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연방준비제도 의장 후보로 케빈 워시를 지명했다. 트럼프는 평소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를 꾸준히 주장해오며 연준에 상시 압박을 가하던 인물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트럼프가 지명한 새로운 연준 의장이 곧 금리 인하를 시행할 것이라는 기대가 앞섰다.
연준 의장이 바뀌면 대통령 뜻에 따라 통화정책이 느슨해질까? 이 기대는 주식과 채권 시장 전반에 반영되며 향후 금리 경로에 대한 전제처럼 소비되고 있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상상과 현실은 많이 다른 법이다.
이 글은 그 전제가 실제와 부합하는지 따져보는 데 목적이 있다. 연준 의장이 무엇을 결정할 수 있고 무엇을 결정할 수 없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모든 논의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케빈 워시는 우리 생각만큼 간단한 인물이 아니다.
그가 어떤 정책 판단을 보여 왔는지, 시장이 기대하는 변화와 실제로 경계해야 할 부분이 어디인지를 각각 분리해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 기사를 통해 차기 연준 의장, 케빈 워시 체제에서 미국의 통화 정책을 해석할 때 필요한 기준을 살펴보자.
대통령이 꽂은 연준 의장은 정말 대통령의 뜻대로 행동할까.
(사진 출처: Federalreservehistory.org)
당연히 그렇지 않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대통령이나 연준 의장이 단독으로 정하지 않는다. 기준금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라는 회의체에서 결정된다.
이 위원회는 연준 이사 7명과 지역 연방은행 총재 5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정기 회의에서 경제 지표를 검토하고 표결로 금리 수준을 결정한다. 표는 개인의 직위와 관계없이 단일 위원 자격으로 행사된다. 연준 의장은 이 회의를 주재하지만 표결에서는 다른 위원과 동일한 한 표를 가진다.
대통령의 역할은 연준 의장을 지명하는 데까지로 제한된다. 지명 이후에는 상원의 인준 절차가 필요하며 임기가 시작되면 대통령은 통화정책 결정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
연준 의장을 해임할 권한도 대통령에게 없다. 이 구조는 통화정책을 정치 일정과 분리하기 위해 법으로 정해져 있다. 연준은 행정부 산하 기관이 아니며 예산도 의회의 연례 예산 심사를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연준 의장이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 기준금리가 특정 방향으로 자동 조정되지는 않는다. 금리는 위원 다수의 판단 결과로만 변경된다. 대통령의 공개 발언이나 정책 선호는 법적 효력을 갖지 않는다.
연준 의장은 회의 진행과 의제 설정을 담당하지만 금리 인하나 인상을 직접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는 않다. 이 구조는 케빈 워시가 의장으로 지명된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케빈 워시가 마냥 친트럼프 인사는 아니라던데.
케빈 워시는 트럼프가 지명한 인사라는 이유로 친트럼프 성향으로 분류된다. 다만 워시의 경력과 정책 이력을 따라가면 특정 대통령의 의중에 맞춰 움직이는 인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워시는 학계나 관료 조직을 거쳐 단계적으로 올라온 인물이 아니다.
하버드 로스쿨 졸업 이후 금융권에서 자본시장과 기업 거래를 직접 다뤘고 이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에서 행정부의 경제 정책이 실제로 어떻게 조정되는지를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과 행정부의 역할이 어디에서 분리되는지도 실무적으로 체득했다.
연준 이사로 재직하던 시기 워시는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에 참여했다. 당시 연준은 기준금리를 빠르게 낮추고 국채와 주택저당증권을 대규모로 매입했다.
워시는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개입에는 동의했지만 중앙은행의 역할이 위기 대응에서 더 나아가 장기적 시장 관리로 확장되는 데에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통화정책이 단기 처방에서 상시적 수단으로 고착될 경우 정책 책임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인식이 이 시기에 형성됐다.
연준 퇴임 이후 워시는 금리 수준 자체보다 정책이 지속되는 시간에 주목해왔다. 낮은 금리가 장기간 유지될 경우 투자 판단과 자산 가격 형성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이 발언들은 경기 부양을 위해 통화정책을 적극 활용하려는 정치적 요구와는 별개의 맥락이다. 워시의 입장은 어떤 상황에서든 항상 정책의 부작용을 먼저 점검하고 경계하는 태도였다.
시장은 인물의 정치적 배경보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왔는지를 본다. 워시는 연준 내부에서 합의 구조에 따라 통화정책이 결정된다는 점을 직접 경험했다.
이력상 통화정책의 급격한 방향 전환을 유도한 사례는 없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워시를 친트럼프 인사로 바라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한 관점이다.
케빈 워시가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양적완화를 겪으며 가장 경계하게 된 것은?
케빈 워시가 금융위기 당시 연준에서 경험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책 이후의 처리에 대해서다. 위기 국면에서 연준은 금리를 내리고 자산을 매입함으로써 금융 시스템의 즉각적인 붕괴를 막았다.
이 조치는 단기적으로는 성공적인 안정 장치로 작동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정책의 종료 시점과 방법이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워시는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이 시작한 정책을 언제 어떻게 끝낼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직접 목격했다.
양적완화는 단순히 돈을 푸는 정책이 아니다. 연준이 국채와 주택저당증권을 대규모로 사들이면 연준의 자산 규모가 급격히 커진다. 이 자산은 언젠가 다시 줄여야 한다.
워시는 자산 매입보다 자산 축소가 훨씬 어렵다는 현실을 경험했다. 자산을 줄이려는 순간 시장은 긴축 신호로 받아들이고 금리와 자산 가격이 동시에 흔들린다.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은 정책을 유지할수록 부담이 커지고 정책을 되돌릴수록 충격이 커지는 구조에 놓이게 된다.
워시는 또 하나의 문제를 확인했다. 통화정책이 반복될수록 시장 참여자들의 행동이 바뀐다는 점이다. 위기 때마다 연준이 개입하면 시장은 손실을 스스로 관리하지 않게 된다.
위험이 발생하면 중앙은행이 나설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된다. 이 기대는 투자 판단의 기준을 바꾼다. 수익은 민간이 가져가고 손실은 정책으로 흡수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는다. 워시는 이를 정책이 만든 도덕적 해이로 인식했다.
중앙은행의 가장 큰 위험은 정책 의존이라는 것이다. 통화정책이 위기 상황에서 한시적인 안전망으로 작동하는 수준을 넘어 경제가 처음부터 해당 정책을 전제하고 움직이는 조건으로 굳어지는 순간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 기능은 점점 약해진다.
워시는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중앙은행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할수록 다음 위기의 크기가 커질 수 있다는 구조를 직접 관찰했다. 이 문제의식은 이후 워시가 통화정책을 평가할 때 가장 먼저 살펴보는 기준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보면 케빈 워시는 어떻게 행동할까?
케빈 워시가 연준 의장이 되면 시장이 가장 먼저 기대하는 변화는 기준금리 인하다. 이 기대는 연준 의장이 금리 방향을 주도한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그러나 워시의 정책 판단은 이 기대와 다른 출발점에서 형성돼 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그는 금융위기와 양적완화 과정을 거치며 통화정책이 언제 효과를 내고 언제 문제를 키우는지를 동시에 경험한 인물이다. 그는 통화정책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경제가 그 정책을 전제로 작동하는 상태를 문제로 인식해왔다.
금리가 낮아야만 투자가 이뤄지고 자산 가격이 유지되는 구조는 애초에 워시에게 정상적인 성장 구조가 아니다. 이런 인식에서는 금리 인하는 경기 부양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기존 정책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신호로만 해석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워시 체제에서 기준금리 인하는 시장을 안심시키기 위한 조치로 보기 어렵다. 워시에게 금리 인하는 경제가 견딜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했을 때 기계적으로 사용하는 대응 수단에 가깝다. 다시 말해 금리를 내렸다는 사실은 현재 상황에서 기존의 금리 수준이 미국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담는다.
워시는 통화정책을 통해 시장 심리를 관리하려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금리 인하를 통해 주가를 끌어올리거나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완화하는 역할을 연준의 임무로 보지 않고, 관심도 없다. 이런 태도에서는 금리 인하 이후 추가 완화를 암시하는 발언이 뒤따를 필요도 없다.
워시 체제 하에서의 정책은 한 번의 판단으로 끝나야 하며 기대를 쌓아가는 방식으로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워시의 기준금리 인하는 전통적인 호재 신호로 작동하기 어렵다.
금리가 내려갔다는 사실보다 왜 내려갔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인하의 이유가 경기 둔화나 금융 구조의 부담 때문이라면 시장은 이를 긍정적 변화로만 해석할 수 없다. 워시의 정책 프레임에서는 금리 인하가 경고의 성격을 가지는 경우가 더 많다.
워시는 정책의 속도를 관리하려는 인물이다. 빠른 인하와 잦은 개입은 다음 선택지를 좁힌다고 인식한다. 따라서 그는 한 번 결정을 내릴 때 가장 효과적인 결정을 내리고자 한다. 워시가 금리를 쉽게 내리지는 않겠지만 한 번이라도 내릴 경우 그 배경에는 반드시 지금 기준금리를 내려야만 한다는 분명한 판단이 깔려 있을 것이다.
이 판단은 지금까지 시행된 수많은 양적완화와 양적긴축이 반복되는 동안 수많은 고질적 약점과 부작용을 떠안게 된 미국의 경제 구조를 더 훼손하지 않기 위한 선택으로 보아야 한다. 이 점에서 워시 체제의 기준금리 인하는 우리의 기대와는 아예 다르게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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