 검증에 착수했다. 새 부품을 양산 제품에 쓰기 전에 성능과 안정성이 자사 기준을 충족하는지 확인하는 이 과정을 업계에서는 퀄리피케이션(qualification)이라 부른다. 

 

통과하면 공급사로 승인되기 직전 단계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애초 목표는 중국에서 판매하는 기기에만 CXMT 메모리를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애플의 구상은 더 큰 규모였다. 7월 하순 팀 쿡 최고경영자(CEO)와 고위 임원들이 미국 상무장관과 재무장관, 트럼프 대통령에게까지 직접 접촉해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파는 애플 제품에도 CXMT 칩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계획은 백악관과 의회 차원에서 곧바로 제동이 걸렸다. CXMT와 또 다른 중국 업체 양쯔메모리(YMTC)가 모두 미국 국방부가 관리하는 중국 군사기업 명단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의 돈으로 중국 군과 연결된 회사를 키워주지 말라는 것이 반대의 논리였다.


공화당 짐 뱅크스 의원과 민주당 척 슈머 원내대표가 공동으로 주도한 초당적 서한은 애플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CXMT와 YMTC의 칩을 미국이든 해외든 어떤 애플 제품에도 넣지 않겠다고 8월 21일까지 서면으로 답하라는 내용이다. 

 

애플은 2022년에도 YMTC의 저장장치 부품을 아이폰에 넣으려다 의원들의 반발로 계획을 접은 전례가 있다. 이번이 처음 겪는 압박은 아니다. 다만 현재까지 애플이 CXMT 칩을 최종 승인했거나 주문을 넣었거나 실제 판매 제품에 탑재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검증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애플은 왜 하필 미국이 견제하는 중국 기업에 손을 내밀었나.


원인은 AI가 촉발한 메모리 공급 구조의 변화다. 챗봇 같은 AI 서비스를 돌리는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양의 고성능 메모리를 필요로 한다. 이 수요를 감당하는 것이 고대역폭메모리(HBM)로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를 훨씬 빠르게 주고받게 만든 고가 제품이다. HBM은 값이 비싸고 이익도 많이 남는다. 

 

그러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이 생산 능력을 HBM에 집중했고 스마트폰과 PC에 들어가는 일반 D램의 생산량이 급감했다. 애플에 메모리를 공급하는 회사는 사실상 이 세 곳뿐인데 이들이 물량을 제대로 대주지 못하자 네 번째 공급처가 절실해졌다.


애플이 여러 후보 중 CXMT를 택한 데에는 두 가지 속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실제 물량 확보다. 다른 하나는 협상용 지렛대다. 

 

애플은 오래전부터 값싼 대안 공급사를 슬쩍 들이밀며 "너희가 가격을 깎아주지 않으면 저쪽에서 사겠다"고 기존 공급사를 압박하는 방식을 써왔다. 디스플레이 같은 다른 부품에서 재미를 본 전략이다. CXMT라는 중국산 저가 카드를 손에 쥐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단가 인하를 요구하려 한 것이다.


그 지렛대 전략은 왜 통하지 않았나.


이번에는 전략이 완전히 빗나갔다. CXMT가 애플의 가격 인하 요구를 거절했을 뿐 아니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보다 오히려 더 높거나 비슷한 값을 불렀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전자상거래 사이트 JD닷컴에서 CXMT의 DDR5 메모리 모듈은 한국산 동급 제품보다 근소하게 비싼 값에 팔렸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CXMT는 굳이 애플에 팔지 않아도 물량을 소화할 곳이 많다. 미국 제재를 받는 화웨이와 샤오미 같은 중국 대기업들이 CXMT 물량을 장기계약으로 이미 확보해두었고, 중국 IT 기업들도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걸어둔 상태다. 애플이 사지 않아도 팔 데가 넘친다.


둘째, CXMT는 값을 깎아주고 싶어도 깎아줄 수 없는 원가 구조를 안고 있다. 미국의 제재로 CXMT는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쓰지 못한다. 

 

EUV는 반도체 회로를 새길 때 쓰는 최첨단 장비로, 더 미세한 회로를 한 번에 그려낸다. 이 장비가 없는 CXMT는 구형 장비로 같은 회로를 여러 번 나눠 새기는 방식을 쓴다. 그만큼 웨이퍼가 더 많이 들어간다. 한 분석에 따르면 CXMT는 같은 양의 D램을 만드는 데 EUV를 갖춘 경쟁사보다 웨이퍼가 30% 넘게 더 필요하다. 

 

원가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메모리 시세가 높을 때는 이 높은 원가로도 이익이 나지만 값을 깎아주면 곧바로 손해로 돌아선다. CXMT로서는 한국 기업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단가를 받는 것이 물러설 수 없는 최소 조건인 셈이다. 애플의 압박 카드가 애초에 성립하지 않았다.


노트북 업체 HP와 에이서도 CXMT를 쓰는데 왜 애플만 표적이 됐나.


중국산 메모리를 쓰는 것은 애플만이 아니다. 노트북 제조사 HP와 에이서는 이미 미국 밖에서 파는 제품에 CXMT 메모리를 넣기 시작했다. 애플이 중국산 메모리를 기웃거리는 것 자체는 업계에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HP나 에이서가 CXMT를 쓸 때는 어떤 상원의원도 서한을 보내지 않았다. 유독 애플만 표적이 됐다.


이유는 애플의 구매 규모와 상징성에 있다. 애플은 세계에서 부품을 가장 많이, 가장 까다롭게 사들이는 기업이다. 그래서 애플의 구매 결정은 한 회사의 선택을 넘어 시장 전체에 보내는 신호로 작동한다. 

 

상원의원들의 논리도 여기서 출발한다. 부품 검증이 가장 까다롭기로 소문난 애플이 중국산 메모리를 통과시키면, 다른 구매자들이 "애플도 썼으니 괜찮다"며 줄줄이 따라올 수 있다는 것이다. 

 

HP가 CXMT를 쓰는 것은 노트북 회사 한 곳의 결정에 불과하지만 애플이 CXMT를 쓰는 것은 전 세계 부품 시장에 찍히는 중국산 승인 도장처럼 여겨진다. 

 

애플이 헤드라인을 독차지한 것은 회사가 가장 크고, 가장 상징적이고, 하필 메모리가 가장 필요해진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새 아이폰은 인터넷 없이 기기 자체에서 돌아가는 온디바이스 AI 기능 때문에 예전보다 훨씬 많은 작업 메모리를 싣는다. 메모리가 가장 귀할 때 가장 많이 필요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애플은 정말 중국 메모리까지 찾아다닐 만큼 절박한 상태인가.


긴급한 것은 맞지만 절박하지는 않다. 아파 보이는 것과 위태로운 것은 다르다. 애플이 지금 통증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부품 원가에서 메모리와 저장장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1년 전 10% 안팎에서 크게 뛰었고 공급사들의 재고가 2~4주치 수준으로 역대 최저까지 떨어지면서 한때 일부 맥 제품의 배송이 여러 달 밀리기도 했다. 애플은 D램 공급이 정상화될 때까지 2026년 하드웨어 생산 계획 자체를 줄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통증에도 애플의 체력은 압도적이다. 애플은 6월 말로 끝난 분기에 매출 1094억 달러를 올려 1년 전보다 16% 늘어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순이익은 약 298억 달러였고 손에 쥔 현금성 자산은 1470억 달러에 달한다. 회사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보다는 역대급으로 잘나가던 회사에 오랜만에 아픈 곳이 하나 생긴 상황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애플이 CXMT를 찾은 것도 벼랑 끝의 발버둥보다는 지금 아프니까 약을 찾는 행동으로 보는 편이 사실에 가깝다.


이 위기는 애플이 자초한 것이 아니라 산업의 순환이 만든 것이다. 메모리 산업은 값이 오르면 회사들이 공장을 더 짓고 공급이 늘면 값이 다시 내려가는 주기를 반복해왔다. 값이 오르는 지금 이미 증설이 시작됐다. 

 

마이크론은 미국에 대규모 장기 투자를 발표했고 일본에도 공장을 지어 2028년 AI 메모리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여러 시장조사기관은 일반 D램의 공급이 2027년 무렵 회복될 것으로 본다. D램 부족이 영원히 이어져 애플이 무너질 일은 없다는 뜻이다.


남는 질문은 하나다. D램이 부족한 이 기간에 애플이 늘어난 원가를 소비자에게 얼마나 넘길 수 있느냐다. 메모리 값이 크게 올랐다고 해서 아이폰 전체 원가가 그만큼 오르는 것은 아니다. 

 

메모리는 부품 원가의 한 조각일 뿐이고 예전에 가장 비쌌던 디스플레이 패널과 두뇌 역할을 하는 프로세서 칩은 오히려 값이 내렸다. 메모리 하나만 보면 상승폭이 가파르지만 부품 원가 전체로 합산하면 증가폭이 완만해진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256GB 기준 차기 아이폰 프로 모델의 부품 원가가 전작보다 약 38% 오를 것으로 추정한다. 메모리가 이제 프로세서와 디스플레이를 제치고 아이폰에서 가장 비싼 부품이 됐다는 계산이다.


애플은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늘어난 원가를 전부 소비자에게 넘기지 않고 일부만 가격에 얹는 전략을 쓸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맥과 아이패드 값을 올렸을 때와 같은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매출총이익률, 즉 매출에서 부품 원가를 빼고 남는 이익의 비율은 눌리게 된다.

 

따라서 애플의 하드웨어 매출총이익률이 여러 분기에 걸쳐 계속 깎여나가는 것은 거의 정해진 수순이다. 여기서 착시에 주의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익의 비율이 아니라 절대 금액이다. 

 

가격과 부품 원가가 함께 커지면 매출 대비 이익의 비율은 눌리지만, 애플이 실제로 손에 쥐는 이익의 총액은 방어된다. 부품 원가가 38% 폭등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애플이 아이폰 한 대에서 남기는 이익의 절대 금액은 거의 줄지 않는다. 비율이 떨어지는 숫자만 보면 무섭지만 회사가 실제로 벌어들이는 현금은 충분히 지켜지는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깎여나간 매출총이익률조차 하드웨어 업계 최상위 수준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부와 델, HP 같은 일반 PC·스마트폰 제조사의 하드웨어 매출총이익률은 대체로 10~20%대에 머문다. 

 

원가 쇼크를 정통으로 맞아 애플의 마진이 눌린다 해도 그 눌린 마진은 경쟁사들이 한 번도 도달해본 적 없는 높이다. 애플은 산업 전체를 뒤흔든 메모리 대란을 맞고도 여전히 업계에서 가장 이익률 높은 하드웨어 회사로 남는다. 

 

앞으로 몇 분기에 걸쳐 매출총이익률이 깎이는 국면은 이어지겠지만 실제로 남기는 영업이익과 현금흐름은 큰 타격 없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메모리 값이 세 배 가까이 뛰는 충격 속에서도 애플이 절대 이익과 현금흐름을 지켜낸다면 현재와 같은 위기는 이 회사의 체력을 다시 확인시키는 장면으로 변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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