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동결한 지 이틀 만에 연준 출신 원로가 공개 비판에 나섰다. 물가가 목표치를 웃도는 상태가 오래 이어지는데도 연준이 금리 인상을 미뤘다는 지적이다.
제프리 래커 전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30일(현지시간) 미국 경제방송 CNBC에 출연해 연준의 대응 방식이 의외라고 밝혔다. 그는 물가상승률이 3~3.5% 수준에 오랜 기간 머물러 있는 만큼 지금쯤이면 더 강한 조치가 나왔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래커 전 총재는 2004년부터 2017년까지 리치먼드 연은을 이끌며 꾸준히 금리 인상을 주장해 대표적 '매파'(통화긴축 선호 인사)로 꼽혀왔다. 2012년에는 연준의 경기부양책이 물가만 자극할 것이라며 한 해 여덟 차례 반대표를 던졌다.
래커 전 총재는 연준이 이번 국면 내내 물가가 빠르게 2%로 돌아올 것이라는 전제를 유지해왔다고 짚었다. 올해 초 그 전제를 재검토하고 더 신속하게 움직였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주 회의에서 자신이었다면 금리 인상에 찬성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물가를 가늠할 지표로는 명목 지출과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꼽았다. 명목 GDP는 물가 변동을 걷어내지 않은 경제 규모로 실제 생산량 증가분과 가격 상승분이 함께 담긴다. 래커 전 총재는 명목 지출과 명목 GDP 증가 속도가 물가 2%와 양립할 수 있는 수준을 크게 웃돌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가 2% 물가 상승 아래에서 공급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돈이 쓰이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지금의 지출 규모를 2% 물가로 감당하려면 공급 능력이 매년 3%씩 늘어나야 한다고 분석했다. 공급이 따라오지 못하면 남는 수요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래커 전 총재는 29일 공개된 경제 전문 언론인 캐슬린 헤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연준이 물가 대응에서 뒤처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물가를 끌어내리려면 정책금리를 5% 안팎이나 그 이상으로 올려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직전 회의 이후 나온 경제지표가 오히려 10월 인상 근거를 강화했다는 평가도 내놨다. 올해 들어 명목 GDP 증가세가 가팔라졌고 3분기에도 지출이 이어졌으며 인공지능(AI) 관련 투자가 매우 강하다는 설명이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의 회의 운영 방식에 대한 제언도 나왔다. 워시 의장은 연 8회인 현행 회의 횟수가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래커 전 총재는 개별 회의에 쏠리는 부담을 덜고 싶다면 회의를 더 자주 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준은 2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75~4.00%로 동결했다. FOMC는 금리를 결정하는 연준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표결 결과는 찬성 10표 반대 2표였다. 리사 쿡 연준 이사와 베스 해맥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가 0.25%포인트 인상을 주장하며 반대표를 던졌다.
쿡 이사의 반대표는 2022년 이사회 합류 이후 처음이다. 해맥 총재는 7월 회의에서도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와 로리 로건 댈러스 연은 총재와 함께 인상을 요구하며 반대했다.
연준은 9월 회의에서 2023년 이후 처음으로 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당시 표결은 만장일치였다. 이번 성명에서는 경제활동 평가를 '견조한' 속도에서 '강한' 속도로 상향했다.
물가는 여전히 높다는 기존 표현을 유지했다. 적절한 정책 기조를 판단하는 데 추가 정보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문구를 새로 넣었고 물가 안정을 반드시 달성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워시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성장은 강하지만 물가는 너무 높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인들이 6년 가까이 목표를 웃도는 물가를 견뎌왔다며 물가를 끌어내리는 것이 연준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몇 주 사이 에너지 가격이 다시 올랐다는 점도 언급했다. 일부 품목의 가격 상승이 경제 전반으로 번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 연준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회의 다음 날인 29일에는 성장과 물가 지표가 함께 발표됐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3분기 실질 GDP는 연율 3.4% 증가했다. 연율은 분기 성장 속도가 1년 내내 이어진다고 가정해 환산한 수치다. 시장 예상치 3%와 2분기 2.2%를 모두 웃돌았다.
소비지출은 3.8% 늘었다. 주택을 제외한 기업 투자는 12.7% 증가했고 이 가운데 정보처리 장비 투자는 37.4% 급증했다. AI 데이터센터 구축 수요가 반영됐다. 주택 투자는 높은 모기지 금리 영향으로 3.3% 줄어 최근 7개 분기 중 6개 분기에서 감소했다.
같은 날 나온 9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3.6% 올라 8월 3.4%에서 상승폭을 키웠다. PCE 물가는 연준이 정책 판단에 가장 중시하는 물가 지표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뺀 근원 PCE 물가는 3.1% 올라 전월 3.0%보다 높아졌다. 월간으로는 전체 지수가 0.5% 근원 지수가 0.3% 상승했다. 9월 물가 상승은 에너지 가격 급등이 주도했다.
다른 연준 인사들도 추가 인상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다. 알베르토 무살렘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는 30일 연설에서 미국 경제가 회복력을 보이고 있다며 AI 인프라 구축과 완화적인 금융 여건을 성장 요인으로 꼽았다.
금융 여건이 완화적이라는 것은 기업과 가계의 자금 조달이 여전히 수월하다는 뜻이다. 무살렘 총재는 물가가 너무 높다고 평가했다.
시장은 12월 9일 회의에서의 추가 인상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12월에 금리를 올리면 올해 두 번째 인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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