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부터 지속된 이란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정점에 도달하고 있다.
사실 그리 예견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지난 1~2년 동안 이란은 국제 무대에서 거의 쉬지 않고 충돌의 중심에 서 있었다. 중동 정세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이란에 대한 공격이 개시되다” 혹은 “테헤란에서 폭발이 일어나다” 같은 뉴스는 한 번쯤 봤을 가능성이 높다.
이란은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로 이스라엘과 대립각을 세우다 군사적 타격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미국과도 정면으로 충돌했다. 문제는 이 상황이 이란 스스로 여러 차례 위험한 선택을 반복한 결과라는 점이다. 이란은 왜 굳이 미국과 이스라엘이라는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상대를 향해 계속 도발에 가까운 행동을 해왔을까.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란의 국가 정체성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란은 1979년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슬람 혁명 이후 ‘반미·반이스라엘’을 국가 이념의 핵심으로 삼아 왔다.
당시 이란 혁명은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던 왕정을 무너뜨린 사건이었고 이후 미국은 이란에게 체제의 적으로 규정됐다. 이스라엘 역시 중동에서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으로 여겨지며 자연스럽게 같은 선상에 놓였다. 이란 지도부에게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선다는 것은 체제를 지탱하는 서사의 일부에 가깝다.
(사진 출처: The Economist)
여기에 중동 내 영향력 경쟁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겹친다. 이란은 국력을 아끼기 위해 직접 전쟁을 벌이기보다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이라크와 시리아의 친이란 민병대 같은 세력을 지원해 왔다. 이들의 공통적인 적이 이스라엘이었다.
이 방식은 ‘대리전’으로 불리며 본국의 피해를 줄이면서도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균형이 흔들렸다. 이란에 비해 훨씬 압도적인 군사력과 장거리 타격력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은 이란의 이런 움직임을 더 이상 묵인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돌아섰고 미국 역시 이란의 군사·핵 관련 활동을 예의주시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시리아의 친이란 민병대는 공중분해되었다.
결국 이란은 체제 이념과 지역 패권 경쟁이라는 두 가지 이유로 긴장을 키웠지만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그 대가로 군사적 타격과 제재 압박을 동시에 떠안게 됐다.
문제는 이 외부 충돌의 비용이 고스란히 국내로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제재로 경제는 숨이 막히고 물가는 치솟았으며 일상은 점점 팍팍해졌다.
이란 반정부 시위가 심상치 않은 상태에 도달했다고 하는데.
지금 이란에서 시위가 터진 이유를 한 줄로 요약하면 “경제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지난 1~2년 동안 이란 경제는 눈에 띄게 후퇴했다.
(사진 출처: 구글 환율)
국제 제재는 풀릴 기미가 없고 군사 충돌과 외교 갈등이 이어지면서 외화가 들어올 통로는 거의 막혔다.
그 결과 이란 통화 가치가 급락했고 수입에 의존하는 식료품과 연료 가격이 빠르게 올랐다. 이란 리알과 미국 달러 사이의 공식 환율은 1달러에 42,000리알이지만 비공식 환율은 이미 2025년 기준으로 1달러에 1,400,000리알을 돌파한 상황이다.
빵, 쌀, 식용유 같은 기본 생필품 가격이 몇 달 새 몇 배씩 뛰는 상황이 반복되자 정치에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지점에 도달했다. 시위는 이 부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처음 불만이 터져 나온 곳은 대도시의 노동자와 상인들이었다. 임금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계속 오르니 장사를 해도 남는 것이 없고 월급을 받아도 한 달을 버티기 어려워졌다.
이 과정에서 실업 문제도 겹쳤다. 젊은 층은 일자리를 찾지 못했고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되지 않는 상황이 길어졌다. 이란 사회에서 교육은 계층 이동의 거의 유일한 통로인데 그 사다리가 끊겼다는 인식이 빠르게 퍼졌다. 경제 문제로 시작된 분노가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유다.
하지만 시위는 오래 지나지 않아 성격이 바뀌었다. 생활고를 호소하던 구호는 점점 정치 지도부를 직접 겨냥하는 내용으로 변했다. 물가 폭등의 책임이 외교와 군사 노선에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왜 우리 삶이 이렇게 됐느냐”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왜 미국과 이스라엘과 계속 충돌하느냐”는 문제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최고 지도부와 종교 권력에 대한 비판도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란에서 이런 구호가 공개적으로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체제에 상당한 압박이 되는 장면이다.
정부의 대응은 빠르게 강경해졌다. 시위가 번지자 경찰과 보안 병력이 투입됐고 주요 도시에서는 집회 해산 과정에서 충돌이 잇따랐다. 동시에 정부는 인터넷과 모바일 통신을 제한했다.
외부로 영상과 소식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란에서는 과거 대규모 시위 때마다 통신 차단이 반복돼 왔고 이번에도 같은 방식이 사용됐다. 통신이 끊기자 소문과 불안은 오히려 더 커졌고 지역 단위로 산발적인 시위가 이어졌다.
현재 이란 시위는 단기간에 끝날 분위기는 아니다. 정부는 강경 진압으로 질서를 회복하려 하고 있고 시위대는 생계가 걸린 문제라 쉽게 물러서지 못하는 상태다.
중요한 점은 이번 시위가 누적된 경제 붕괴, 외교 고립, 군사 충돌의 비용이 한꺼번에 국민 생활을 압박하며 폭발한 결과다. 지금 이란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은 더 이상 버틸 여지가 사라진 사회가 보내는 신호에 가깝다. 이 신호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이란의 내부 안정과 중동 정세 모두가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란 시위는 이란 대통령을 향한 것인가, 아니면 혁명수비대를 향한 것인가.
표면적으로는 대통령을 향해 있지만 실제로는 혁명수비대를 포함한 체제 핵심을 겨냥하고 있다고 보는 쪽이 훨씬 가깝다. 이란 정치 구조를 모르면 이 지점에서 오해가 생기기 쉽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이란 대통령은 우리가 익숙한 의미의 ‘국정 최고 책임자’와는 거리가 있다. 대통령은 경제 정책과 행정을 총괄하지만, 군사·안보·외교의 큰 방향은 대통령과 별개인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와 그 아래에 있는 혁명수비대가 쥐고 있다. 다시 말해 국민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결정 상당수가 대통령의 손을 벗어나 있는 것이다.
이번 시위의 출발점은 분명 경제다. 물가 폭등, 통화 가치 추락, 실업 문제 같은 생활 밀착형 불만이 처음 불씨였다. 이 단계에서는 자연스럽게 정부, 즉 대통령과 내각을 향한 비판이 먼저 나왔다.
물가와 경제에 대한 항의나 질문은 행정부를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위가 확산되면서 구호의 방향이 바뀌었다. 왜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좀 더 본질적인 영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 지점에서 혁명수비대가 전면에 등장한다. 혁명수비대는 군 조직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경제 집단이다.
또한 에너지, 건설, 물류, 통신 등 이란 핵심 산업 곳곳에 깊게 관여하고 있고 해외 무장 세력 지원과 군사 활동도 이 조직을 통해 이뤄진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외화가 부족해 허덕이는 상황에서도 막대한 자원이 군사 활동과 대외 충돌에 쓰인다는 인식이 쌓여 왔다.
시위대가 “우리 삶보다 왜 전쟁과 대외 충돌이 우선이냐”고 묻기 시작한 순간 분노의 화살은 자연스럽게 혁명수비대로 향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시위 구호를 보면 대통령 개인을 겨냥한 표현보다 군과 권력 핵심을 싸잡아 비판하는 내용이 늘었다. 이는 대통령 교체나 정책 수정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졌다는 의미다.
대통령은 바뀔 수 있지만 혁명수비대와 최고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권력 구조는 그대로라는 점을 많은 이란 국민들이 체감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시위는 이란이 어떤 방향으로 국가 자원을 쓰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란인들이 추억하는 시절,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 왕조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질문은 다시 팔레비 왕조로 돌아간다. 여기서 잠깐, 왕조와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1979년, 혁명수비대의 손에 무너진 팔레비 왕조는 제도만 놓고 보면 일부나마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나라였다. 그 시절 이란에는 의회가 있었고, 선거도 있었고, 정당이라는 형식도 존재했다.
그래서 일단 긍정적인 면만 보면 지금의 종교 체제보다 훨씬 현대적인 국가처럼 보이기도 했다. 특히 마지막 국왕이었던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시기에는 서구식 헌법과 입법 구조가 유지됐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나 교육 확대 같은 변화도 분명히 있었다.
혁명수비대가 이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것은 사실이며 거리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공통된 정서는 혁명수비대 중심의 현재 권력 구조에 대한 거부감이다. 이란 국민 다수에게 혁명수비대는 군사와 경제를 동시에 장악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권력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란인들은 팔레비 왕조 시절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알까.
엄밀히 말하면 왕정 복고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당시에는 통화 가치가 급격히 무너지는 일이 드물었고 해외와의 교류가 가능했으며, 경제 활동의 예측 가능성이 지금보다 높았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오늘의 극심한 제재 환경과 생계 불안을 겪는 상황에서 과거에 대한 평가는 자연스럽게 대비 효과를 가지게 된다.
중요한 점은 현재 시위가 왕정 복고를 구체적인 정치 목표로 삼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이는 혁명수비대 체제를 부정하기 위한 기준점으로만 과거가 다시 끌려나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혁명수비대 중심 체제에 대한 거부가 분명해진 상황에서도 이란 사회는 아직 명확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지금 거리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중동 민주화 시위에는 아랍의 봄이라는 전례가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아랍의 봄은 2010년 말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중동과 북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시작은 튀니지였다. 청년 노점상이 생계 압박과 공권력의 횡포에 항의하며 분신한 사건이 도화선이 됐고 이는 높은 실업률과 물가 상승, 부패한 권력 구조에 대한 분노와 맞물려 전국적인 시위로 번졌다. 이 불길은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등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공통된 배경은 독재 체제 아래에서 장기간 누적된 경제적 불만과 정치적 억압이었다. 일부 국가는 정권 교체로 이어졌지만 다른 나라들은 내전이나 장기 불안으로 빠져들었다.
아랍의 봄이라는 전례를 놓고 보면 이란 혁명수비대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는 질문은 결국 “군이 언제까지 체제의 비용을 대신 떠안을 의지가 있느냐”로 수렴된다.
아랍의 봄 당시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체제가 무너진 결정적 계기는 군과 치안 조직이 끝까지 발포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정권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더 이상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지 않겠다고 판단하는 순간 체제는 생각보다 빠르게 무너졌다.
이 경험은 중동 권위주의 체제 모두에게 공포로 남아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 점에서 아랍의 봄 당시 군대와 성격이 다르다. 혁명수비대는 이란 혁명 이후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 정당성 자체가 현 체제 유지에 있다.
또한 에너지, 건설, 금융, 물류까지 깊숙이 관여한 거대한 이해관계 집단이기도 하다. 체제가 흔들리면 정치적 영향력뿐 아니라 경제적 기반도 함께 흔들린다. 이 때문에 혁명수비대는 지금까지 시위 진압에 훨씬 더 단단하게 결속되어 왔다.
다만 아랍의 봄이 남긴 또 하나의 교훈이 있다. 군이 강하다고 해서 영원히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시위가 장기화되면 비용이 쌓인다. 제재로 이미 압박받는 재정 상황에서 치안 유지와 내부 통제에 더 많은 자원을 써야 하고 내부 피로도도 누적된다.
특히 젊은 병력과 하급 간부들 사이에서 “왜 우리가 이 모든 부담을 떠안아야 하느냐”는 질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균열은 생각보다 빠르게 번질 수 있다. 아랍의 봄에서도 이 단계가 결정적이었다.
현재 이란 상황을 보면 혁명수비대가 당장 붕괴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조직 결속력, 경제적 이해관계, 이념적 정당성이 아직은 강한 진압력이라는 결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버틸 수 있느냐의 문제는 시간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시위가 단기간에 잦아들지 않고 반복되면서 체제를 유지하는 비용이 계속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점은 이번 시위가 생활 자체가 무너진 데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이는 협상이나 일시적 양보로 진정시키기 어렵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아랍의 봄 당시 정권보다 훨씬 단단한 구조를 갖고 있고 단기간에 무너질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아랍의 봄이 보여준 전례는 하나다. 군이 체제를 지키는 것이 더 이상 이득이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 아무리 강한 권력도 빠르게 흔들릴 수 있다.
지금 이란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그 순간이 아직 오지 않았음을 보여주면서도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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