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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버리, 다시 반도체 공격…정말로 "종말의 시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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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를 미리 내다보고 큰돈을 번 투자자 마이클 버리가 다시 반도체를 겨눴다.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인 그는 7월 초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반도체 종목 여러 개에 하락 베팅을 걸었다고 밝혔다. 

 

주가가 떨어져야 이익을 얻는 '숏' 포지션이다. 6월 30일 엔비디아와 테슬라, 반도체 종목을 묶은 상장지수펀드 SOXX, 반도체 장비 회사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건설·광산 장비 회사 캐터필러에 하락 베팅을 걸었고 이틀 뒤에는 메모리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에도 주당 1051.87달러 수준에서 베팅을 추가했다.


이 소식이 전해진 직후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7월 1일 6.3%, 이튿날 5.5% 연속으로 급락했다. 같은 기간 S&P500 지수가 0.22%, 나스닥이 0.7% 안팎 내리는 데 그친 것과 대비된다. 

 

버리는 "종말의 시작"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반도체 랠리의 끝이 다가온다고 주장했고 지금의 AI 열풍을 "집단적 중독"에 비유하며 반도체 주식이 앞으로 30% 넘게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10월 시가총액 5조 달러를 넘어서며 챗GPT가 등장한 2022년 이후 12배 가까이 몸집을 불렸다. 버리의 진단이 맞다면 AI에 노출된 자산 대부분이 함께 흔들리고, 틀렸다면 지금이 오히려 기회다. 이 논쟁의 승패를 이해하는 일이 곧 자신의 자산 방향을 가늠하는 일이 된다.


마이클 버리가 주장한 근거들은 무엇인가.


버리의 주장은 크게 두 갈래다. 주가가 기업의 실제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밸류에이션 문제, 그리고 지금이 반도체 경기 순환의 정점이라는 타이밍 문제다.


먼저 그는 반도체 주식이 2000년 닷컴 버블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과열됐다고 봤다. 근거로 든 것이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의 '200일 이동평균선 이격'이다. 이동평균선은 최근 200일간 주가의 평균을 이은 선으로 주가가 이 평균에서 위로 크게 벌어졌다는 것은 단기간에 급하게 올랐다는 뜻이다. 

 

버리는 그 벌어진 정도가 닷컴 버블 붕괴 이후 처음 보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반도체 지수의 주가매출비율이 16배를 넘는데 엔비디아 한 종목을 빼도 이 수치가 거의 줄지 않는다고 했다. 업종 전체가 고평가됐다는 논리다.


두 번째 근거로 그는 마이크론을 꺼냈다. 마이크론은 지난 42년 동안 주가가 30% 넘게 무너진 적이 34번이나 있었던, 경기 흐름에 극단적으로 민감한 종목이다. 반도체 산업은 호황과 불황이 뚜렷하게 반복되는데 마이크론은 그 진폭이 특히 컸다.


그의 결론을 주목하게 만든 것은 그가 지목한 방아쇠였다. 그는 최근 반도체 랠리의 직접적 원인을 한국에서 나온 대규모 투자 발표로 지목하며 바로 그것을 "끝의 시작"으로 본다고 밝혔다.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공격적 투자를 AI 수요가 강력하다는 신호로 반겼지만 버리는 정반대로 해석했다.


왜 마이클 버리는 한국의 투자 발표가 '끝의 신호'라고 하나?


버리가 본 기사는 6월 말 한국 정부와 두 반도체 기업이 함께 발표한 대규모 투자 계획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향후 10여 년에 걸쳐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천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공시했다. 

 

삼성전자는 2040년까지 약 2450조 원, 이 가운데 반도체에만 2100조 원가량을 배정했고 용인과 기존 단지에 1650조 원, 광주 등 신규 거점에 400조 원을 투자한다. SK하이닉스도 서남권에 새 메모리 생산 기반을 짓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두 회사는 각각 광주 일대에 반도체 공장을 여러 기 새로 세운다.


답은 메모리 산업이 늘 무너져 온 방식에 있다. 메모리 반도체 경기는 일정한 순환을 그린다. 수요가 폭발하면 물건이 부족해져 가격이 치솟고 회사들은 큰돈을 번다. 돈을 번 회사들은 더 많이 팔기 위해 앞다퉈 공장을 짓는다. 

 

몇 년 뒤 그 공장들이 완성돼 제품을 쏟아내면 공급이 넘쳐 가격이 폭락하고 이익이 반토막 나면서 주가가 무너진다. 이 붕괴 국면은 보통 1~2년 이어지며 주가를 절반 넘게 끌어내리곤 했다.


실제 사례가 있다. 2017~2018년 메모리 호황 당시 삼성전자는 설비 투자를 전년보다 50% 넘게 늘렸다. 그런데 바로 그 신규 공장에서 쏟아진 제품이 2019년의 극심한 공급 과잉과 가격 붕괴를 불렀다. 투자를 늘린 것이 몇 년 뒤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버리는 이 역사가 지금 그대로 반복된다고 본다. 한국이 크게 투자하니 AI 수요가 그만큼 강력하다는 시장의 해석과 달리, 그의 눈에는 기업들이 앞다퉈 공장을 짓기 시작하는 이 순간이 사이클의 정점이다. 증설 발표는 곧 몇 년 뒤 공급 과잉의 예고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투자=공급 폭증'이라는 공식이 이번엔 깨졌다는데.


버리 논리의 핵심 전제는 공장 투자가 늘면 제품 공급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가정이다. 과거에는 대체로 맞았지만 지금은 이 공식이 흔들린다. HBM이라는 특수한 메모리 때문이다.


HBM은 '고대역폭 메모리'의 약자로, AI 가속기에 붙어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는 고성능 메모리다. 생산 방식을 이해하려면 먼저 반도체 제조 과정을 알아야 한다. 

 

반도체는 웨이퍼라 불리는 둥근 실리콘 원판 위에 회로를 찍어 만들고 공장의 생산 능력은 한 달에 웨이퍼 몇 장을 처리하느냐로 정해진다. 그런데 소비자가 실제로 사는 것은 웨이퍼가 아니라 그 위에서 나오는 저장 용량, 곧 '비트'다. 같은 웨이퍼 한 장에서 얼마만큼의 용량을 뽑아내느냐는 제품마다 다르다.


HBM은 이 효율이 유독 나쁘다. 메모리 칩을 8층, 12층, 16층으로 수직으로 쌓아 올린 구조이기 때문이다. 같은 용량이라도 일반 메모리는 칩 하나면 되지만 HBM은 여러 장을 겹쳐야 하니 원판을 훨씬 많이 쓴다. 

 

게다가 층을 쌓고 연결하는 공정이 까다로워 불량이 많다. 맨 위층에서 불량이 나면 그 아래 멀쩡하던 층까지 통째로 버려야 한다. 12층을 쌓다가 마지막 층에서 실수가 나면 앞서 정상이던 11개 층이 함께 날아간다. 정상품 비율이 낮으니 같은 용량을 얻으려면 더 많은 웨이퍼를 투입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HBM은 같은 용량을 만드는 데 일반 메모리보다 웨이퍼가 3~4배 든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1GB의 HBM은 표준 D램의 약 4배에 이르는 생산 능력을 소모한다. 12층 HBM의 정상품 비율은 50~60%대로 추정되는데, 90%를 넘는 일반 D램의 절반 수준이다. 이 격차는 세대가 올라갈수록 더 벌어진다.


게다가 AI 성능을 끌어올리려면 HBM에 더 많은 용량을 담아야 하고 그러려면 층을 계속 높여야 한다. 12층짜리이던 것이 16층, 20층, 24층으로 올라가고 있다. 한정된 면적에 최대한 많은 용량을 밀어 넣으려면 위로 쌓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 

 

그런데 24층을 쌓는 일은 12층을 쌓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무사히 23층까지 쌓는 것 자체가 15층까지 쌓는 것보다 까다롭고, 마지막 한 층에서 실패하면 버려야 할 재료의 양도 그만큼 커진다. 

 

실제로 16층 HBM은 웨이퍼를 30마이크로미터 두께까지 얇게 깎아야 해서 수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엔비디아가 차세대 제품에 1TB 용량을 담으려 16층 설계를 추진했다가 수율 문제로 12층으로 물러선 사례도 있다.


결론은 이렇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아무리 설비를 늘려도 그 증가분이 고스란히 HBM 생산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증설한 상당 부분이 HBM의 낮은 생산 효율을 메우는 데 소모되기 때문이다. 설비를 50% 늘렸다고 HBM이 50% 더 나오지 않고, 층수가 높아질수록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진다.


게다가 AI에는 이런 HBM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데이터센터에서 쓰는 일반 서버용 메모리도 대량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투자가 첨단 제품에 집중되면서 일반 서버용 D램의 공급은 오히려 줄고 표준 메모리 가격은 최근 급등했다. 

 

트렌드포스는 상위 세 업체의 HBM용 웨이퍼 투입 비중이 2025년 말 약 18%에서 2026년 말 22%, 2027년 말 30%까지 늘어난다고 전망한다. HBM에 웨이퍼를 몰아줄수록 일반 메모리에 돌아갈 몫이 줄어드는 구조다. 투자 증가가 곧 공급 홍수로 이어진다는 버리의 첫 번째 공식은 여기서 상당한 설득력을 잃는다.


버리는 마이크론이 비쌀 때가 아니라 쌀 때 공격하고 있다.


사실 업계 지식 없이도 볼 수 있는 허점이 하나 더 있다. 버리의 대표 논거는 마이크론의 밸류에이션이 끔찍하게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마이크론의 주가수익비율은 22배 수준이다. 주가수익비율은 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이 숫자가 클수록 벌어들이는 이익에 비해 주가가 비싸다는 뜻이다.


엔비디아의 주가수익비율이 30배인 것과 비교하면 마이크론은 오히려 싼 축에 든다. 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을 만들고 전 세계 관련 시장의 상당한 몫을 차지하는 기업치고는 그렇다. 

 

버리 자신도 이 사실을 알기에 지금 이익 대비 주가가 비싸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대신 그는 지금의 이익 자체가 곧 무너진다는 주장에 기댄다. 근거는 결국 과거에 34번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데 있다. 지금의 조건이 과거와 같다는 전제가 성립해야만 유효한 논리다.


또한 수요의 '천장'이 사라졌다는 말이 있다.


지금까지의 반박은 주로 공급 쪽 이야기였다. 이번에는 수요 쪽을 보자. 버리의 수요 논점은 수요에 천장이 있다는 가정에 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실제로 과거 메모리 수요는 사람이 기기를 사는 데서 나왔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구매하면 그 안에 메모리가 들어갔다. 그런데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는 기기 수에는 한계가 있다. 이 천장 탓에 공급이 조금만 넘쳐도 곧바로 과잉이 됐다.


과거 사이클에서 기기 한 대에 들어가는 메모리가 얼마나 느리게 늘었는지를 보면 이 천장의 존재가 뚜렷하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스마트폰 한 대의 평균 메모리는 2016년 약 2.4GB에서 2017년 약 3.2GB로 1년에 33% 늘었다. 

 

이 완만한 증가에도 2019년에 시장이 무너졌다. 스마트폰은 보급이 포화되면 판매 대수 성장이 멈추고 PC도 집집마다 하나씩 사고 나면 수요가 평평해진다. 버리가 말하는 34번의 폭락은 전부 이렇게 천장이 있는 세계에서 나온 사례들이다.


이제 같은 잣대로 지금의 AI 칩을 본다. 엔비디아 GPU 한 개에 들어가는 HBM 용량은 A100 세대의 80GB에서 시작해 H200은 141GB, 블랙웰 B200은 192GB, 차세대 루빈은 288GB로 늘었고, 그 다음 루빈 울트라는 최대 1TB가량까지 거론된다. 불과 6년 사이에 칩 하나당 메모리가 7~12배로 뛴 것이다. 

 

과거 마지막 사이클에서 제품 하나당 메모리가 2GB에서 8GB로 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칩 하나가 소모하는 메모리 양이 폭증하는 동시에 팔리는 칩의 대수도 폭등한다. 구매자의 성격도 완전히 다르다. 

 

과거의 구매자는 스마트폰이나 PC를 한 대씩 사는 일반 소비자였지만 지금의 구매자는 자금 여력이 비교할 수 없이 큰 거대 클라우드 기업으로 칩을 수만 대씩, 그것도 경쟁자보다 더 많이 사들인다. 과거에는 칩당 메모리와 칩 대수 중 하나만 움직였지만 지금은 두 축이 동시에 곱해진다.


마지막으로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앞지른다는 점도 문제다. 마이크론의 한 임원은 6월 초 대만 컴퓨텍스 행사에서 AI가 한 번에 다루는 맥락의 길이, 곧 컨텍스트가 매년 30배씩 늘어난다고 밝혔다. AI가 더 길게 생각하고 더 긴 대화를 기억할수록 소모하는 메모리는 천문학적으로 불어난다. 

 

같은 자리에서 그는 서버 한 대당 메모리 탑재량이 최근 3년 사이 두 배로 늘었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이 현상을 '메모리 파킨슨 법칙'이라 부른다. 쓸 수 있는 메모리가 늘어나는 족족 AI 모델이 그만큼 커져 그 공간을 채워버린다는 뜻이다. 하드웨어를 아무리 늘려도 소프트웨어가 즉시 소비해버리는, AI 모델 구조 자체의 성질이다.


버리가 딛고 선 세계는 웨이퍼를 50% 늘리면 메모리도 50% 더 나오던 세계였고, 수십억 명이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하나씩 사고 나면 더 살 사람이 없던 세계였다. 그 세계에서는 그의 말이 맞았다. 그러나 AI 시대는 공급도 수요도 그 두 조건 모두에서 벗어나 있다.


지금은 시계를 읽는 법을 아무도 모른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버리가 틀렸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사이클은 분명히 존재하고 언젠가 이 열기도 식는다. 다만 버리의 확신을 떠받치는 근거가 지금의 현실과 어긋나 있다.


그는 지금이 자정 3분 전, 곧 붕괴 직전이라고 읽는다. 그러나 그가 시침과 분침을 읽는 방식은 천장이 있고 투자가 곧 공급으로 직결되던 과거의 낡은 지표에 맞춰져 있다. 공급 쪽에서는 HBM의 낮은 생산 효율이 '투자=공급 폭증' 공식을 깨뜨렸고, 수요 쪽에서는 칩당 메모리 폭증과 무한히 늘어나는 컨텍스트가 수요의 천장을 지웠다. 

 

그렇다면 지금이 정말 자정 직전인지는 그 지표만으로 알 수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AI 반도체 사이클이라는 시계를 읽는 법을 지금 지구상의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시계를 읽을 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이 붕괴 직전이라 판단하면 그렇게, 아직 한참 남았다고 보면 그렇게 투자하면 된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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