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임대차 시장의 변화가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이행 중이다. 과거엔 ‘전세’라는 고정된 틀이 주택 임대시장의 중심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 틀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고 ‘월세 시대’로의 전환이 진행 중이다.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2025년 상반기 전국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 비중이 61.6%를 기록했다는 보고가 있다. 서울은 그보다 더 심각해서 월세 비중이 63~64%대까지 올라가 있다. 이 말은 곧 전세 중심 구조가 이제 옛날 방식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뜻이다.
외국에서는 집을 소유하지 못하면 대부분 월세를 내며 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국만은 오랫동안 ‘전세’라는 중간지대를 유지해왔다. 사실 전세를 없애자는 논의는 한두 번 나온 것이 아니다. 매우 고리타분한 주제다.
가장 최근 예시를 보면 10월 20일 국정감사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전세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레버리지, 즉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구조가 계속 확대된다”며 “고통이 있더라도 끊어야 할 시점”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전세가 주거 불균형의 핵심 고리로 지목된 것이다.
전세제도를 완전히 없애야 집값이 잡힌다는 논리다. 전세를 통해 임대인은 보증금을 레버리지로 활용하며 여러 채의 주택을 사고 임차인은 낮은 금리로 거주를 이어왔다.
이 구조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전세가가 매매가를 밀어올리고 결과적으로 집값 상승의 가속기가 되어왔다는 해석이다. 반면 월세 중심 시장으로 전환되면 임대 수익률이 수익의 기준이 되고 집값은 투자 대상이 아닌 ‘임대 수익 자산’으로 재평가된다는 주장도 뒤따른다.
실제로 정부가 전세대출을 줄이고 보증금 운용을 제한할 경우 임대인은 기존에는 전세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던 부동산 구입 대금을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마련할 수 없으니 거품이 낀 집값이 자연히 원래대로 조정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렇지만 실제로 부동산 시스템이 굴러가는 과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몇 가지 요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월세의 과학
10억 원짜리 집을 전세로 내놓을 때는 5억 원에 나가고 월세로 내놓을 때는 200만 원에 나간다고 하자.
이 집을 투자 자산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몇 퍼센트의 수익률을 제공하는 투자 자산일까? 매매가 대비로 계산한 2.4%일까, 아니면 전세가 대비로 계산한 4.8%일까? 정답은 4.8%이다.
흔히들 매매가를 기준으로 계산해 200만 원 x 12개월 / 10억 원 = 2.4%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그렇게 따지지 않는다. 부동산을 투자 자산으로 볼 때는 ‘내가 실제로 묶는 돈’이 얼마냐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전세를 5억 원에 놓을 수 있는 집을 월세 200만 원으로 전환한다면 사실상 그 5억 원이 내 자본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전세 세입자가 맡겨두던 5억을 빼고 내가 대신 집을 점유하게 되는 구조이므로 그만큼의 자본을 새로 투입해 월세 수익을 얻는 개념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월세 200만 원은 5억 원을 투자해 얻는 수익으로 계산하는 게 맞다. 이렇게 계산하면 연 수익률은 200만 원 x 12 / 5억 원, 4.8%가 된다. 결국 월세 수익률을 따질 때는 매매가가 아니라 전세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매매가는 시세 차익을 노리는 ‘차익형 자산’의 기준이고 월세는 현금흐름을 노리는 ‘수익형 자산’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팔기 전까지는 차익이 실현되지 않지만 월세는 지금 당장 들어오는 돈이다.
그래서 부동산 시장에서는 전세 대비 월세의 비율, 즉 전월세 전환율이 진짜 수익률을 보여주는 지표로 통한다. 10억 원짜리 집의 월세 수익률을 2.4%로 계산했다면 당신은 ‘집주인’의 관점에서 본 것이고, 4.8%로 계산했다면 ‘투자자’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같은 숫자라도 시선이 달라지면 수익률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조선일보의 9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전월세 전환율이 최근 4.25%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전월세 전환율은 방금 계산한 것과 같이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바꿨을 때의 평균적인 환산 비율을 의미하며 임대인들이 목돈에 대해 최소 4.25%의 월세 수익률을 원한다고도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다만 이 전환율은 현재 시장에서 전세 대비 월세가 어느 수준에서 형성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일 뿐 임대인들이 반드시 4.25% 이상의 수익을 기대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이 수치는 세금, 관리비, 공실 위험 등을 고려하기 전의 명목 수익률이다. 임대인의 입장에선 순수익 기준으로 5~6%를 목표로 할 수도 있고 임차인은 그보다 낮은 수준을 요구하며 타협을 시도할 수도 있다.

임대인 입장에서든 임차인 입장에서든 다양한 장치로 보호받고 있는 월세는 사실상 준무위험 수익률로 간주되며,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2.5%일 때 전월세 전환율이 4.25%라는 것은 시장참여자들이 완벽한 무위험인 예적금 대비 전세의 리스크에 따른 스프레드(Spread)를 1.75% 정도로 추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다른 자산과 비교하면 회사채 시장에서 투자등급 회사채 중 상대적으로 아래쪽에 속해 있는 BBB+~A- 등급 회사채에 속하는 구간에서 기대되는 수익률이다.
다만 여기서 전세 제도가 사라진다면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대부분의 주택에서 이제 전월세 전환율이 아닌 매매가, 즉 집값 대비 월세로 수익률이 계산되어야 한다. 앞서 말한 ‘투자자’의 관점은 사라지고 이제 ‘집주인’의 관점만이 남는 것이다.
월세 기대 수익률의 함정
○ 전세 중심 시장에서 임대인의 기대 수익률은 차익형 자산 관점에서의 투자 수익률
○ 월세 중심 시장에서 임대인의 기대 수익률은 수익형 자산 관점에서의 투자 수익률
한국처럼 과거 전세가가 높았던 시장에선 보증금을 통한 운용이나, 보증금으로부터 받는 이자 수익은 사실상 무시하고 차익을 노리는 운용이 가능했지만 월세체제로 전환되면 보증금 회수가 아니라 매월 수취하는 월세가 수익의 중심이 된다.
모든 투자 수익률은 무위험 금리인 한국은행 기준금리 2.5%를 기준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이자를 주느냐? 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보다도 낮다면 사실상 투자 자산으로서의 의미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시세 차익으로서의 투자 수익률이 아니라 수익형 자산 관점에서의 투자 수익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현재 매매가 대비 월세는 다른 무위험 자산은 물론 한국은행 기준금리와 비교해서도 특출난 우위를 보여주지 못한다. 서울의 대단지 아파트를 예로 들면 매매가 대비 월세는 1~2% 이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투자 수익률 확보를 위한 집값 하락 또는 월세 상승의 압력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일어나게 된다. 하나는 월세가 올라가는 방식이고 또 하나는 자산가격(즉 집값)이 내려가면서 임대수익 대비 가격이 싸지는 방식이다.
전자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며 시장에서는 현재 후자를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만약 집값이 하락하지 않는다면 월세가 올라야 임대인이 만족할 수 있는 수익구조가 된다. 여기서 아래와 같은 논리가 작동한다.
○ 집주인은 집값 대비 월세를 기준금리 이상으로 맞추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월세가 폭등하게 된다.
○ 그러나 400만 원, 500만 원씩 주고 그 집에 살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 집주인은 월세 수입이 끊기니 버티기 힘들어 주택을 저렴한 가격에 팔거나 월세를 낮춘다.
○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모든 것이 안정화된다.
이것이 현재 전세를 폐지하자는 논의의 핵심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집주인과 세입자라는 수요의 관점이 아닌 공급의 관점에서 생기는 문제다.
수요보다는 공급이 집값에 훨씬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은 광복 이후 한국 부동산 시장을 논할 때 항상 증명되어 왔던 사실이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의외로 과거 정부들은 집값을 해결하고자 할 때 수요 측면에서의 규제를 하는 것만큼이나 공급 측면에서도 목숨을 걸어 왔다. 그만큼 공급은 중요하다.
이제 건설사업자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자. 신규 공급을 하려면 아파트를 지을 때 사업성이 나와야 한다. 건설사업자들도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짜로 아파트를 지어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전세 제도가 없다면 이 아파트를 매입하는 사람들 중에는 실거주를 원하는 사람이 아닌, 임대 모델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하게 된다. 건설사업자는 이들에게 설득력 있는 집값 대비 월세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만큼 저렴하게 집을 건설해야만 한다.
하지만 현재 땅값, 인건비, 자재비(특히 철근·시멘트·레미콘 등)가 코로나-19 이전 대비 너무나도 폭등했기 때문에 도저히 임대사업자들이 원하는 요구를 맞출 수가 없다. 결국 사업성이 빠지고 신규 건설이 줄어든다.
한국주택환경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24년 서울 지역 재건축·재개발 현장의 평균 건설비는 3.3㎡당 약 842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0년의 약 528만 7천 원 수준과 비교하면 무려 59.4%나 상승한 수치다.
불과 4년 만에 공사비가 절반 이상 뛰어오른 셈이다. 특히 수입 원자재 가격과 환율 상승이 건설비 상승 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공급이 줄면 자연히 희소성이 생기고 임대료 상승 압력이 커진다. 이런 구조라면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은 오래 지속되기 힘든 구조이다.
지금 주택시장에서는 ‘월세가 비싸야 하거나’ 혹은 ‘집값이 내려가야’ 전세를 없애고 월세만 남겨놓은 임대 모델이 훌륭히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집값이 내려가면 새로 공급되는 주택의 임대 모델에서 사업성이 안 나올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면 공급이 끊길 수밖에 없다.
결국 공급은 끊겨서 집값의 하락에는 한계가 있고, 남아있는 집주인들은 여전히 기준금리 이상의 수익률을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월세가 하방은 막히고 상방은 열린 구조로 오를 수밖에 없다. 현재 시장은 아무래도 지금 그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필요악이 되어버린 전세
다시 한 번 건설사업자의 입장에서 보면 전세 제도는 임대 제도의 일부라기보다 사업 구조의 핵심 안전장치에 가까웠다. 전세가 존재할 때는 분양 초기부터 실거주자뿐 아니라 전세를 끼고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까지 동시에 시장에 유입될 수 있었다.
이들은 세입자의 전세금을 일종의 무이자 대출처럼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분양가가 높더라도 쉽게 매입 결정을 내렸다. 덕분에 건설사는 착공 전후로 대부분의 물량을 소화시켜 자금을 조기 회수할 수 있었고 고금리와 원자재 가격 상승에도 일정 수준의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세가 사라진 시장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건설사는 이제 실거주자 혹은 월세 수입을 추구하는 임대사업자만 상대해야 한다. 실거주자는 금리와 대출 한도에 민감해 고분양가를 감당하기 어렵고 임대사업자는 월세 수익률이 기준금리 이상이어야 움직인다.
이 경우 땅값과 자재비가 이미 급등한 상황에서는 사업성이 나오기 힘들다. 분양가는 내릴 수 없고 매입자는 줄어드니 결국 신규 사업이 보류된다. 과거에는 전세가 ‘시장 내 자금 순환의 완충장치’ 역할을 하며 공급을 지탱했지만 그 장치가 사라진 지금은 공급의 기반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
건설사의 입장에서 전세는 고비용 시대에도 사업이 돌아가게 만드는 완충재의 역할을 했다고 이해하면 쉽다.
물론 이 현상이 바람직하다는 건 아니다. 이런 구조야말로 전세가 부동산 시장에 과도한 유동성을 공급해 집값 상승을 부추겨온 증거이기 때문이다. 세입자의 전세금이나 은행의 전세대출이 사실상 ‘개인 간 금융상품’처럼 작동하며 대규모 자금이 시장으로 흘러들어가 집값을 끌어올린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세를 제도권 밖으로 완전히 밀어내는 건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지금의 고비용 구조 속에서 실거주자와 월세 임대사업자만으로 시장이 유지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전세는 시장의 왜곡된 유동성을 만든 동시에 그 유동성으로 시장을 떠받치는 역할도 해왔다. 이건 전세가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그 시스템 위에 너무 깊이 뿌리내린 탓이다. 전세는 본래 임시방편이었지만 지금은 주택금융, 임대수익, 공급 구조를 잇는 완충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전세를 지금 수준 이상으로 없애거나 규제를 더욱 강화한다면 그 결과적인 부작용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치명적인 형태로 발생할 것이다. 부동산에 관심이 있다면 이 흐름을 주목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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