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동안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세계 자동차 산업의 교과서가 새로 쓰인 수준으로 폭발적인 확장을 이뤘다. 2014년까지만 해도 중국의 순수 전기차 판매량은 4만 5천 대 남짓이었다.
내연기관 중심의 시장에서 전기차는 아직 실험적인 상품이었고 글로벌 완성차 업계도 대부분 ‘친환경 전환’이란 개념을 미래 과제로만 다뤘다. 하지만 불과 10년 뒤인 2024년, 중국은 연간 772만 대의 전기차를 팔아치우며 단일 국가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사진 출처: 리서치게이트)
숫자로만 보면 약 170배 성장, 산업적으로는 내연기관 시대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무너진 셈이다. 더 놀라운 건 이 성장의 속도다. 2014년 한 해 동안 팔린 물량이 이제는 한 달 만에 판매된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의 전기차는 보조금으로 겨우 수요를 버티는 틈새 산업이었지만 지금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 전체를 움직이는 주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 중국 내 완성차 브랜드 수는 수십 개로 불어났고 BYD, 샤오미, 리오토, 니오, 샤오펑 같은 신생 기업들이 기존 내연차 브랜드를 밀어내며 주도권을 차지했다.
시장 점유율 역시 한 회사가 독식하는 수준으로 압축됐다. 2025년 9월 기준으로 BYD는 단일 기업으로 중국 전기차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나머지 기업들은 기록적인 성장률을 내세워 생존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자동차 산업에서 10년 만에 170배 성장이라는 숫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의 중국 전기차 시장은 하나의 국가 시스템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보여주는 압축된 결과물이다.
그러나 그 압축된 성공의 표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중국 전기차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BYD가 2025년 들어 처음으로 성장세에 제동이 걸렸다. 9월 BYD의 판매량은 39만3천여 대로 전년 같은 달보다 약 6% 감소했다.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연간 기준 하락세를 보인 적이 없던 회사가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이미 회사는 연간 판매 목표를 5,500만 대에서 4,600만 대로 최대 16% 낮춰 잡았고 시장은 이를 둔화의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중국 국내 시장에서 이어진 가격 전쟁은 BYD조차 버거운 수준이다. 20만 위안 이하 시장에서 리오토, 샤오미, 화웨이 계열 브랜드들이 줄줄이 신형 전기차를 내놓으며 공격적인 할인 공세를 펼치고 있고 정부 보조금 축소와 소비 위축이 겹치면서 고성장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한때 ‘매달 신기록’을 경신하던 BYD가 이제는 시장 점유율 50%를 지켜내기 위해 가격 인하와 프로모션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BYD가 만들어낸 초고속 성장의 무대가 이제는 그 자신에게 가장 큰 부담으로 돌아온 셈이다.
본 기사에서는 중국의 전기차 시장이 지금까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과 둔화의 이유를 함께 찾아본다.
중국은 왜 전기차를 밀어주었을까?
중국 정부가 처음부터 전기차에 목숨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표면적으로는 ‘탄소중립’과 ‘대기오염 감축’을 내세웠지만 실제 의도는 훨씬 전략적이었다. 내연기관 시대엔 중국이 아무리 자동차를 많이 만들어도 엔진, 변속기, ECU 같은 핵심 기술은 전부 외국에서 사와야 했다.
그러니 자동차 산업이 크면 클수록 기술 종속이 심해지는 구조였다. 그래서 중국은 ‘기존의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새로운 게임판을 만들자’는 발상을 한 것이다. 내연기관에서 밀리던 기술 패권을 한 번에 뒤집을 기회가 전기차였다.
2009년 ‘만대 계획’으로 불린 전기차 보급 시범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베이징은 전기차를 자동차가 아니라 산업 체계 자체를 재편하는 프로젝트로 접근했다. 자동차, 배터리, 전력망, 반도체, 인공지능까지 전부 연계된 산업으로 본 것이다.
중국 중앙정부는 전기차 산업을 ‘7대 전략산업’ 중 하나로 지정하고 지방정부는 경쟁적으로 자국형 브랜드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 결과 BYD, CATL, 니오 같은 기업이 동시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정부는 생산라인을 늘리고 기술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보조금을 아낌없이 뿌렸다.
실제로 2015~2018년 사이 보조금 예산의 대부분은 소비자보다 기업으로 흘러 들어갔고 덕분에 배터리 셀 공장과 소재산업이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또 하나의 의도는 에너지 안보였다. 중국은 원유의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지정학적으로 가장 큰 중국의 약점이었다. 전기차로 전환하면 원유 대신 전력과 광물로 에너지 체계를 바꿀 수 있고, 이는 곧 ‘수입 리스크 감소’로 이어진다.
배터리 원료인 리튬, 니켈, 코발트 같은 자원을 자국 기업이 장악하도록 외교적으로 밀어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CATL, Ganfeng Lithium 같은 회사들이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에 줄줄이 광산 지분을 확보한 것도 이 전략의 연장선 상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산업계 입장에선 ‘정책이 이미 방향을 정해줬으니 돈을 따라가면 된다’는 단순한 계산이 발동했다. BYD는 원래 휴대폰 배터리 업체였고 CATL은 노트북용 셀을 만들던 기업이었는데 이들은 정부가 전기차를 차세대 제조업 중심축으로 지정하자마자 공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동차 제조보다 배터리 기술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면 내연기관에서 약하던 중국이 오히려 선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던 것이다.
중국이 전기차 혁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국의 이와 같은 전기차 계획을 도와준 환경들은 무엇이었을까. 다른 나라가 이렇게 했으면 100% 실패했을 것이 뻔한데 중국이 이렇게 해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쉽게 말하자면 그 정책을 떠받칠 토양 자체가 워낙 특이하게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전략을 미국이나 유럽이 시도했다면 중간에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서 흐지부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평가다.
중국은 중앙정부가 방향을 정하면 지방정부, 국유은행, 민간기업이 동시에 움직이는 구조를 갖고 있다. 산업 전환을 ‘명령형’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체제다. 내연기관을 포기하고 배터리 중심으로 산업을 재편한다는 건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동자 반발과 부품업체 붕괴, 세수 감소 같은 정치적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중국은 정부 주도로 지방 산업단지를 통째로 갈아엎고 전기차 클러스터를 조성했다. 상하이, 선전, 허페이, 창사, 충칭 등 인구가 가볍게 천만 단위가 넘는 대도시들이 한꺼번에 움직였고 여기에 국영 에너지 회사까지 결합하면서 전환 속도는 압도적으로 빨라졌다.
공급망의 완전한 내재화도 큰 역할을 했다. 배터리, 모터, 전력 반도체, 희토류 자석, 양극재, 음극재까지 모두 중국산이다.
한국은 셀은 잘 만들어도 리튬 정제는 못 하고, 유럽은 배터리 팩 조립만 할 뿐 셀은 수입에 의존한다. 반면 중국은 원료부터 셀, 팩, 완성차까지 모두 한 나라 안에서 돌릴 수 있다. 이런 수직 통합 구조 덕분에 정부가 “보조금을 주겠다” 한마디만 해도 공급망 전체가 동시에 움직였다.
가격 파괴를 가능하게 한 규모의 경제도 빼놓을 수 없다. 실험용으로 1~10대를 만드는 것과 실험용으로 1만~10만 대를 만드는 것은 차이가 크다. 중국은 내수 시장이 워낙 커서 한 모델을 수십만 대 단위로 바로 생산할 수 있었다.
전기차 초창기엔 부품 단가가 비싸 대부분 나라들이 손해를 봤지만 중국은 시장이 워낙 커서 손해를 ‘양으로 메우는 구조’를 만들었다. BYD의 경우 모델 한 개를 10만 대 팔면 손익분기점을 넘기는데, 14억 명에 달하는 중국 인구와 비교해 보면 절대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단순 인구 비율로만 보면 한국에서의 차량 300대가 중국에서의 10만 대에 해당한다. 한국에서는 그 어떤 매니악한 자동차도 제대로만 만들었다면 300대를 팔기는 아주 쉽다. BYD의 다양한 시도가 실패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생산량과 수지타산 가능성은 다른 나라 제조사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소비자 행동을 정책으로 통제할 수 있는 환경도 전환의 속도를 끌어올렸다. 중국은 도시별로 내연기관 번호판을 제한하거나 전기차에만 우선 공급했다. 베이징에서는 내연기관차를 등록하려면 추첨에 당첨돼야 하지만 전기차는 즉시 등록이 가능하다.
한국이나 유럽에서 이런 정책을 시행하면 반발이 폭발하겠지만 중국은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해도 정치적 리스크가 거의 없다. 이 같은 통제 구조가 전환 속도를 엄청나게 끌어당겼다.
한편 자본의 방향성도 통일되어 있었다. 서방의 민간 자본은 수익성을 기준으로 움직이지만, 중국의 국유은행은 전략 산업이라면 수익성보다 ‘국가 목표’에 따라 자금을 빌려줬다. 전기차 스타트업 수십 개가 동시에 태어날 수 있었던 것도 대부분이 적자를 내면서도 은행 대출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기술이 늦은 것이 오히려 이점이 된 구조도 있었다. 내연기관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기존 산업의 기득권 저항이 거의 없었다. 독일이나 일본처럼 엔진 기술이 앞선 국가는 전기차로 전환하는 순간 자신들이 쌓아온 기술자산이 무용지물이 되지만 중국은 잃을 게 없었기에 새로운 체제로 바로 뛰어들 수 있었다.
같은 전략을 서방이 따라 한다 해도 정치, 노조, 시장이라는 벽에 부딪혀 이 속도를 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모든 것에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법, 부작용은 없었나.
우선 과잉 경쟁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정부가 보조금과 정책으로 길을 열어주자 수십 개의 스타트업이 한꺼번에 생겨났고 그 결과 유사한 차종이 쏟아져 나오며 출혈 경쟁이 일상이 됐다.
판매량은 늘지만 이익률은 급격히 떨어졌고 많은 기업이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손해를 보며 파는 구조’에 갇혔다. 이런 경쟁이 장기화되면서 산업 전체의 재무 체력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전형적인 공급 과잉의 현상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앞서 언급한 BYD의 성장세 둔화다. BYD는 전기차 생태계의 최대 수혜자였고 정부의 보조금 시스템과 대규모 내수 덕을 가장 많이 본 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절대적으로 ‘내수 중심 성장’에 의존하고 있었다.
문제는 중국 내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2025년 들어 전기차 보급률이 40%를 넘기면서 신규 수요는 둔화하고 있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신차 교체 주기가 길어졌다. 정부는 더 이상 예전처럼 보조금을 풀 수 없고 그 결과 BYD는 예전의 판매 속도를 유지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게다가 2024년부터는 20만 위안 이하의 중저가 시장에서 샤오미, 리오토, 화웨이 계열 브랜드들이 줄줄이 신형을 내놓으면서 ‘가성비 전쟁’이 벌어졌다. BYD가 만든 시장을 이제는 후발주자들이 잠식하기 시작한 셈이다.
특히 2023년 말에 출시되어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된 샤오미의 SU7, 화웨이의 아이토 M9 같은 모델은 소프트웨어 완성도와 브랜드 충성도에서 젊은 소비자층을 빼앗고 있다.
그동안 BYD가 강점으로 내세웠던 배터리 내재화, 대량생산 체계가 이제는 ‘차별화 포인트’가 아니라 ‘기본 스펙’으로 전락한 것도 문제다.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를 외부에서 사와야 했을 때 BYD는 스스로 배터리를 만들었고, 덕분에 원가를 확 낮출 수 있었다.
또 차체·배터리·모터를 한 공정에서 통합 조립하는 ‘수직계열화’ 덕에 공급망 불안이나 납기 지연 걱정이 없었다. 이 부분이 BYD의 절대적인 차별화 포인트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비밀 병기’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경쟁사들이 BYD의 성공을 보고 전부 같은 방식을 따라했기 때문이다.
CATL이 배터리 원가를 낮춰 외부 공급을 안정화했고 샤오미나 화웨이 같은 신생 브랜드들도 BYD 못지않게 수직 통합 공정을 갖추기 시작했다. 심지어 지방정부가 나서서 스타트업들에게 BYD를 좀 보고 배우라며 BYD식 생산 모델을 지원해줬다.
BYD가 한때 “우리는 배터리까지 직접 만든다”고 자랑하던 것이 이제는 당연히 다들 해야 하는 수준으로 평준화된 것이다. 이 말은 곧 BYD의 경쟁력이 기술 우위가 아니라 ‘규모의 우위’에만 남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장이 포화되면 규모의 우위도 한계에 부딪힌다.
BYD는 글로벌 수출로 이 과잉분을 해소하려 하고, 한국에도 비와이디코리아라는 법인을 세워 수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최근 한국이 중국의 6대 전기차 수출국이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당연히 중국 전기차 업계는 유럽과 미국의 반덤핑 조사, 고율 관세에 직면하게 되었다.
판박이처럼 반복되는 정부 기반 성장의 악몽
중국 정부도 이 문제를 아주 잘 인지하고 있다. 국무원을 중심으로 전기차 산업의 과열 문제를 인식하고 대응에 나서는 중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2025년 7월, 전기차 업계의 “비이성적 경쟁(irrational competition)” 을 막겠다고 공식 선언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는 끝없는 중국 내수 전기차 기업들 사이의 가격 인하 전쟁과 과잉생산 문제를 문제삼고 가격 감시, 원가 조사, 품질 개선 압박 같은 규제를 준비 중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보면서 중국의 부동산 위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2020년 초반에 한 차례 크게 이슈가 되었던 중국발 부동산 부실, 헝다(恒大) 그룹 사태, 비구이위안(碧桂园) 사태, 그리고 지금의 전기차 업계는 속을 까보면 놀라울 만큼 비슷한 패턴이 숨어 있다.
헝다는 한때 중국 2위 부동산 개발사로 전국에 1,30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성장 신화’로 불렸다. 하지만 정부가 2020년 ‘세 가지 레드라인’ 정책을 도입해 부채 의존형 확장을 억제하자 유동성이 급격히 말랐다.
분양 대금보다 빠르게 늘어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2021년 말 결국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다. 미완공 아파트 수백만 호가 방치되며 사회적 불안까지 번졌다.
비구이위안 역시 비슷한 궤적을 밟았다. 한때 헝다를 제치고 중국 최대 주택건설업체로 불렸지만 지방정부의 토지 매입 경쟁과 분양 의존 구조 속에서 과잉 확장을 멈추지 못했다.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자 매출이 급감했고 자금 조달이 막히면서 2023년 대규모 채무불이행 사태를 맞았다. 두 회사 모두 성장의 원동력이던 부채가 곧 붕괴의 시한폭탄으로 바뀌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줬다.
헝다와 비구이위안은 과거 중국 정부가 도시화·주택 보급을 성장의 엔진으로 삼았고 지방정부는 세수 확보를 위해 부동산 개발을 무한대로 밀어붙였기 때문에 발생한 부동산 버블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정책이 멈추는 순간 그 동안 인위적으로 부풀려진 수요가 무너져 내리면서 자금줄이 끊겼다는 것이다.
지금 전기차 업계도 거의 똑같은 프레임에 갇혀 있다. 단지 ‘아파트 대신 전기차’, ‘분양 대신 보조금’, ‘토지 대신 배터리’로 바뀌었을 뿐이다. 전기차는 정부가 차세대 제조업의 구심점으로 지정하면서 천문학적인 보조금과 금융 지원을 쏟아부은 산업이다.
그 덕분에 수십~수백 개의 스타트업이 단기간에 생겨났고 지방정부들은 앞다투어 공장을 유치했다. 그런데 부동산처럼 여기에도 “수요보다 공급이 먼저”라는 함정이 있었다. 모두가 시장이 영원히 커질 거라 믿고 생산능력을 키웠는데 2025년에 들어 수요가 둔화하자 갑자기 과잉생산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정책 의존형 성장이다. 헝다도, 비구이위안도, BYD를 비롯한 전기차 기업들도 정부가 만든 규칙 안에서 커졌다. 정부가 산업을 키우는 ‘부모’ 역할을 하다 보니 기업은 자율적 혁신보다 ‘정책에 맞춰 움직이는 생존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산업의 방향성이 정부 예산과 정책 사이클에 지나치게 종속돼 있다는 점에서 부동산과 전기차는 본질적으로 같은 병을 앓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방정부의 과열 경쟁과 부채 리스크도 완벽히 똑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부동산 때는 각 지방이 개발구역을 늘리고 토지를 팔았고, 지금은 전기차 산업단지를 짓고 보조금을 약속하면서 똑같이 빚을 내고 있다.
지방 재정이 버티지 못하면 산업 인프라도 같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부동산 위기 때 본 그림이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산업은 다르지만 논리는 똑같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래서 모두가 중국의 전기차 업계는 부동산처럼 몰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중국의 부동산은 ‘끝난 시장’이라면 전기차는 ‘조정 중인 산업’이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둘 다 과잉과 정책 의존이라는 공통의 병을 앓고 있지만 전기차는 그 구조 안에서도 회복과 혁신의 여지가 훨씬 더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동산은 ‘소비의 결과물’이고 전기차는 ‘기술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한 번 공급이 끝나면 더 이상 만들 필요가 없다. 도시가 포화되면 수요는 거기서 끝이다. 그래서 헝다나 비구이위안 같은 회사가 무너진 것은 어차피 오게 될 끝이 온 것 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전기차는 기술 발전과 글로벌 수요가 계속 진화하는 산업이다.
배터리, 자율주행, 충전 인프라, 에너지 저장, AI 기반 차량 운영 같은 연계 산업이 무한히 생겨난다. 공급 과잉이 발생해도 기술 혁신이 새로운 시장을 계속 만들어내는 구조여서 정책만 바꾸면 생태계를 다시 살릴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렇게 보면 전기차는 기술경쟁이 곧 구조조정의 해법이 되는 시장이다. 부동산처럼 “지으면 팔린다”가 아니라 기술력 있는 기업만 살아남는다. 그래서 경쟁이 과열돼도 결국 산업이 스스로 정화될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테슬라가 중국 내 판매 가격을 낮춰 시장을 흔들거나 BYD가 중국 안에서 내수 시장 평정에 집중하기로 결정하면 어차피 기술력과 자금이 부족한 회사부터 탈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 정부가 그 과정을 방치하지 않고 기술 표준화나 품질 기준을 강화하면 시장은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중국 정부는 이미 그렇게 하기로 결심한 듯 하다. 부동산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겠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부동산은 수요가 줄면 다 같이 죽지만 전기차는 ‘약한 기업이 도태되며 강한 기업이 기술로 시장을 재편할 수 있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전기차는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글로벌 흐름과 맞물려 있다. 중국 부동산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남의 나라 아파트에 불과하지만 전기차는 글로벌 공통 의제인 탄소중립, 석유 의존 탈피, 전력망 디지털화 같은 장기적인 이슈로 묶여 있다.
그래서 정책이 잠깐 흔들려도 산업의 방향성은 되돌릴 수 없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 전기차는 규제와 동시에 수출 지원·기술 표준화·품질 규제를 강화하는 식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유도한다면 충분히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전기차 업계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지,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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