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최대 기업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스가 통화와 모바일 앱, 가정용 기기 전반에 AI를 심는 대규모 서비스를 공개했다. 미국과 중국 기업이 주도하는 AI 시장에서 인도가 자국 기술로 맞서겠다는 구상이다.
릴라이언스는 지난 19일 뭄바이에서 열린 제49차 정기 주주총회에서 통신 자회사 지오(Jio)를 통해 'AI 통화 에이전트'를 선보였다. 통화 도중 "헤이 지오"라고 부르면 AI가 대화에 끼어들어 내용을 받아 적고 요약해주는 기능이다.
기록은 물론 택시 호출, 음식 주문, 식당 예약까지 대신 처리하며 한 통화에서 최대 10명의 목소리를 구분해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정리한다. 5억 명이 넘는 지오 가입자를 대상으로 올해 안에 시작할 예정이다.
이 서비스의 특징은 별도의 앱을 깔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통신망 자체에 AI를 넣었기 때문에 통화 기능처럼 기본 제공된다. 지오의 아카시 암바니 회장은 AI 음성 비서가 외부 앱이 아니라 통신망 단계에서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이용자가 다른 통화 보조 앱에 의존할 필요가 줄어드는 만큼 릴라이언스로서는 거대한 가입자 기반을 무기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릴라이언스는 자사 통신 관리 앱 '마이지오(MyJio)'도 AI 버전으로 바꿨다. 복잡한 메뉴를 일일이 누르는 대신 원하는 바를 말로 설명하면 AI가 알아서 처리하는 방식이다.
해외 로밍 요금제를 고르거나 스마트폰에 내장된 가상 유심인 e심을 켜는 작업도 대화하듯 끝낼 수 있다. 다만 요금제 변경처럼 계정에 영향을 주는 작업은 반드시 이용자의 확인을 거치도록 했다.
가정용 기기로는 '지오 텔레프레임(TeleFrame)'을 내놨다. 음성으로 작동하는 가정용 디스플레이로, 날씨 경보나 일정, 집안일 알림 등을 이용자가 묻기 전에 먼저 띄워준다. 아마존, 구글 등이 추진하는 가정용 AI 비서와 같은 흐름이다.
인터넷 속도도 끌어올렸다. 새 가정용 인터넷 서비스는 내려받기 최대 초당 5기가비트(5Gbps) 속도를 제공한다.
릴라이언스는 의료, 교육, 농업, 소상공인을 겨냥한 AI 앱도 함께 공개했다. '지오헬스IQ', '지오런IQ', '지오크리시IQ', 'AI 뱌파르' 등으로, 모두 22개 인도 언어를 지원한다.
영어로 먼저 만든 뒤 번역하는 글로벌 AI와 달리 처음부터 인도 언어로 개발했다는 점을 회사는 강조했다.
이런 서비스를 뒷받침하는 것이 지난해 출범한 '릴라이언스 인텔리전스'다. 회사는 구자라트주 잠나가르에 인도의 'AI 중추'를 짓고 있다. AI를 돌리려면 막대한 연산 능력이 필요한데 인도는 이 컴퓨팅 자원이 부족하고 비싸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릴라이언스는 올해 말까지 120메가와트(MW) 규모의 첫 단계를 가동한다. 여기에는 엔비디아의 최신 GPU(그래픽처리장치) 'GB300'이 투입되며, AI 추론 작업 기준으로 기존 고성능 칩 'H100' 7만5000여 개에 맞먹는 성능을 낸다.
향후 H100 20만 개 이상 규모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시설은 릴라이언스가 쿠치 지역에 보유한 태양광 발전으로 전력을 충당한다.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도 넓혔다. 구글과는 AI 중심 협력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구글의 AI 서비스 'AI 프로'를 지오 이용자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메타와는 합작사를 통해 메타의 공개형 AI 모델 '라마(Llama)'를 인도 기업용으로 활용한다. 메타와는 잠나가르에 AI 데이터센터를 함께 짓는 협력도 발표했다.
암바니 회장은 인도가 다른 곳에서 만든 AI를 단순히 소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개발하고 도입하는 주체이자 세계적 선도국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초 AI 인프라에 11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릴라이언스의 'AI 자립' 행보는 인도 기업들이 외국 AI 모델과 클라우드에 크게 기대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최근 미국 정부 지시로 앤스로픽이 일부 최신 모델 접근을 막으면서 해외에서 내려진 결정 하나가 인도 스타트업과 기업의 사업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런 공급망 위험이 인도 대기업들로 하여금 남의 기술을 빌리기보다 자체 기술을 갖추도록 떠밀고 있다.
이번 주총에서는 투자자들이 기다려온 지오의 증시 상장 소식도 나왔다. 암바니 회장은 지오 플랫폼스 이사회가 기업공개(IPO) 관련 예비 서류를 승인했으며 최대 2억7000만 주를 새로 발행하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인도 증시 사상 최대 규모 상장이 될 전망이다.
한편 AI 서비스가 통화와 앱, 가정으로 확산되면서 이용자 데이터 처리 문제도 떠올랐다. 릴라이언스는 모든 서비스가 이용자 동의 아래 작동한다고 밝혔으나 서비스로 생성된 데이터를 AI 모델 학습에 쓰거나 기술 협력사와 공유할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릴라이언스 주가는 올해 들어 약 17% 떨어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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