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에 따르면 중국 AI 기업 문샷AI가 앤트로픽의 최신 모델 '페이블'을 몰래 베껴 자사 모델 '키미 K3'를 만들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AI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정이라는 반박이 나오고 있다.
마이클 크라치오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장은 지난 22일 소셜미디어 X에 문샷AI가 K3 개발 과정에서 앤트로픽의 페이블을 '증류(distillation)'했다는 정보를 확보했다고 적었다.
증류란 이미 성능이 검증된 대형 AI에 수많은 질문을 던져 그 답변을 모은 뒤, 이 데이터로 자기 모델을 학습시켜 성능을 따라잡는 기법이다.
크라치오스 국장은 문샷AI가 탐지를 피하려고 접속 경로를 수시로 바꿔가며 미국 모델을 대규모로 증류할 수 있는 내부 시스템까지 자체 구축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독점 기술을 훔치고 미국 연구를 훼손하려는 은밀한 산업 규모의 증류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 정보를 어떻게 입수했는지에 대한 근거는 공개하지 않았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도 21일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미국 대형언어모델의 '워터마크'가 다수의 중국 모델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워터마크는 특정 모델의 출력에 남는 고유한 흔적을 뜻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흔적인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베선트 장관은 미국 기업의 기술을 훔친 해외 모델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할 능력이 있다며 중국 기업을 사실상 미국 기업과의 거래에서 차단하는 '수출통제 명단(Entity List)' 지정도 검토 대상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의 반응은 달랐다. 브레이든 행콕 로드연구소 연구원은 페이블이 공개된 것은 7월 1일이며 2주 만에 그만한 양의 데이터를 뽑아내고 모델을 학습시켜 출시하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K3가 페이블 공개 직후 이 정도 성능으로 등장한 것을 순수 증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앨런AI연구소의 네이선 램버트 연구원은 증류의 효용 자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AI 학습의 중심축이 '강화학습'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강화학습은 모델이 내놓은 답변을 채점하고 그 점수에 따라 모델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단순히 남의 답변을 모아 따라 배우는 방식과는 구조가 다르다.
램버트 연구원은 답변 데이터를 모아 학습시키는 '지도 미세조정(SFT)'만으로 중국 모델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면 이미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세조정은 모델이 말투와 태도를 익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제3의 기업이 만든 모델이 자신을 '클로드'라고 답하는 현상도 이 단계에서 비롯된다.
페이블 수준의 능력을 증류로 재현하려면 강화학습이 필요한데 이 경우 수천만 개 단위의 에이전트를 돌려야 한다. 램버트 연구원은 외부 기업의 API를 빌려 이런 작업을 하려면 비용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솟고, 응답 속도가 느려 시간 병목이 생기며 성능 향상이 보장되지도 않는다고 했다.
크라치오스 국장은 문샷AI가 대중국 수출이 금지된 엔비디아의 최신 칩 'GB300'을 확보하고 태국에 있는 GB300 탑재 서버에도 접근했다고 주장했다.
조지타운대 안보신흥기술센터의 샘 브레스닉 연구원은 금지 품목인 이들 칩의 암시장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에는 미국 서버 제조사 슈퍼마이크로 창업자가 첨단 칩을 중국으로 밀반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브레스닉 연구원은 데이터센터에도 '고객확인제도(KYC)'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금융권에서 자금세탁을 막기 위해 고객 신원을 확인하는 제도를 데이터센터에 적용해, 최신 하드웨어로 대규모 학습을 돌리는 기업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지 보고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국 상무부는 2024년 데이터센터 대상 고객확인 규정을 제안했지만 이후 진전은 없는 상태다.
문샷AI가 지난 16일 공개한 K3는 총 2조8000억 개의 매개변수를 갖춘 모델로 가중치를 공개하는 모델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매개변수는 모델의 지식이 저장되는 단위로, 많을수록 통상 성능이 높다.
K3는 896개의 전문가 모듈 중 16개만 골라 작동시키는 방식을 써 규모 대비 연산 부담을 낮췄다. 100만 토큰 분량의 문맥을 한 번에 처리하며 이미지 인식도 지원한다.
블라인드 평가 플랫폼 아레나의 프런트엔드 코딩 부문에서는 1679점으로 페이블 5(1631점)와 GPT-5.6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인공분석(Artificial Analysis) 종합 지수에서는 페이블 5와 GPT-5.6에 이어 4위권이다. API 가격은 입력 100만 토큰당 3달러, 출력 100만 토큰당 15달러로 앤트로픽 오푸스 4.8의 절반 수준이다. 전체 가중치는 27일 공개될 예정이다.
증류는 중국 기업만의 관행은 아니다. 일론 머스크는 올해 초 자신의 회사가 오픈AI 모델을 증류해 '그록'을 개발했으며 업계에서 흔한 일이라고 증언했다. 앤트로픽도 올해 초 문샷AI와 딥시크, 미니맥스가 자사 모델을 조직적으로 증류했다고 지목한 바 있다.
당시 앤트로픽은 IP 주소 등을 통해 해당 기업 소속으로 확인된 이용자와 자사 모델 간 수백만 건의 대화를 발견했으며 이는 통상적 이용 패턴과 뚜렷이 구분되는 의도적 능력 추출이라고 밝혔다. 문샷AI는 이번 의혹에 답하지 않았다.
행콕 연구원은 미국이 중국 팀의 기술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문샷AI 창업자 중 한 명은 카네기멜런대 박사과정 출신이고 이들은 제대로 된 연구를 하는 연구자와 엔지니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모델 개발이 멈추더라도 중국의 진전은 속도만 늦어질 뿐 계속될 것이라고 봤다.
(썸네일 사진 출처: 키미 K3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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