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60년 동맹의 끝...아랍에미리트가 마침내 OPEC을 버린 이유

  • 글자크기설정

세계 에너지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아랍에미리트(UAE)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탈퇴하기로 선언한 것이다. 1967년 아부다비 토후국 시절부터 시작된 약 60년의 회원국 역사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생산 쿼터 문제다. UAE는 150억 달러를 투자해 하루 485만 배럴의 생산 능력을 갖췄지만 OPEC+ 쿼터에 묶여 실제로는 300만 배럴 수준밖에 생산하지 못했다. 자국 능력의 30%를 강제로 놀려야 했던 셈이다. 그러나 이 결정의 배경에는 훨씬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면서 시작된 전쟁에서 이란은 UAE를 향해 미사일과 드론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40여 일 동안 탄도미사일 537발·드론 2256대·순항미사일 26발이 UAE를 향했다. 같은 OPEC 회원국이 자국 민간 인프라를 공격한 것이다. UAE는 이를 계기로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집단적 의사결정 틀에서 벗어나 미국과 더 가까운 독립적 에너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OPEC은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약 30%를 조율하는 조직이고 UAE는 그 안에서 사우디·이라크 다음의 3위 산유국이었다. UAE의 이탈은 1973년 오일쇼크 이후 반세기 동안 유지된 중동 중심의 석유 카르텔 체제가 균열을 일으키는 신호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유가 변동성이 높아지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글로벌 에너지 패권 경쟁이 재편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한국처럼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이 흐름을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OPEC이란 무엇이고 UAE는 왜 OPEC에 가입했었나.


2.png

(사진 출처: Maps of World 홈페이지)

 

OPEC은 1960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이라크·쿠웨이트·베네수엘라 다섯 나라가 창설한 국제 산유국 카르텔이다. 카르텔이란 같은 업종의 국가나 기업들이 서로 합의해 생산량이나 가격을 조절하는 연합체를 뜻한다.

 

설립 배경은 당시 국제 석유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서방 메이저 석유회사들에 대한 반발이었다. 엑슨·BP·쉘 등 이른바 '세븐 시스터즈'로 불리던 이 회사들은 산유국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석유 가격을 낮췄다. 이에 산유국들이 "우리가 직접 가격을 통제하겠다"며 뭉친 것이 OPEC의 출발점이다.

 

OPEC의 핵심 작동 원리는 회원국마다 생산량 상한선(쿼터)을 정해 공급을 조절하는 것이다. 공급을 줄이면 가격이 오르고 늘리면 내려가는 수급 원리를 집단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 구조가 세계에 얼마나 강력한지 증명된 것이 1973년 오일쇼크였다. 

 

이집트·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한 욤키푸르 전쟁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자 아랍 산유국들이 미국 등 서방에 대한 석유 수출을 금지하고 생산량을 대폭 줄였다. 약 4개월 만에 국제 유가가 4배 가까이 치솟았고 미국 주유소 앞에 차들이 수 킬로미터씩 줄을 서는 사태가 벌어졌다.

 

UAE의 OPEC 가입은 나라 자체의 역사보다 더 오래됐다. 1967년 아부다비 토후국이 아직 영국 보호령 상태일 때 독자적으로 OPEC에 가입했고 1971년 7개 토후국이 연합해 UAE가 탄생하면서 그 회원 자격을 그대로 승계했다. 

 

아부다비에는 1960년대 초부터 대규모 유전이 개발되기 시작했고 UAE는 안정적인 생산 능력과 재정 관리를 바탕으로 OPEC 안에서 사우디 다음의 신뢰받는 핵심 회원국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OPEC의 위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흔들렸다. 1980년대 유가 폭락으로 회원국 간 내부 신뢰가 무너졌고 2010년대에는 미국의 셰일오일 혁명이 OPEC의 시장 지배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수압파쇄(프래킹) 기술로 미국이 사실상 세계 최대 산유국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OPEC 혼자로는 시장을 통제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에 2016년 러시아를 포함한 비OPEC 산유국들과 연대를 맺은 것이 OPEC+다. 그러나 이 확장된 체제 안에서도 UAE의 불만은 계속 쌓였다. UAE가 국가 차원의 대규모 투자로 생산 능력을 키울수록 쿼터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UAE와 이란의 원래 사이는 어땠나.

 

2.png

(사진 출처: 주미 UAE 대사관)

 

UAE와 이란의 관계는 건국 첫날부터 갈등으로 시작됐다. 1971년 11월 30일 영국군이 페르시아만에서 철수하자 이란은 UAE가 독립하기 이틀 전 아부 무사(Abu Musa)·대툰브(Greater Tunb)·소툰브(Lesser Tunb) 세 개 섬을 군사력으로 점령했다. 호르무즈 해협 입구에 위치한 이 섬들은 전 세계 원유 무역의 3분의 1이 지나는 전략적 요충지다. 

 

UAE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란은 "자국 영토"라는 입장을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이란의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한때 "섬은 피바다를 건너야만 UAE로 돌아갈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 당시 UAE는 이라크를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완전히 달랐다. 두바이는 이란 경제가 세계와 연결되는 사실상 유일한 창구였다. 두바이에는 이란 교민 50만 명이 거주했고 이란에 들어가는 물건의 약 3분의 1이 UAE를 거쳤다. 

 

휴대폰·전자제품·자동차부품·의류에 이르기까지 이란 수입품의 상당 부분이 두바이항을 통해 들어왔다. 미국과 유럽의 대이란 제재가 강화될수록 두바이의 역할은 더 커졌다. 

 

두바이는 이란 환전소들의 허브가 됐고 두바이 환율이 이란 리알 가치에 직접 영향을 줄 만큼 경제적 연결이 깊었다.

 

2020년 UAE가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아브라함 협정)를 맺으면서 이란의 적대감이 다시 불거졌다. 이란은 이를 "팔레스타인에 대한 위험한 배신"이라고 비난하며 UAE를 향한 위협을 공개적으로 쏟아냈다. 

 

그럼에도 UAE는 이란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지 않는 이중 전략을 유지했다. 이란이 공격해올 경우 타깃이 되지 않으려는 현실적 계산이었다. 2022년부터는 양국 간 실무 대화가 다시 살아났다. 민간 항공·해운·무역·기후 협력 등 실무 채널이 열렸고 UAE는 자신을 이란과 걸프 아랍 국가들 사이의 중재자로 포지셔닝하려 했다. 

 

2024년 12월 양국 외무장관이 직접 만났고 2025년 2월에는 이란 해군 함정이 샤르자 항구를 친선 방문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그러나 이 모든 유화 노력은 2026년 전쟁과 함께 한순간에 무너졌다.


미국-이란 전쟁 이후 UAE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기습 공습했다. 이란은 즉각 보복에 나섰다. 이란은 미군 기지와 친미 아랍 국가들을 동시에 타격했다. UAE 내 미군 기지인 알다프라 공군기지가 첫 번째 표적 중 하나였다. 

 

이후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은 거의 매일 UAE를 향했다. 두바이 마리나 인근 주거 타워에 파편이 떨어졌고 두바이의 오라클 데이터센터가 공격받았다. 버즈 칼리파·팜 아일랜드 인근 주거지역도 타격을 받아 Fairmont The Palm 호텔에 불이 났다. 버즈 알 아랍도 파편 피해를 입었다. 

 

아부다비의 Habshan 가스시설과 공단 KEZAD도 직격탄을 맞았다. UAE 국방부에 따르면 4월 9일까지 이란이 쏜 탄도미사일 537발·드론 2256대·순항미사일 26발을 요격했다. 사망자는 군인 2명을 포함해 13명이었고 부상자는 224명이었다.

 

이란의 목표 중 90% 이상이 민간 인프라였다는 게 UAE 측 발표다. 이란은 미군 기지를 명분으로 삼았지만 실제 피해는 민간 경제 중심부에 집중됐다.

 

이란은 동시에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다. 봉쇄 이전 하루 130척 이상의 선박이 통과하던 이 해협에는 4월 29일 현재 하루 6척만이 통과를 시도하고 있다. UAE의 원유 생산량은 봉쇄 이후 전쟁 전 하루 353만 배럴에서 190만 배럴로 44% 급감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에서 애먼 UAE만 큰 타격을 입은 셈이다.


UAE가 마침내 OPEC을 탈퇴한다는 폭탄 선언을 했다. 하필 왜 지금인가.

 

여기에는 오랫동안 쌓인 불만과 이번 전쟁이 만들어낸 타이밍 그리고 지정학적 재편이 한꺼번에 겹쳐 있다. UAE 국영석유회사 ADNOC은 지난 10여 년간 150억 달러를 투자해 생산 능력을 하루 485만 배럴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OPEC+ 쿼터 체계 안에서 실제 허용 생산량은 약 300만 배럴에 불과했다. 

 

투자한 능력의 30%를 강제로 묵혀야 하는 구조였다. 2021년에는 UAE가 공개적으로 쿼터 기준선 상향을 요구하다가 OPEC+ 회의가 결렬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동안 러시아와 이라크는 쿼터를 일상적으로 초과 생산하면서도 사실상 제재를 받지 않았다. UAE 입장에서는 규칙을 지키는 나라만 손해를 보는 구조가 수년째 반복된 것이다.

 

이번 전쟁은 그 불만이 행동으로 전환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에너지부 장관 수하일 알마즈루에이는 탈퇴 시점에 대해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지금은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최소화되는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생산을 늘려도 어차피 수출이 안 되는 상황이니 탈퇴의 단기 여파가 크지 않다는 계산이다. 반대로 해협이 열리는 순간부터 쿼터 없이 즉각 풀 생산에 들어갈 수 있는 상태를 미리 만들어 놓겠다는 전략이기도 하다.

 

지정학적 맥락도 결정에 무게를 더했다. 이번 전쟁에서 이란은 걸프 아랍 국가들 중 UAE를 가장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그러나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 이웃 국가들은 정치적·군사적으로 충분한 연대를 보여주지 못했다. 

 

UAE 대통령 외교 고문 안와르 가르가쉬는 "걸프 국가들은 이번 사태에서 정치적·군사적으로는 역사적으로 가장 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반면 미국은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시스템을 UAE 영토에 사상 처음으로 배치하는 실질적 지원을 제공했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전쟁 중인 4월 26일에도 UAE 외무장관과 직접 안보 회담을 가졌다. OPEC 탈퇴는 결국 "이제 OPEC을 버리고 우리와 협력할 나라들하고만 함께하는 독립적인 행위자로 가겠다"는 지정학적 선언이기도 하다.


앞으로가 매우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탈퇴 이후 UAE의 계획이 있다면?

 

UAE가 OPEC 탈퇴로 실현하려는 가장 직접적인 목표는 생산량 확대다. UAE는 2027년까지 하루 500만 배럴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원래 계획보다 3년 앞당긴 것으로 ADNOC의 적극적인 투자 덕분에 달성 가능한 수준에 이미 근접해 있다. 

 

장기적으로는 시장 수요가 받쳐준다면 600만 배럴까지 확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UAE는 미국·사우디·러시아 다음의 세계 4위 산유국이 된다. 쿼터 없이 첫 해에 하루 420만~450만 배럴 수준으로 생산을 늘리면 연간 150억~250억 달러의 추가 수입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량 확대의 진짜 목적지는 아시아 시장이다. 현재 글로벌 원유 시장의 최대 전쟁터는 중국과 인도다. 두 나라를 합치면 하루 2000만 배럴 이상을 수입한다. 

 

미국이 셰일오일로 생산을 대폭 늘리면서 비OPEC 공급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아시아 구매자들을 누가 선점하느냐가 산유국 간 경쟁의 핵심이 됐다. 

 

미국-이란 전쟁 이후 폭등한 유가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아시아 바이어들은 지금 당장 외부 기구의 제약을 받지 않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공급자를 매우 절실히 원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OPEC 쿼터에 묶인 나라는 바로 이 구매자가 원하는 물량을 원하는 이 시점에 보장하기 어렵다. UAE는 쿼터에서 벗어남으로써 원하는 만큼 줄 수 있는 공급자로 자리매김하고 아시아 바이어들과 장기 공급 계약을 유리하게 맺겠다는 계산이다.


2.png

(사진 출처: Deep Resource 웹사이트)

 

이 전략의 실행을 뒷받침하는 물리적 인프라도 있다. UAE는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수출할 수 있는 Habshan-Fujairah 파이프라인(ADCOP)을 보유하고 있다. 

 

아부다비 인근 유전에서 아라비아해로 이어지는 약 400km 길이의 이 파이프라인은 하루 최대 150만 배럴을 처리할 수 있다. 해협이 봉쇄된 지금도 이 경로를 통한 수출은 가능하다. OPEC을 탈퇴하면 이 파이프라인을 쿼터 제한 없이 최대 용량으로 가동할 수 있다. 

 

전쟁이 끝나고 해협이 재개방되는 시점에는 파이프라인과 해협 수출을 동시에 풀 가동해 아시아 시장에 물량을 대거 풀 수 있는 구조를 미리 갖춰두는 것이다.


UAE의 OPEC 탈퇴는 수십 년 동안 쌓여왔던 지정학적 변화가 미국-이란 전쟁을 계기로 일거에 터진 사건이다. 전문가들은 UAE 탈퇴가 OPEC의 시장 통제력을 크게 약화시킬 것이라고 본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OPEC 내 유일한 대규모 여유 생산 능력 보유국이었던 UAE가 빠져나감으로써 OPEC이 공급 충격에 대응하는 핵심 수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UAE의 탈퇴 후 행보를 보고 카자흐스탄 등 다른 OPEC+ 회원국들도 잇단 탈퇴를 검토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쟁이 끝나고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는 순간 UAE가 대규모 증산에 나선다면 글로벌 유가에 갑작스런 하방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그 수혜는 원유를 수입하는 나라들에 돌아갈 수 있지만 동시에 일정 기간 동안의 유가 변동성 확대라는 새로운 리스크도 함께 가져올 전망이다.

전체댓글 0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60년 동맹의 끝...아랍에미리트가 마침내 OPEC을 버린 이유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