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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잡초를 찾아내다…영국 농업 현장의 ‘똑똑한 제초혁명’

  • 고건 기자
  • 입력 2025.11.08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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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들판 위에서 인간 대신 잡초를 찾아내는 AI가 등장했다. 카메라가 달린 농약 살포기가 밭을 달리며 작물 사이에 숨어 있는 잡초를 감지하고 필요한 곳에만 제초제를 뿌리는 방식이다. 환경을 지키면서 농가의 비용을 줄이는 일거양득의 실험이 현실로 옮겨지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무대는 영국 하퍼든(Harpenden)에 위치한 세계적 농업 연구기관 로담스테드 리서치(Rothamsted Research)이다. 이 기관은 독일 보쉬(Bosch), BASF 디지털 파밍, 챠퍼 머신리(Chafer Machinery) 등과 손잡고 ‘블랙그래스(black-grass)’라 불리는 악명 높은 잡초를 AI로 잡아내는 3년짜리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블랙그래스는 유럽 전역의 밀밭을 괴롭히는 대표적 잡초로, 밀과 생육 시기와 형태가 비슷해 제초제 살포로도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 게다가 제초제에 대한 저항성이 점점 커지고 있어 영국 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골칫거리다. 

 

로담스테드의 진화생태학자 데이비드 코몬트 박사는 “수년간의 연구로 축적된 잡초 데이터와 최신 AI 기술이 결합됐다”며 “AI가 제초제를 필요한 곳에만 정확히 살포하게 되면 비용을 줄이면서도 제어 효율은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실험에서 사용된 장비는 카메라가 장착된 노란색 농약 살포기다. 카메라는 밭의 작물과 잡초 이미지를 수천 장 촬영하며 데이터를 축적했고 보쉬의 데이터 과학자들은 이를 기반으로 딥러닝 알고리즘을 훈련시켰다. 

 

이후 실험팀은 28개의 카메라를 높이 1.1m 위치에 설치해 실제 농장 100헥타르(약 247에이커)에 걸친 현장을 주행하며 블랙그래스의 위치를 탐지했다. 촬영된 이미지는 5000여 장에 달했으며 이를 정제하고 학습시키는 데 며칠이 걸렸다. 

 

AI는 작물과 잡초의 색상, 질감, 잎의 각도, 빛의 반사 정도 등을 종합해 블랙그래스를 식별했고 약 85%의 정확도를 기록했다. 제초제가 살포될 영역은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생성한 지도를 바탕으로 지정됐다. AI가 특정 좌표에 잡초가 있다고 판단하면 살포기 노즐이 그 지점만 선택적으로 분사하는 식이다. 

 

개별 식물을 조준하기보다 잡초 분포를 지도 형태로 파악해 구획 단위로 대응하는 방식이다. 이는 ‘정밀농업(precision farming)’의 핵심 기술인 ‘스팟 스프레이(spot spray)’ 개념에 가깝다. 이러한 AI 기반 정밀 살포 기술은 농업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가능성이 충분하다.

 

미국과 유럽 여러 지역에서 유사한 프로젝트들이 잇달아 추진 중이다. 벨기에에서는 로보비전(Robovision)과 농업 연구기관이 드론과 5G 통신을 결합해 공중에서 잡초의 위치를 지도화하고 자동 살포기에 전달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방식은 제초제 사용량을 최대 80%까지 줄였다는 결과를 내놨다. 미국 아이오와의 대형 실증에서는 평균 76%, 지역별로는 최대 90%까지 제초제 절감 효과가 확인됐다. 그만큼 농약비 부담이 줄고 환경 오염도 완화된 셈이다. 

 

기술의 핵심은 컴퓨터 비전과 딥러닝이다. 과거에는 색상 차이만으로 식물을 구분했지만 최근엔 YOLO나 Mask2Former 같은 객체 탐지 신경망이 잡초의 형태와 생육 단계까지 구분해낸다. 데이터셋이 풍부해질수록 정밀도는 향상된다. 

 

여기에 엣지 컴퓨팅 장비가 결합돼 실시간 분석과 제어가 가능해졌다. 살포기가 달리는 동안 영상 데이터를 처리하고 노즐을 제어해야 하므로 로봇공학, 기계제어, 센서 융합 기술이 동시에 필요하다. 

 

하지만 이 기술이 농가 현장에 널리 보급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 잡초 탐지의 정확도는 날씨, 조명, 작물 종류, 카메라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 흐린 날과 맑은 날의 색상 차이만으로도 인식률이 떨어지며 밀과 블랙그래스처럼 형태가 비슷한 종은 성장 초기에 구분이 어렵다. 

 

또한 고성능 카메라와 엣지 프로세서, 살포기 제어 시스템까지 포함된 장비 가격이 높아 중소농가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데이터 처리와 모델 학습에는 대규모 컴퓨팅 리소스가 필요해 농촌 현장에서는 클라우드 연결이 필수적이다. 

 

기술이 완성되어도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확산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제초제 저항성이다. AI가 아무리 정밀하게 잡초를 찾아내더라도 같은 약제를 반복 사용하면 결국 잡초는 내성을 키운다. 실제로 로담스테드는 최근 글리포세이트(glyphosate)에 내성을 가진 블랙그래스의 진화 조짐을 발견했다고 경고했다. 

 

제초제 저항성은 AI로 해결할 수 없는 생태적 문제로 장기적으로는 작물 순환과 비화학적 방제기법이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AI 제초 실험이 주는 의미는 크다. 

 

영국 정부는 식품농업부(DEFRA)와 영국혁신연구청(UKRI)을 통해 ‘농업혁신 프로그램(Farming Innovation Programme)’과 ‘식량생산 전환 프로젝트(Transforming Food Production)’로 자금을 지원했는데, 그 목표는 AI와 데이터 기술을 통해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잡초 감지는 그 첫 단계일 뿐이다. 

 

이런 흐름은 곧 전 세계 농업의 표준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기후변화와 인구 증가로 농업의 효율성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제초제 절감과 토양 보전은 곧 경쟁력이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기술이 벼, 보리, 콩 등 작물에 적용될 수 있을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농지 구조는 규모가 작고 논 중심이라 유럽식 트랙터 기반 살포기 도입은 한계가 있다. 드론 기반 스팟 살포 기술이 오히려 현실적일 수 있다. 잡초 탐지를 위한 국내 데이터셋 확보와 작물별 모델 개발이 선행된다면 충분히 적용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다. 

 

AI가 밭의 잡초를 식별하고 살포기를 제어하는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앞으로의 농업은 ‘얼마나 많이 뿌렸는가’가 아니라 ‘어디에 정확히 뿌렸는가’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AI는 이제 밭의 눈이자 손이 되고 있다. 인간이 흙을 갈던 자리에 AI가 들어오는 이 변화는 산업혁명 이후 농업이 맞이한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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