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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국산 DUV 도전, 반도체 장비를 둘러싼 미·중 전쟁의 현재

  • 글자크기설정

2026년 7월 말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의 주가가 하루 만에 8% 가까이 빠졌다. 이는 6월 초 이후 가장 큰 낙폭이었으며 방아쇠를 당긴 것은 중국발 뉴스 때문이다. 

 

국가 자본이 투입된 상하이의 한 기업이 반도체 회로를 웨이퍼에 새기는 핵심 장비인 이머전 DUV 리소그래피 장비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양산에 들어갔다는 소식이었다. 첫 장비는 올해 안에 중국 최대 파운드리 SMIC와 화훙반도체, 메모리 기업 CXMT에 인도될 예정이다.


리소그래피 장비는 반도체를 만드는 심장에 해당한다. 빛을 마스크에 통과시켜 실리콘 웨이퍼 위에 머리카락보다 수천 배 얇은 회로를 그려 넣는 장비로 이것 없이는 어떤 첨단 칩도 만들 수 없다. 특히 가장 정밀한 종류는 그동안 서방 몇몇 기업이 사실상 독점해 왔고,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도 이 장비를 핵심 표적으로 삼아 왔다.


중국의 자체 생산 소식이 시장을 흔든 이유는 미국이 수년간 쌓아 온 봉쇄의 벽에 균열이 생겼을지 모른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AI, 무기, 통신, 자동차까지 현대 산업 전체의 재료다. 

 

누가 어떤 칩을 만들 수 있느냐는 이제 국가의 힘 자체를 결정하는 문제가 됐다. 이 전쟁이 어디서 시작됐고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순서대로 짚어본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규제는 어떻게 시작됐나.


규제의 출발점은 2022년 10월 7일이다. 미국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BIS)이 사상 최광범위의 반도체 수출통제 규정을 발표했다. 일정 성능을 넘는 첨단 컴퓨팅 칩, 그리고 16나노미터 미만의 미세 회로를 만들 수 있는 제조 장비를 중국에 파는 것을 막았다. 미국인이 허가 없이 중국 반도체 시설의 개발과 제조를 돕는 것까지 금지했다.


당시 바이든 행정부가 내세운 원칙은 '좁은 마당, 높은 울타리'였다. 덜 첨단인 칩과 장비는 계속 팔되 안보에 직결되는 최첨단만 철저히 봉쇄하겠다는 계산이었다.


미국 혼자만으로는 봉쇄가 완성되지 않았다. 가장 정밀한 장비를 만드는 회사가 네덜란드 ASML, 일본 도쿄일렉트론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설득 끝에 네덜란드 정부는 2023년 1월 ASML의 가장 앞선 EUV 장비의 대중국 수출 허가를 취소했다. 같은 시기 중국이 7나노 칩 생산에 쓰던 DUV 장비까지 수출 허가 대상에 올렸다.


규제는 단계적으로 조여졌다. 2023년 10월 BIS는 중국이 규제를 우회하려 만든 변종 칩을 새로 차단하고 장비 통제를 촘촘하게 다듬었다. 정점은 2024년 12월 2일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사실상 마지막 대형 조치로 24종의 제조 장비와 3종의 소프트웨어 도구를 통제 대상에 넣고, 인공지능 칩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 메모리(HBM)까지 규제했다. 동시에 SMIC 계열사를 포함한 140개 중국 기업을 거래 제한 명단에 올렸다. 3년에 걸쳐 미국은 첨단 칩, 제조 장비, 핵심 부품, 개별 기업까지 봉쇄의 그물을 층층이 넓혀 왔다.


트럼프 2기 들어 규제는 어떻게 변화했나.


일관적으로 강화되던 규제는 트럼프 2기 들어 성격 자체가 바뀌었다. 안보를 지키는 방패에서 무역 협상의 카드로 변한 것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엔비디아의 중국용 AI 칩 H20이 있었다. 엔비디아가 미국의 기존 규제를 통과하도록 성능을 일부러 낮춰 중국 시장에 맞춰 만든 제품이다. 2025년 4월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허용됐던 이 H20마저 수출을 금지했고 엔비디아는 55억 달러의 손실을 회계 처리했다. 

 

그런데 세 달 뒤인 2025년 7월, 상무부는 입장을 뒤집어 H20의 수출 허가를 내주겠다고 밝혔다. 경쟁사 AMD도 중국용 칩 판매 재개 승인을 받았다.


반전에는 조건이 붙었다. 엔비디아가 대중국 칩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에 내는 합의였다. 안보를 이유로 막았던 칩을 돈을 받고 다시 푼 셈이다. 러트닉 상무장관은 중국 개발자들이 미국 기술에 익숙해지도록 어느 정도는 팔아야 한다는 논리로 이 결정을 옹호했다.


완화는 더 나아갔다. 2025년 12월 8일 트럼프는 엔비디아의 두 번째로 강력한 AI 칩 H200을 중국에 팔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이번에는 매출의 25%를 내는 조건이었다. 

 

앞서 5월 트럼프 행정부가 바이든이 만든 AI 칩 수출 규칙을 폐기한 데 이어 나온 조치로 2022년 이래 이어진 봉쇄 기조가 가장 크게 흔들린 순간이었다.


역설적인 것은 이렇게 풀어 준 칩이 정작 잘 팔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 당국이 자국 AI 기업들에 보안 우려를 이유로 H200을 사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승인 이후에도 중국 기업에 실제로 팔린 H200은 사실상 없었다. 미국이 안보 논리를 스스로 무너뜨리면서까지 문을 열었지만, 중국은 그 문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이번에 중국이 국산화한 DUV 장비는 무엇을 만들기 위함인가.


여기서 중국의 자체 장비 개발이 왜 중요한지가 드러난다. 미국이 칩은 풀어 주면서도 장비 봉쇄는 유지하는 사이 중국은 봉쇄의 근원을 스스로 뚫으려 했다.


이번에 중국이 만든 것은 이머전 DUV 장비다. DUV는 파장 193나노미터의 심자외선을 쓰는 장비로, 가장 앞선 EUV보다 한 세대 아래에 있다. 이머전은 그중에서도 한 단계 위 기술이다. 렌즈의 마지막 부분과 웨이퍼 사이 틈을 초순수, 즉 극도로 깨끗한 물로 채우는 것이 핵심이다. 

 

물의 굴절률이 공기보다 높아 빛을 더 정밀하게 꺾을 수 있고 그만큼 더 미세한 회로를 새길 수 있다. 물 한 방울이 장비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셈이다.


이 장비를 주도하는 곳은 상하이 아이성나 전자기술그룹이라는 국유 기업이다. 리소그래피 스타트업 위량성과 오래된 국가 대표 장비 기업 SMEE의 개발팀을 통합했다. 위량성은 2022년 설립됐고 화웨이에서 분사한 장비 기업 SiCarrier를 주주로 뒀다. 두 회사 모두 화웨이 출신 엔지니어가 주축인, 화웨이 인맥과 국가 자본이 결합된 자립 프로젝트다.


이 장비로 만들 수 있는 칩은 목표와 이론을 나눠 봐야 한다. 설계상 목표는 28나노 공정이다. 최첨단은 아니지만 산업의 근간이다. 애플 최신 칩이 3나노인 것과 비교하면 성숙한 기술이지만, 자동차 반도체, 사물인터넷 기기, 각종 전력 관리 칩 등 물량으로 승부하는 제품에 쓰인다. 

 

여기에 멀티패터닝을 더하면 7나노, 극단적으로는 낮은 수율로 5나노까지 도달할 수 있다. 멀티패터닝은 웨이퍼를 여러 번 노광해 한 번에 그릴 수 없는 패턴을 겹쳐 만드는 방식으로 SMIC가 EUV 없이 화웨이 스마트폰용 7나노 칩을 만들어낸 방법이다.


주목할 점은 이 장비가 중국이 지금 못 만드는 칩을 새로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첫 고객 SMIC는 이미 ASML의 구형 DUV 장비로 7나노급 칩을 생산하고 있다. 그래서 국산 장비로 중국이 얻고 싶어하는 것은 어떤 새로운 반도체가 아니고 미국이나 네덜란드의 정책 한 번으로 끊을 수 없는 국산 공급 경로다.

 

중국은 자국 장비로 같은 길을 계속 걸을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반도체 자급자족은 시진핑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이고 리소그래피는 중국 공급망에서 가장 오래 메우지 못한 구멍이었다.


다만 갈 길이 멀다. ASML은 2026년 이머전 DUV 장비 약 130대를 만들 수 있는 반면, 중국의 생산량은 올해 약 5대, 내년 약 20대에 그친다. 멀티패터닝은 느리고 비싸고 수율을 떨어뜨리는 임시방편이지 근본 대체재가 아니다. 부품도 대부분 국산화했지만 일부는 여전히 수입에 의존한다. 

 

실제 양산 라인 통합 목표 시점은 2027년이며 그 전까지 SMIC는 계속 ASML 장비에 의존한다.


그렇다면 왜 미국이나 한국 같은 강국도 이 장비를 못 만드나.


가장 정밀한 EUV 장비를 만드는 회사가 왜 네덜란드 ASML 하나뿐인지는 이 전쟁을 이해하는 열쇠다. 흔한 오해와 달리 미국이 기술이 없어서 못 만드는 것이 아니다. EUV의 원천 기술 상당수는 미국에서 나왔다. 그런데도 장비를 만드는 회사는 ASML이 됐다.


EUV의 초기 기술은 미국 국립연구소 기반의 컨소시엄에서 개발됐다. 참여하려면 승인을 받아야 했는데 당시 리소그래피 시장의 지배자였던 일본 니콘은 정치적 논란 속에 참여를 거부했고 또 다른 일본 기업 캐논은 미국 정부가 아예 배제했다. ASML은 미국과 일본의 경쟁 구도에서 어느 쪽도 아닌 중립 지대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졌다. 

 

그 이후로도 일본 니콘과 캐논은 충분한 기술과 자본을 가지고 있었지만 EUV가 너무 어렵고 비싸 스스로 포기했다. 니콘은 2009년경 연구를 대폭 줄였고 2010년대 후반 완전히 손을 뗐다. ASML은 경쟁자들이 감당하지 않으려 한 막대한 기술적·재정적 위험을 홀로 떠안아 살아남았다.

 

최고의 광학이나 가장 많은 특허가 아니라 국적이 결정적 자격이 된 셈이다. 인텔은 미국 자국 장비 회사가 EUV를 제때 공급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가장 빨리 EUV를 내놓을 곳은 ASML뿐이라는 판단에서 ASML을 밀었다.


미국이 지금 이 장비를 못 만드는 것은 만들 회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때 미국 장비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했지만 1980년대 일본에 밀려 퇴장했고 EUV 상업화 시점에 미국에 남은 장비 회사가 없었다


지금 따라잡기 어려운 이유도 분명하다. EUV 광원은 두 회사가 20년 넘게 개발했고 렌즈와 거울은 독일 광학 기업 자이스가 독점 공급한다. 자이스가 만드는 EUV용 광학 부품의 정밀도는 실리콘 원자 하나의 지름보다 작다. 돈이 있어도 이 부품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지구상에 자이스뿐이다. 

 

핵심 특허는 ASML이 가지고 있으며 이 기술을 아는 엔지니어 자체가 극소수다. 지금 새로 시작하면 20년과 수백억 달러가 드는데 그사이 ASML은 이미 다음 세대로 나아가 있다.


한국이 이 장비를 만들지 않는 이유는 다른 층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최고의 칩 제조사이지 장비 제조사가 아니다. ASML의 최대 고객으로, 장비를 사서 최고 수준의 칩을 만드는 쪽이다. 이미 독점된 장비 시장에 새로 뛰어드는 것보다 그 자원으로 제조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었다. 

 

EUV는 미국이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독일이 광학을 공급하며 네덜란드가 완성하는 서방 동맹 전체의 20년 축적물이다. 미국조차 혼자서는 만들 수 없으며, 심지어 ASML조차 자이스 없이는 못 만든다.


앞으로 중국이 EUV 장비까지 국산화하여 만들 수 있을까.


중국은 이미 EUV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이 장비는 작동하며 극자외선 광을 실제로 뿜어낸다. 다만 아직 작동하는 칩은 만들지 못했다. ASML 출신 엔지니어들이 회사의 EUV 장비를 역설계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논쟁은 빛을 만들 수 있느냐보다는 이것을 상업 양산 장비로 완성할 수 있느냐, 그리고 언제 가능하냐에 있다.


낙관론의 근거는 여럿이다. 중국의 프로토타입은 ASML과 다른 방식으로 EUV 광을 만든다. ASML이 레이저로 플라즈마를 만든다면, 중국은 전극 사이에서 주석을 증발시켜 방전으로 이온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더 나아가 SSMB라는 입자가속기 기반 기술로 서방 기술 너머로 건너뛰겠다는 구상도 있다. 

 

지정학적 압박이 혁신을 억누르기는커녕 과거 ASML에 외주를 주었을 근본 물리 문제를 스스로 풀도록 강제한 촉매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2025년 중국의 광원 기술 돌파는 과거 ASML에서 광원 개발을 이끌던 엔지니어가 지휘하는 팀에서 나왔고 화웨이는 자이스의 정밀 광학 인력을 반복해 영입하려 했다.


회의론의 근거는 더 무겁다. EUV 장비는 부품이 10만 개를 훌쩍 넘는, 인류가 만든 가장 복잡한 기계다. 첫 상업용 시스템을 만드는 데 약 30년의 글로벌 연구가 필요했다. 진짜 병목은 빛이 아니라 광학과 소재다. 현재 중국의 광원 출력은 상업 생산에 필요한 수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다층 반사경, 포토마스크, 빛에 반응하는 화학 물질인 포토레지스트가 넘기 힘든 벽으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빛을 만드는 것과 상업 장비를 만드는 것 사이 간극이 어마어마하다. 

 

ASML조차 데모 장비에서 상업 생산까지 13년이 걸렸고 EUV 생태계를 만드는 데 약 20년과 100억 달러 규모의 공동 투자가 필요했다. DUV에서 성공했다고 EUV에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구체적 전망은 크게 갈린다. ASML 최고경영자는 EUV 봉쇄로 중국이 서방보다 10~15년 뒤처질 것으로 봤다. 한 반도체 분석 기관은 국산 DUV와 초기 단계 EUV를 2030년으로 전망했다. 가장 균형 잡힌 독립 분석은 중국의 프로토타입이 ASML의 2006~2008년 수준이며 상업 EUV는 2037~2039년에야 가능하다고 봤다. 

 

중국 프로젝트 관계자조차 정부 목표는 2028년이지만 2030년이 더 현실적이라고 인정한다.


향후 10년 기준으로는 회의론이 우세하다. 가장 낙관적인 관계자 발언도 2030년이고, 그마저 작동 칩 몇 개이지 상업 양산이 아니다. 데모에서 양산까지의 간극, 자이스급 광학과 안정적 광원과 포토레지스트를 동시에 국산화해야 하는 과제는 돈이나 인재 영입만으로 풀리지 않는다. 

 

다만 목표를 좁혀 보면 달라진다. 중국의 진짜 목표가 ASML을 시장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끊어도 자국 칩을 계속 만드는 자급이라면 그 시간표는 더 빠를 수 있다. ASML이 법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팔 수 없는 장비를 중국이 국내에서 만드는 것은 매출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봉쇄를 무력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규제는 중국의 첨단 칩 생산을 늦추는 데 일정 부분 성공했다. 동시에 예상하지 못한 결과도 낳았다. 살 수 없게 된 중국이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봉쇄가 오히려 자립의 시계를 앞당기는 역설이 반복되고 있다.


트럼프 2기 들어 미국이 칩 규제를 협상 카드로 쓰면서 봉쇄의 논리 자체가 흔들린 반면 장비 전선에서는 중국의 국산화 진전과 EUV 밀수 의혹이 겹치며 새로운 통제 압박이 형성되고 있다. 미국 의회는 이미 중국이 보유한 DUV 장비의 판매뿐 아니라 유지보수까지 제한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질문을 어떻게 던지느냐에 달려 있다. 중국이 ASML을 시장에서 꺾을 수 있느냐고 물으면 향후 10년 안에는 어렵다. 그러나 미국의 봉쇄 아래에서도 중국이 자국 첨단 칩을 계속 만들 수 있느냐고 물으면 답은 달라진다. 그 좁은 목표라면 중국은 이미 절반쯤 와 있다.

 

(썸네일 사진 출처: ASML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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