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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데이터센터의 자기보호 본능, 미국 전력망에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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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22일 미국 워싱턴DC 인근에서 송전선 한 가닥이 끊어졌다. 통상 이런 고장은 전력망이 몇 초 만에 스스로 회복한다. 이번에는 회복까지 10분이 넘게 걸렸다. 인근에 밀집한 AI 데이터센터 수십 곳이 거의 동시에 전력망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이 사고는 전력 부족과는 다른 종류의 문제를 드러냈다. 전기가 모자라서 생긴 일이 아니라, 전기를 쓰던 거대한 소비처가 한꺼번에 사라져서 생긴 일이다. AI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이런 사고는 잦아질 수밖에 없다. 

 

본 기사에서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데이터센터가 전력망을 흔드는지, 이 문제가 얼마나 커질지, 그리고 기술과 제도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순서대로 짚어본다.


그날 전력망에서 벌어진 일은 무엇인가.


7월 22일 오전 버지니아 북부에서 지역 송전선 하나가 고장으로 멈췄다. 이 지역은 전 세계에서 데이터센터가 가장 빽빽하게 모여 있는 곳으로 업계에서는 '데이터센터 골목(Data Center Alley)'이라 부른다.


송전선이 끊기자 인근 데이터센터들은 자기 설비를 보호하기 위해 일제히 전력망에서 스스로를 떼어내고 자체 백업 전원으로 갈아탔다. 약 30초 만에 3.1기가와트의 전기 수요가 사라졌다. 1기가와트는 대략 원자력 발전소 한 기가 만들어내는 전력이다. 발전소 세 기 분량의 소비처가 한꺼번에 증발한 셈이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발전소들은 여전히 그만큼 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쓸 곳이 사라졌다. 갈 곳 잃은 전기가 전력망에 몰리면서 최고점에서는 3.49기가와트가 남아돌았다. 

 

그 여파로 버지니아에서 시카고까지 직선거리 1,000킬로미터가 넘는 지역에서 전압이 치솟았고 곳곳에서 전등이 깜빡였다. 전력망이 안정을 되찾기까지는 11분이 더 걸렸다.


이 사고가 일어난 곳은 PJM 인터커넥션이 관리하는 전력망이다. PJM은 뉴저지주에서 일리노이주까지 13개 주 6,700만 명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미국 최대 전력망 운영기관이다. 이날 이탈한 데이터센터는 사고 당시 PJM 전체 수요의 약 3%였다. 정전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현상을 포착한 방식도 특이했다. 팅랩스(Ting Labs)라는 스타트업은 가정용 콘센트에 꽂아 전기 화재를 예방하는 센서를 100만 가구 넘게 공급해왔다. 이 센서들이 전국의 전압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하는데, 이번 전압 급등이 어디까지 퍼졌는지를 이 가정용 센서망이 그대로 기록했다. 


데이터센터는 왜 전력망이 흔들리면 끊길 수밖에 없나.


원인은 세 겹으로 나뉜다.


가장 먼저 데이터센터는 전기에 극도로 예민한 소비처다. 일반적인 공장 설비는 모터나 전열기가 대부분이다. 이런 장비는 전압이 잠깐 처져도 계속 전기를 빨아들인다. 오히려 그 묵직한 관성이 전력망의 흔들림을 눌러주는 역할을 한다. 전력망 입장에서는 다루기 편한 부하다.


데이터센터는 반대다. 서버는 전압이 잠깐만 흔들려도 데이터가 손상되거나 장비가 상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서버는 무정전전원장치, 줄여서 UPS라는 장치 뒤에 둔다. UPS는 정전이 나도 서버에 안정된 전기를 계속 공급하는 배터리 장치다. 문제는 이 장치의 임무가 오직 서버 보호 하나라는 점이다. 전력망을 지키는 일은 UPS의 설계 목적에 들어 있지 않다.


여기에 UPS가 지나치게 빨리 반응하는 문제가 있다. 송전선이 끊기면 인근 전압이 순간적으로 떨어진다. 이를 전압 강하(voltage sag)라고 한다. 그런데 이날의 고장은 전력망 보호장치가 정상 작동해 수십에서 수백 밀리초, 1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저절로 해소될 종류였다. 데이터센터가 가만히 있었어도 전압은 알아서 회복됐을 상황이다.


그런데 UPS에 달린 저전압 감지 장치는 전압이 기준선, 보통 정격의 85~90% 밑으로 떨어지는 순간 기다리지 않고 즉시 서버를 전력망에서 끊어내고 배터리로 넘긴다. 

 

미국전력연구소(EPRI)의 기술 전문가 파라그 미트라는 이 문제를 순서(sequencing)의 문제로 규정했다. 전력망이 곧 회복될 참인데 UPS가 그 회복이 끝나기 전에 먼저 끊어버린다는 것이다. 서버는 UPS 배터리로 몇 분의 1초만 더 버티면 됐고 장비가 손상될 위험도 없었다. UPS는 기다리도록 설정돼 있지 않았을 뿐이다.


이렇게 되면 여러 곳이 동시에 끊긴다. 3%에 불과한 부하가 전력망 전체를 흔든 이유가 여기 있다. 한 지역에 밀집한 데이터센터들은 거의 동일한 보호 로직을 쓴다. 같은 기준값, 같은 판단 방식이다. 

 

전압 강하라는 동일한 신호가 도달하면 이들은 서로 신호를 주고받지 않고도 몇 초 안에 일제히 같은 결정을 내린다. 60곳이 동시에 끊기면 충격은 한 곳이 끊긴 것의 60배다. 전력망 입장에서는 개별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거대한 부하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물리적 이유도 있다. AI 서버는 전기공학에서 말하는 정전력 부하(constant power load)처럼 작동한다. 소비하는 전력의 양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성질이다. 전력은 전압과 전류를 곱한 값이므로, 전압이 떨어지면 오히려 전류를 더 끌어당겨 전력을 맞추려 한다. 

 

보통의 부하는 전압이 떨어지면 전류도 함께 줄어 흔들림을 눌러주는데 데이터센터는 거꾸로 움직여 흔들림을 키운다. 이를 음의 임피던스(negative impedance)라고 부른다. 전력망이 흔들릴 때 진정시키는 대신 부채질하는 성질을 타고났다는 뜻이다.


전력에 다시 접속하는 과정도 문제의 소지가 많다. 전력망이 아직 새 균형점을 찾느라 흔들리는 중에 떨어져 나갔던 데이터센터들이 성급히 재접속하면 반대 방향으로 사고가 난다. 

 

사라졌던 3기가와트가 한꺼번에 되돌아오면 전기가 갑자기 모자라져 주파수가 아래로 급락할 수밖에 없고 그 하락이 다시 UPS의 차단 기준을 건드리면 또 끊긴다. 끊겼다 붙었다를 반복하는 이 현상을 플래핑(flapping)이라 한다. 새가 날개를 퍼덕이듯 부하가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모습에서 나온 이름이다.


이번이 처음인가, 아니라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처음이 아니다. 2024년 7월에도 같은 PJM 전력망에서 유사한 사고가 있었다. 당시에는 230킬로볼트 송전선의 피뢰기, 즉 벼락으로부터 설비를 보호하는 장치 하나가 고장 나면서 시작됐다. 버지니아 데이터센터 약 60곳이 동시에 이탈해 1.5기가와트가 빠져나갔고 대규모 정전으로 번질 뻔했다.


이번 사고의 규모는 그때의 두 배다. 2년 만에 충격이 정확히 두 배로 커졌다. 데이터센터가 PJM 전력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무렵 약 6%였고, 2040년에는 24%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3%가 이탈해 이 정도 사고가 났는데 전체 비중이 지금의 네 배로 불어난 뒤에는 같은 규모의 고장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도 문제를 키운다. 미국 천연자원보호협의회(NRDC)에 따르면 PJM은 데이터센터 수요가 매년 5~7기가와트씩 늘어날 것으로 보는 반면, 새로 짓는 발전 설비는 매년 2~3기가와트에 그친다. 수요가 공급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늘어난다. 

 

2026년 여름부터 PJM은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최소한의 여유만 겨우 확보하게 되고 지금 흐름이 이어지면 2027년 6월에는 신뢰도 기준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 한파나 폭염이 닥칠 때 순환 정전 위험이 커진다는 의미다.


요금 부담도 함께 늘어난다. NRDC의 톰 루티글리아노는 데이터센터가 계속 공급을 앞지를 경우 PJM 지역 소비자들이 2033년까지 1,630억 달러를 추가로 부담하게 될 것으로 분석했다. 2028년이면 이 지역 평균 가정이 매달 70달러 안팎을 전기요금으로 더 내게 된다.


여유가 빠듯한 상태에서 대형 부하의 동시 이탈이 반복되면 사고의 파급력은 더 커진다. 전력망이 흔들림을 흡수할 완충 공간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기술적으로 어떤 대응 방법을 취하고 있나.


대응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끊기는 순서를 정하는 것, 다른 하나는 애초에 끊길 이유를 없애는 것이다.


첫 번째는 이탈과 재접속의 순서를 조율하는 방식이다. 사태를 키운 원인이 동시성이었으므로, 시간차를 두고 하나씩 끊기게 만들면 충격이 분산된다. 캐나다 온타리오 전력망 운영기관(IESO)의 시장모델 전문가 알리 자인 바나트왈라는 서로 인접한 부하들이 순차적으로 끊기고 순차적으로 다시 붙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하면 3.1기가와트가 30초 만에 통째로 사라지는 대신 500메가와트씩 나뉘어 차례로 빠져나간다. 각 단계 사이에 전력망의 자동 제어가 따라잡을 시간이 생긴다. 급격한 계단이 완만한 경사로 바뀌는 구조다. 재접속도 잘게 쪼개면 앞서 설명한 플래핑을 막을 수 있다.


문제는 조율 주체가 없다는 점이다. 현재는 각 데이터센터의 UPS가 자기 서버만 보고 독립적으로 판단한다. 순서를 정하려면 전력망 운영자가 어느 데이터센터가 얼마나 백업으로 넘어갔는지, 언제 다시 붙을 것인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사전에 절차를 짤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정보 공유와 협력 체계의 문제다. 민간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운영자를 잇는 이런 체계는 아직 갖춰져 있지 않다.


두 번째는 데이터센터가 흔들림을 흡수하도록 짓는 방식이다. 마이애미의 스타트업 온에너지(ON.Energy)가 개발한 'AI UPS'가 대표적이다.


기존 UPS는 수동적 보호 장치다. 평소에는 전력망 전기를 그대로 서버에 흘려보내다가 전압이 처지는 순간 서버를 떼어내고 배터리로 물러선다. 전력망과 소통하는 시점은 배터리를 충전할 때뿐이다.


온에너지 방식은 UPS를 능동적 완충 장치로 바꾼다. 배터리와 전력 변환 장비를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사이에 상시 끼워 넣는다. 서버뿐 아니라 냉각기 같은 부속 설비까지 단지 전체를 배터리 뱅크 뒤에 둔다. 그 결과 전력망이 보는 것은 들쭉날쭉한 설비들이 아니라 일정하고 안정된 부하 하나다.


완충은 양방향으로 작동한다. 먼저 데이터센터에서 전력망으로 가는 흔들림을 차단한다. AI 훈련 작업은 GPU들이 밀리초 단위로 소비 전력을 70% 넘게 급등락시킨다. 이 요동을 배터리가 흡수한다. 전력을 급하게 끌어당기면 배터리가 순간적으로 보태고, 소비가 줄면 남는 전기를 저장한다.


반대 방향이 이번 사고와 직결된다. 전력망이 흔들릴 때 기존 UPS라면 즉시 서버를 떼어냈을 상황에서 온에너지 시스템은 떼어내지 않는다. 

 

전기가 남으면 배터리를 충전하고 부족하면 배터리에서 서버로 보낸다. 서버는 배터리 뒤에서 안정된 전기를 계속 받으므로 끊을 이유가 없다. 전력망에서도 사라져야 할 부하가 그대로 남으니 수요 증발에서 전기 과잉으로 이어지는 연쇄가 시작되지 않는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이 장치는 전력망 상황을 밀리초 단위로 따라가며 전압이 처지면 무효전력을 순간적으로 주입한다. 무효전력은 실제로 일을 하는 전기는 아니지만 전압을 떠받치는 역할을 하는 성분이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이런 장치는 전압 강하를 감지한 뒤 2~5밀리초 안에 정격의 2~3배에 달하는 무효전류를 내보내 전압 회복을 돕는다. 흔들릴 때 사라지는 부하가 흔들림을 눌러주는 자산으로 성질이 뒤바뀌는 구조다. 앞서 설명한 음의 임피던스, 즉 흔들림을 부채질하는 특성을 정반대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온에너지는 이 시스템을 3.5메가와트 모듈로 만들어 쌓는다. 1.5기가와트급 데이터센터 한 곳에는 수백 개가 들어간다. 미국 로키산맥 국립연구소의 그리드 시뮬레이터 시험에서 이 시스템은 전압이 0까지 떨어지는 극단적 상황에서도 서버 전기를 안정적으로 유지했고 ±70%의 GPU 급변을 전력망에는 나타나지 않게 처리했다. 

 

이들은 현재 데이터센터 단지 네 곳에 총 3기가와트 규모를 설치·건설 중이다.


규제 당국이 이런 현상을 좌시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현 규제의 핵심 개념은 라이드스루(ride-through)다. 정상적으로 해소될 장애라면 끊지 말고 버티라는 요구다.


미국 전력 신뢰도를 감독하는 NERC(북미전력신뢰도공사)는 2026년 5월 4일 가장 높은 등급인 Level 3 경보를 발령했다. 이 등급은 즉시 조치를 요구하는 긴급 신호다. 

 

2022년 이후 동부와 텍사스에서 데이터센터가 갑자기 수요를 떨어뜨리거나 요동친 사고가 반복된 결과다. 경보는 전력망 운영자와 계획자들에게 반드시 이행해야 할 일곱 가지 조치를 담았고 대상 기관들의 응답 기한을 2026년 8월 3일로 정했다.


텍사스는 한발 앞서 나갔다. 텍사스 전력망 운영기관 ERCOT는 NOGRR282라는 규정으로 데이터센터 같은 대규모 전자 부하가 전력망 장애를 스스로 견디도록 의무화했다. 텍사스 공익사업위원회가 2026년 6월 이 규정을 승인했다.


규정에서 말하는 LCL(Large Computational Load)은 데이터센터나 암호화폐 채굴장처럼 연산에 쓰이는 대규모 전력 소비처를 뜻한다. 규정은 이들에게 전압과 주파수 라이드스루 성능을 요구한다. 전압이나 주파수에 장애가 생겨도 정해진 조건 안에서는 끊지 말고 버티라는 것이다. 

 

장애가 지나간 뒤 어떻게 정상 소비로 돌아와야 하는지도 정한다. 앞서 설명한 플래핑을 막기 위해 되돌아오는 방식까지 규제 대상에 넣었다. 장애 중이나 회복 중에 끌어당길 수 있는 전류의 상한도 정하고 전압이 기준보다 낮게 떨어졌을 때와 높게 치솟았을 때 각각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도 규정한다.


텍사스에서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면 이제 이 성능을 갖췄음을 증명해야 한다.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실제로 온에너지의 텍사스 고객사인 1기가와트급 단지는 지역 전력 당국으로부터 전압 라이드스루를 의무적으로 요구받고 있다. 규제가 기술 도입을 앞에서 끌어당기는 구조다.


지금까지 전력망은 발전소 하나가 갑자기 멈추는 상황에 대비해왔다. 대형 발전기가 탈락하면 그 손실을 흡수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번 사고가 드러낸 것은 그 반대 방향으로, 거대한 수요가 한꺼번에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고에는 대비가 돼 있지 않았다.


해결의 방향은 데이터센터를 전력망의 부담에서 자산으로 바꾸는 데 있다. 데이터센터의 구조상 약점을 역이용하여 흔들림을 견디고 나아가 눌러주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온에너지의 배터리 완충 기술, ERCOT와 NERC의 라이드스루 의무화가 모두 이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AI 데이터센터는 국내에서도 빠르게 늘고 있고 전력망의 물리 법칙은 어디서나 같다. 미국에서 현재진행형인 시행착오와 각종 대응은 우리나라가 곧 마주할 문제의 예고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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