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반도체는 날아가는데 화학주는 왜 제자리인가

  • 고건 기자
  • 입력 2025.10.06 19:53
  • 댓글 0
  • 글자크기설정

5552.png

 

한국과 미국 증시가 나란히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지만 화학산업만큼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와 AI, 자동차, 방산 등 주요 업종이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는 동안 롯데케미칼을 비롯한 국내 화학 대형주들은 오히려 지난 15년 동안의 최저가 부근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흐름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시장에서도 다우, 듀폰 같은 대표 화학기업들의 주가는 장기간 성장 부진이나 침체에 빠져 있으며 일부는 배당을 줄일 정도로 업황이 악화됐다. 글로벌 증시가 경기 연착륙 기대에 들썩이는 와중에도 화학 섹터는 여전히 ‘침체의 섬’에 갇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한국에서 훨씬 심각하다. 왜 그럴까, 이번 기사에서는 한국 화학 업종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어 본다.

 

한국 화학산업의 성장사는 곧 산업화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1960~70년대 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밀어붙이던 시기 석유화학은 정유·철강·조선과 함께 국가 핵심 전략산업으로 지정됐다. 원유를 들여와 나프타를 분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플라스틱과 합성섬유, 고무를 만들어내는 일련의 공정이 국가 산업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럭키(현 LG화학), 한화케미칼(현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 등이 주역으로 떠올랐다. 1980~90년대에는 여수와 울산, 대산을 중심으로 대규모 석유화학단지가 조성되며 국내 생산기반이 완성됐다. 

 

이후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들여와 생산 효율을 높였고 2000년대 들어 중국의 폭발적인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한국 화학기업들은 글로벌 수출국으로 도약했다. 당시 중국이 공장을 지을 때마다 한국의 화학설비 가동률도 함께 치솟았다. 

 

LG화학은 합성수지와 전지 분야로, 롯데케미칼은 범용 플라스틱으로, 한화솔루션은 PVC와 태양광으로, 금호석유화학은 합성고무로 영역을 확장했다. 

 

이 시기에는 유가가 안정되고 중국의 수요만 견조하면 ‘정유→화학→전자’로 이어지는 한국 제조 사이클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던 시대였다. 한때 그래서 화학주는 반도체, 자동차와 함께 코스피를 움직이는 3대 축으로 불릴 만큼 시장의 중심에 있었다.

 

석유로부터 시작된 화학산업

 

3242.png

 

화학산업의 근간은 석유다. 전 세계 대부분의 화학제품은 결국 원유에서 추출한 나프타를 분해해 얻는 기초유분에서 출발한다. 나프타를 고온에서 분해하면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같은 물질이 만들어지는데 이들이 바로 플라스틱, 합성섬유, 고무, 세제, 비료 등 수천 가지 화학제품의 원료가 된다. 

 

그래서 유가가 오르면 원가가 급등하고, 유가가 떨어지면 재고평가손실이 발생하는 등 석유 가격이 곧 업황을 좌우한다. 왜 굳이 석유에서 화학제품을 만들어야 할까? 

 

석유만큼 탄소와 수소가 풍부하고 가격이 저렴하며 대량으로 가공할 수 있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방울의 원유에는 탄화수소 사슬이 빽빽히 들어 있고 이를 화학적으로 조합하면 거의 무한대의 소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때문에 석유는 여전히 화학산업의 가장 안정적인 원천으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바이오 기반 원료나 폐플라스틱 재활용, 이산화탄소 전환 공정 같은 ‘탈석유화학’ 기술이 주목받고 있지만 생산단가가 높고 기술적 한계가 커 당분간은 석유 중심의 산업 구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저유가 환경에서는 원자재 비용이 덜 들어서 좋은 것 아닌지?

 

현재 세계는 근 5년 동안 최저 수준의 유가를 경험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유가 하락은 화학기업에 호재로 보인다. 원재료인 원유와 나프타 가격이 내려가면 생산비용이 줄어드는 만큼 수익성이 개선돼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실제 산업 구조는 정반대로 움직인다. 석유화학업종의 수익은 유가 수준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스프레드’, 즉 원료와 제품 가격의 차이로 결정된다. 문제는 유가가 떨어질 때 대부분의 경우 글로벌 경기 둔화가 동시에 일어난다는 점이다. 

 

현재는 글로벌 경제에 약간의 경기 둔화 국면이 보이고 있으며 그 이유는 미국발 관세 분쟁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화학제품 수요가 줄어들고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유분 가격 역시 급락한다. 원가가 내려가도 판매가격이 더 빠르게 떨어지기 때문에 기업의 마진은 오히려 악화된다. 

 

여기에 석유화학 공장은 가동을 멈추기 어렵다. 한 달만 세워도 손실이 막대해 재고가 쌓여도 생산을 계속해야 한다. 그 결과 시장에 공급이 넘치고 제품 가격은 더 떨어진다. 유가 하락이 오히려 화학업종에 손해를 가져오는 이유다.

 

또 하나의 변수는 재고평가손실이다. 고유가 시점에 비싼 원유와 나프타를 사둔 기업은 유가가 급락하면 재고의 장부가치가 떨어지면서 손실을 반영해야 한다. 

 

결국 유가 하락은 화학기업의 비용을 낮추는 동시에 제품가격과 재고가치를 동시에 깎아내리는 양날의 칼이 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유가 절대 수준보다 중요한 건 제품가격이 원료보다 얼마나 덜 떨어지는가 하는 스프레드”라며 “지금처럼 글로벌 공급이 과잉인 상황에서는 유가가 오르든 내리든 기업의 실적 개선 여력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지금은 그렇다 치고, 이는 롯데케미칼 같은 대표적 화학기업의 주가가 2021년 이후 이렇다 할 반등 없이 1/4, 1/5 수준으로 떨어진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무언가 4년 동안 지속된 위기, 해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 위기가 분명히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2021년 이후 화학기업들의 시계는 멈췄다. 팬데믹 직후까지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2020~2021년은 오히려 ‘황금기’였다. 유가가 급반등하고 글로벌 공급망이 꼬이면서 플라스틱, 합성수지, 고무 등 화학제품 가격이 폭등했다. 

 

3242.png

 

코로나19로 인한 ‘집콕 수요’가 폭발하면서 가전제품, 포장재, 건축자재 수요가 급증했고 스프레드는 사상 최고 수준까지 벌어졌다. LG화학, 롯데케미칼, 금호석유화학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도 이 시기였다. 그러나 그 호황은 너무 짧았다.


2022년에 접어들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자 원가 부담이 급격히 불어났고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최대 소비처가 사실상 멈췄다. 

 

동시에 미국과 중동에서는 대규모 석유화학 플랜트가 새로 가동되며 공급이 폭증했다. 수요는 줄고 공급은 늘어난 전형적인 과잉 국면이 펼쳐진 것이다. 그 결과 화학제품 가격은 폭락했고 스프레드는 급격히 축소됐다.


2023년 들어 중국이 봉쇄를 풀었지만 상황은 예전 같지 않았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축용 자재 수요가 회복되지 않았고, 전기차·2차전지 산업의 급성장으로 일부 범용 화학제품은 대체재에 밀려났다. 글로벌 경기 둔화까지 겹치며 제조업 전반의 소비가 위축됐고 국내 화학기업들의 가동률은 70~80% 수준까지 하락했다.


현재는 문제의 양상이 더 고착화되었다. 유럽은 환경 규제로 석유화학 제품의 소비 자체를 줄이고 있고 중국은 자국 내 대규모 설비 확충을 통해 수입 의존도를 낮췄다. 한때 한국 화학산업의 성장 엔진이었던 ‘중국 수출 모델’이 스스로 붕괴된 셈이다. 과거처럼 “중국이 사주니까 만든다”는 구조가 완전히 깨진 것이다.


결국 2021년의 사상 최대 실적은 코로나-19 팬데믹 특수로 만들어진 착시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후 세계적인 공급 과잉과 수요 둔화, 원가 상승이 동시에 덮치며 업황은 장기 침체로 빠져들었다

 

중국의 에틸렌 ‘과잉생산’, 한국 화학산업의 목을 조르다

 

만약 중국 수출 모델이 붕괴된 것에서 그쳤다면 한국 화학산업은 빠르게 경로를 수정하여 첨단 화학제품으로의 전환으로 반등할 여지가 충분했겠지만 불행하게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중국은 최근 몇 년 동안 에틸렌을 비롯한 기초유분 생산설비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경고가 잇따랐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화학소재 자급화’라는 구호 아래 증설을 멈추지 않았다. 

 

중국 내 지방정부들은 세수 확보와 고용 창출을 이유로 플랜트 유치를 경쟁적으로 밀어붙였고 국가 차원의 산업보조금도 쏟아졌다. 그 결과 2025년 기준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자국 수요를 훌쩍 넘어섰다. 

 

수익성이 떨어지더라도 생산을 줄이지 않는 구조가 굳어진 셈이다. 문제는 이 초과공급 물량이 해외 시장으로 흘러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범용화학 제품이 아시아 시장을 덮치면서 주변국의 스프레드를 짓눌렀다. 

 

원가가 낮은 미국산 에탄계 제품과 중국의 저가 범용제품 사이에서 한국 화학업계는 완전히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한국의 상황은 특히 심각하다. 수출 의존도가 높고, 그중 절반 이상이 중국향이다. 과거에는 ‘중국이 사주니까 만든다’는 공식이 통했지만 이제는 그 시장이 스스로 자급체제를 구축했다. 

 

2024년 기준 국내 주요 석유화학단지의 가동률은 70% 아래로 떨어졌고 일부 기업은 60%대까지 추락했다. 고정비 부담이 커서 공장을 멈출 수도 없는 구조에서 저가 경쟁까지 맞물리니 수익성은 끝없이 추락했다.


여기에 한국 기업들은 코로나19 직후의 짧은 호황기에 설비를 늘린 게 화근이었다. 당시 유가 상승과 공급망 혼란으로 역대급 실적을 올리자 대형사들이 공격적으로 투자를 확대했다. 

 

하지만 2022년 이후 유가 급등과 중국 봉쇄, 글로벌 경기 둔화가 동시에 닥치자 수요가 증발했고, 확대한 설비는 족쇄로 변했다. 공장을 멈출 수 없으니 재고가 쌓이고, 재고가 늘면 제품 가격은 더 떨어졌다.


정부의 대응도 늦었다. 2025년에 들어서야 산업부가 업계 구조조정 방안을 공식 언급하며 “범용 중심 구조를 고부가·친환경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이미 손실이 누적된 뒤였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증설 속도를 감안하면 2026년까지도 뚜렷한 반등은 어렵다”고 말했다.


유럽은 환경 규제 탓에 스스로 생산을 줄이고 있고 미국은 원가 경쟁력으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둘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공급과잉의 한가운데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때 반도체, 자동차와 함께 코스피의 3대 축으로 불리던 화학 산업이 이제는 ‘산업화 시대의 유물’처럼 취급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을 만들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

 

잘못된 타이밍의 투자, 잘못된 의존도, 모든 것이 겹친 화학산업의 몰락을 유가 반등, 환율 효과 같은 외부 요인으로 회복할 수 있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산업 구조를 통째로 바꾸는 결단뿐이다.


첫 번째 과제는 ‘범용’에서 ‘특수화학’으로의 대전환이다. 현재 국내 화학기업 매출의 70% 이상이 여전히 플라스틱, 합성수지, 합성고무 등 저마진 범용 제품에서 나온다. 이 시장은 이미 중국이 원가 경쟁력으로 장악했다. 

 

반면 반도체 포토레지스트, 2차전지 전해질, 탄소섬유, 고기능성 수지 같은 특수화학 제품은 세계적으로 공급이 부족하다. LG화학과 한화솔루션이 일부 진출했지만 전체 산업의 체질을 바꾸기엔 아직 미미하다. 

 

업계는 단순 감산이 아니라 낡은 나프타 크래커 라인을 줄이고 첨단소재 공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두 번째 과제는 ‘탈석유화학’으로의 전환이다. 전 세계 화학기업들이 폐플라스틱 재활용과 탄소전환(CCU), 바이오화학 기술로 이동하는 동안 한국은 여전히 ‘원유-나프타-에틸렌’이라는 구식 체계에 묶여 있다.

 

이 구조는 탄소배출 규제가 강화되는 환경에서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독일 BASF와 네덜란드 LyondellBasell은 이미 폐플라스틱을 분해해 나프타 대체 원료로 쓰거나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화학 원료로 전환하는 공정을 상용화했다. 

 

한국도 기술 경쟁력 확보에 나서야 하지만 지금은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러 있다. 수익성은 낮더라도 ‘생존권을 지키는 보험’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과제는 공장 감축과 산업 재편을 포함한 구조조정이다. 이미 수요가 줄고 공급이 넘치는 시장에서 전 라인을 가동하는 건 불가능하다. 정부는 2025년 들어서야 구조개편 방향을 제시했지만 구체성이 부족하다. 

 

기업들이 스스로 더 이상 전 라인을 다 돌릴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정부가 내놓은 산업재편안은 여전히 추상적이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감산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시장은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 어렵다. 업계 자율 감산 없이는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처럼 에탄 크래커 경쟁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중국처럼 내수로 버틸 수도 없다. 비효율적인 설비를 과감히 접고 가동률을 유지할 수 있는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압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정유-화학-배터리’ 통합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의 정유사와 화학사는 여전히 따로 움직이지만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이 경계를 없앴다. 미국 또한 우리와 비슷하게 중국 화학기업과의 경쟁에 직면해 있었고, 이들이 한발 더 빨리 움직였기 때문이다.

 

엑손모빌과 토탈에너지는 정유 부산물에서 바로 배터리 전해질, 수소, 탄소복합소재를 만드는 일체형 시스템을 구축했다. SK, 한화, LG 역시 에너지·소재·배터리 라인을 하나로 묶어야 시너지가 나온다. ‘석유에서 화학으로, 화학에서 배터리소재로’ 이어지는 흐름이 완성돼야 값싼 중국산 플라스틱을 대체할 길이 열린다.


결국 한국 화학산업의 마지막 방아쇠는 ‘싸게 많이 만드는 산업’에서 ‘비싸게 제대로 만드는 산업’으로의 전환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경기 회복이 아니라 산업 진화다. 구조조정의 고통이 단기 손실로 보일 수 있지만 이를 미루면 산업 전체가 사라질 것이다.

전체댓글 0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반도체는 날아가는데 화학주는 왜 제자리인가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