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다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이 5월 12일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8% 상승해 2023년 5월 이후 약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시장 예상치 3.7%를 웃돌았으며 직전 3월의 3.3%에서 한 달 만에 0.5%포인트가 뛰었다.
(사진 출처: 미국 노동통계국 BLS)
전월 대비 상승률은 0.6%로 시장 예상과 일치했다. 다만 직전 3월의 0.9%가 2022년 6월 이후 가장 큰 월간 상승폭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평년 기준으로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코어 CPI도 함께 가속했다. 전년 동월 대비 2.8%로 예상치 2.7%를 넘어섰고 3월의 2.6%에서 0.2%포인트 올랐다. 2025년 9월 이후 가장 높다. 전월 대비로는 0.4%가 올라 2월과 3월의 0.2%에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2025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월간 상승률이다.
주거비 식품 에너지를 모두 제외한 슈퍼코어 CPI는 약 3.4% 상승했다. 일시적 요소를 모두 걷어낸 후에도 광범위한 물가 압력이 살아있다는 의미다.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인플레이션의 끈적함을 판단할 때 가장 주목하는 지표 중 하나다.
네 개의 핵심 수치가 동시에 시장 예상을 모두 웃돈 점이 시장 충격을 키웠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 평균 시급은 월간 0.5% 연간 0.3% 하락했다. 약 3년 만에 처음으로 인플레이션이 임금 상승분을 모두 잠식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이번 CPI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상승의 직접적 원인은 에너지다. 4월 에너지 지수는 한 달에만 3.8% 올라 전체 헤드라인 상승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12개월 누계 기준으로는 에너지가 17.9% 휘발유가 28.4% 올랐다. 휘발유 가격은 1년 전 갤런당 3.14달러에서 4.50달러 수준까지 치솟았다.
배경은 호르무즈 해협이다. 2026년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며 시작된 전쟁이 5월 현재 약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세계 석유 수송로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량은 전쟁 이전 대비 크게 떨어진 상태다.
에너지 충격은 다른 영역으로 빠르게 번졌다. 항공운임은 4월 한 달에만 2.8% 올랐고 연간 기준으로는 20.7% 뛰었다. 제트연료 가격이 직접 티켓값에 반영됐다.
식료품 가격은 한 달 사이 0.7% 올라 2022년 8월 이후 가장 큰 월간 상승폭을 기록했다. 쇠고기는 연간 14.8% 상승했고 신선 과일과 채소도 한 달에 2.3% 올랐다. 2010년 이후 해당 카테고리에서 가장 큰 월간 상승률이다. 냉장 디젤 트럭으로 운송되는 신선식품일수록 유가 충격에 직접 노출된다는 점이 그대로 데이터로 나타난 것이다.
전기요금도 4월에 2.1% 올라 4년 만에 가장 큰 월간 상승폭을 보였다.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와 글로벌 가스 충격이 겹친 결과다. 주거비는 0.6% 상승해 직전 달의 두 배 속도였다.
다만 이 부분은 지난해 정부 셧다운으로 10월 임대료 데이터를 수집하지 못해 0으로 가정했던 누락분이 이번 달에 한꺼번에 반영된 통계적 보정 효과가 일부 포함됐다.
호르무즈 봉쇄가 차단한 것은 석유뿐이 아니다. 비료 알루미늄 헬륨 같은 다른 핵심 원자재의 흐름도 함께 막혔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잰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충격이 농업 건설 제조업으로 광범위하게 침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거의 모든 제조업 상품과 농업 건설로 가격 전이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가장 정직하게 반응한 채권 시장
발표 직후 미국 증시는 혼조 마감했다. 다우지수는 0.11% 오른 49760.56포인트로 마쳤지만 S&P500은 0.16% 나스닥은 0.71% 하락했다. 표면적 낙폭은 크지 않았으나 종목별로는 반도체주가 무너졌다. 마이크론이 3.7% 샌디스크가 6.2% 인텔이 6.8% 빠졌고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3.01% 하락했다.
미국 2년물 국채 금리가 4bp 오른 3.994%까지 올라 작년 6월 이후 최고치에 근접했다. 10년물 금리도 동반 상승했다. 연준이 한동안 금리를 내릴 수 없을 것이라는 신호를 시장이 분명하게 보낸 셈이다.
원유시장은 인플레이션 우려에 다시 불을 붙였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6월물이 3.7% 오른 배럴당 101.8달러 브렌트유 7월물은 107.82달러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상대로 한 전투 작전 재개를 더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유가는 추가로 튀어 올랐다.
연내 금리 인하 기대는 사실상 사라졌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기준으로 트레이더들은 2026년 연내 인하를 거의 기대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연내 인상 가능성을 약 30%까지 끌어올렸다. 몇 달 전만 해도 한 차례 인하가 거론되던 분위기와 정반대로 뒤집힌 것이다.
한국 시장이 받은 충격이 더 컸다는데.
이번 충격은 미국보다 한국 시장에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 5월 12일 코스피는 전장 대비 2.29% 하락한 7643.15에 마감했다. 장 초반에는 7999포인트까지 치솟으며 '팔천피'를 코앞에 두기도 했으나 발표가 다가오자 한때 500포인트 가까이 급락하며 7500선이 무너졌다.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70.1포인트까지 치솟았다. 3월 미국-이란 전쟁 발발 직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2010년 이후 평균치인 17~18포인트의 약 4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같은 시점 미국 S&P500 변동성지수(VIX)가 20포인트대 초반에 머문 것과 대조적이다.
13일 오전에는 달러-원 환율이 한때 1499.90원까지 올라 1500원 선에 거의 닿았다. 코스피는 장 초반 7500선이 다시 무너졌다가 개인 투자자들의 저가 매수세에 힘입어 7700선을 회복했다. 외국인 매도와 개인 매수의 정면 대결이 5거래일째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헤드라인 CPI와 코어 CPI가 동시에 상승했다.
이번 4월 CPI가 시장에 준 충격은 헤드라인의 절대 수준 자체보다 헤드라인과 코어가 동시에 가속한 패턴에 있다.
헤드라인 3.8%와 비교 가능한 직전 시점은 2023년 5월이다.
당시 헤드라인은 4.0%로 둔화돼 2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4월의 3.8%는 그 직후인 2023년 6월 이후 약 3년 만에 처음 보는 영역이다. 다만 2023년은 9.1% 정점에서 내려오는 하강 국면이었던 반면 지금은 1~2월 2.4%에서 다시 올라가는 상승 국면이다. 같은 숫자라도 방향이 정반대다.
코어 2.8%의 절대 수준 자체는 그렇게 이례적이지 않다. 2024년부터 2025년 초까지 코어는 3% 안팎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흐름이었다. 2024년 9월에 3.3% 2025년 1월에도 3.3%였다.
그 후 2026년 1~2월에 2.5%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반등한 결과가 2.8%다. 절대 수준만 보면 평이하지만 방향이 위로 꺾인 것이 문제다.
월간 코어 0.4%는 2025년 1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에도 헤드라인 월간 0.5% 연간 3.0% 코어 월간 0.4% 연간 3.3%가 모두 예상치를 웃돌면서 시장이 패닉한 바 있다. 다우 선물이 400포인트 이상 빠졌고 다음 인하 기대 시점이 9월로 밀렸다. 시장 충격의 패턴이 이번과 매우 유사하다.
다만 2025년 1월의 원인은 조류독감으로 인한 계란값 폭등과 관세 우려였고 이번은 호르무즈 봉쇄로 인한 유가 충격이라는 점에서 메커니즘이 다르다.
2020년대 전체를 놓고 보면 헤드라인 3%대 후반과 코어 가속이 동시에 일어난 사례는 2023년 3~4월이 마지막이고 그 이전엔 2022년 인플레이션 정점기였다. 2022~2023년 인플레이션 위기 이후 약 3년 만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재가속 신호가 통계로 잡힌 셈이다.
과거 세 사례에서 드러난 연준의 행동 원칙
비슷한 국면에서 연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펴보면 일관된 패턴이 보인다. 2023년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은 정책금리를 5.0~5.25%로 동결했다.
헤드라인 인플레이션이 정점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황이었지만 파월 의장은 본인이 '스킵(skip)'이라고 말한 표현을 곧바로 정정할 정도로 완화 신호를 꺼렸다. 점도표에는 그해 추가 2회 인상이 시사됐고 실제로 7월에 한 차례 더 인상했다.
2% 목표에 가까워진다는 확신이 들기 전에는 완화 신호를 주지 않는다는 원칙이 분명히 드러난 사례다.
2024년 9월에는 코어 CPI가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가속(3.2% → 3.3%)했지만 연준은 11월과 12월에 연속으로 0.25%포인트 인하를 단행했다.
헤드라인이 2.4%로 안정적이었던 점도 있었지만 결정적 이유는 노동시장이었다. 7~8월 고용 지표가 약해지면서 양대 책무인 물가와 고용 중 고용 쪽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인플레이션 한 변수만 보지 않고 고용과의 균형으로 판단한다는 원칙이 작동했다.
2025년 3월 FOMC에서는 1월 CPI 쇼크 직후였음에도 동결을 선택했다. 4.5% 금리를 유지하면서 2025년 코어 인플레이션 전망을 2.5%에서 2.8%로 상향 조정했지만 점도표상 연내 2회 인하 시그널은 살려뒀다.
인플레이션 상승의 상당 부분이 관세라는 일회성 공급 충격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공급 충격성 인플레이션에는 인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확인된 장면이다.
인상도, 인하도 하기 어려운 연준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
전문가들은 이번 4월 CPI에 대해 인상과 인하 모두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인상이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충격의 본질이 공급 측에 있기 때문이다. 통화정책은 수요를 억제하는 도구지 공급을 늘리는 도구가 아니다.
금리를 올린다고 호르무즈에 막힌 유조선이 다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2022년 인플레이션 위기와도 환경이 다르다. 당시는 노동시장이 극도로 타이트했고 임금 상승이 급증했으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광범위했지만 지금은 노동시장이 안정적이면서도 훨씬 식어있는 상태다.
실질 임금이 이미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인상하면 수요 측 충격으로 경기 침체 위험이 급격히 커진다.
코어 가속의 일부가 통계적 보정 효과라는 점도 인상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지난해 셧다운으로 10월에 0으로 가정됐던 임대료 데이터가 6개월의 시차를 두고 이번 4월에 한꺼번에 반영됐다. 코어 월간 0.4% 중 일부는 순수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아닌 회계적 조정인 셈이다.
인하도 가능하지 않다. 2021년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이라 판단했다가 9.1%까지 치솟은 트라우마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이 시점에 인하하면 시장은 연준이 정치적 압박이나 케빈 워시 신임 의장 영향으로 인플레이션 통제를 포기했다고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슈퍼코어 3.4%도 분명한 위험 신호다. 에너지를 빼고 봐도 인플레이션이 끈적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가장 합리적인 시나리오는 6월 FOMC에서 동결을 유지하되 점도표를 통해 연내 인하 횟수를 줄이는 방식이다. 2023년 6월의 전례를 따른다면 시장이 인하 기대를 줄이면서 장기금리가 자연스럽게 오르고 그 자체로 추가 긴축 효과를 낼 수 있다.
연준이 직접 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시장이 대신 긴축해주는 효과를 노리는 셈이다.
다만 이 모든 시나리오는 노동시장이 추가로 약화되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 있다. 6~7월 비농업 고용과 실업률 임금 상승률이 급격히 악화되면 2024년 9월 패턴처럼 인플레이션 가속에도 인하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슈퍼코어가 4%대로 추가 상승하면 인상 카드가 진지하게 거론될 수 있다.
6월 17일 FOMC가 첫 번째 분수령이다. 점도표가 함께 공개되는 회의이며 워시 신임 의장이 사실상 첫 회의를 주재할 가능성이 높다.
점도표상 연내 인하 횟수가 어떻게 조정되는지 성명서에서 에너지 충격을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시장의 다음 방향을 결정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BEST 뉴스
-
중국 메모리에 손대기 시작한 애플...절박함일까 전략일까?
2026년 들어 AI 데이터센터가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를 흡수하면서 스마트폰과 PC에 들어가는 평범한 D램이 귀해졌다. 그 여파로 애플이 중국 최대 메모리 제조사인 창신메모리(CXMT)의 D램을 자사 제품에 넣어보는 시험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올여름 알려졌다. CXMT는 미국 국방부가 중국 군사기업으로 ... -
중국의 국산 DUV 도전, 반도체 장비를 둘러싼 미·중 전쟁의 현재
2026년 7월 말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의 주가가 하루 만에 8% 가까이 빠졌다. 이는 6월 초 이후 가장 큰 낙폭이었으며 방아쇠를 당긴 것은 중국발 뉴스 때문이다. 국가 자본이 투입된 상하이의 한 기업이 반도체 회로를 웨이퍼에 새기는 핵심 장비인 이머전 DUV 리소그래피 장비를 자체적으로 ...
전체댓글 0
NEWS TOP 5
실시간뉴스
-
중국 메모리에 손대기 시작한 애플...절박함일까 전략일까?
-
마이클 버리, 다시 반도체 공격…정말로 "종말의 시작"일까?
-
추락하는 비트코인, 채굴 회사들이 AI로 갈아타는 이유
-
두 종목이 시장의 절반, 한국 증시 쏠림 현상 진단
-
"3년 만의 재가속" 미국 4월 CPI 해부…연준은 왜 인상도 인하도 못 하는가
-
반도체·철강·조선이 모르는 척해서는 안 되는 석화의 이야기
-
휴전해도 기름값은 안 내린다…전쟁보다 긴 '공급망 복구'의 시간
-
전쟁 중인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해야 증시가 오른다?
-
전쟁에도 잠잠한 금값, 달라지고 있는 안전자산의 흐름
-
비트코인 탈중앙화 논쟁 불붙인 62만 BTC 사고…문제는 ‘장부 거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