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최근 동부 해안에서 추진 중이던 해상풍력 프로젝트 여러 건을 한꺼번에 멈춰세웠다.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이던 사업까지 중단됐다는 점에서 시장 반응이 컸다.
2025년 12월 22일 미국 내무부(DOI)가 동부 해안에서 공사 중이던 대형 해상풍력 5개 사업의 연방 해역 임대권(lease)을 즉시 ‘일시 정지’시키고 관련 활동을 중단하라고 통보한 것이다.
미국 정부가 내세운 이유는 국가안보였다. 풍력 발전기 자체가 군사 레이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인데, 이 결정 이후 풍력과 재생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크게 흔들렸고 미국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둘러싼 의문도 다시 커졌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같은 재생에너지인 태양광은 트럼프의 은근한 무시(?) 속에서 계속 확대되는 반면 해상풍력만 급격히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친환경 에너지를 포기하는 것일까, 아니면 재생에너지 안에서도 우선순위를 재편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에너지 선택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이 흐름을 이해하려면 미국에서 해상풍력이라는 발전 방식이 왜 등장했는지부터 시작하여 왜 문제에 부딪혔는지부터 차례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해상풍력이라는 재생에너지는 어떻게 등장했나.
미국이 해상풍력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출발점은 환경 보호 같은 고상한 이유와는 별 상관이 없다. 재생에너지를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할 때는 항상 전기 부족이 문제다.
미국은 근래 들어 전기를 쓰는 속도가 너무 빨라져 전기를 만드는 속도가 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에 들어섰다. 데이터센터, AI 서버, 전기차, 리쇼어링에 따른 공장 전기화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전력 수요가 급증했고 기존 발전소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워졌다.
문제는 땅 위에서 새로운 발전소를 짓는 게 생각보다 훨씬 느리다는 점이다. 발전소를 짓겠다고 하면 주민 반대가 바로 나오고 송전선 하나를 설치하고자 해도 소송이 걸린다.
원전은 더 느리고 가스 발전은 탄소 문제와 규제 부담이 크다. 이 상황에서 미국이 눈을 돌린 곳이 바다였다. 해상풍력은 육지보다 바람이 세고 비교적 일정해 한 번 깔면 대규모 전기를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대도시들은 대부분 해안가 근처에 몰려 있다. 뉴욕, 보스턴, 워싱턴 같은 대도시 바로 앞바다에 설치하면 전기를 멀리서 끌어올 필요도 없다. 송전선 갈등을 줄이면서 대도시 전력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카드로 보였다.
여기에 정치적인 계산도 있었다. 해상풍력은 친환경이라는 명분이 분명해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동시에 밀어붙이기 좋았고, 정치적 반대도 드물었다. 항만, 선박, 구조물 제작 같은 일자리도 미국 안에서 함께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강조됐다.
철강과 조선업종, 그리고 전력과 송배전 유틸리티 업종까지 모든 업종을 아우르며 미국 내 제조업의 전반적인 부흥을 일으키기 위해 해상풍력보다 더 좋은 아이템은 없었던 셈이다.
이번에 중단된 다섯 개 구역은 각각 어디에 위치해 있나.
첫째는 매사추세츠주 마사스빈야드 인근 해역이다. 보스턴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야 하는 바다인데 이미 터빈 설치까지 진행되던 곳이다. 뉴잉글랜드 전력망에 바로 들어오는 대표적인 해상풍력 사업지로, 상징성이 컸다.
둘째는 로드아일랜드와 코네티컷 사이 해역이다. 보스턴과 뉴욕의 중간쯤 되는 위치로 뉴잉글랜드 전력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설계된 구간이다.
셋째는 뉴욕 롱아일랜드 앞바다이다. 뉴욕시 전력 수요를 직접 떠받치겠다는 목적의 프로젝트였고, 뉴욕주가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해상풍력 구역 중 하나로 간주된다.
넷째는 뉴욕과 뉴저지 사이의 ‘뉴욕 바이트(New York Bight)’ 해역이다. 미국 해상풍력의 핵심 요충지로 불리던 곳이며 뉴욕과 뉴저지 대도시권을 동시에 커버할 수 있어서 가장 전략적인 위치로 평가받던 구간이다.
다섯째는 버지니아비치 앞바다이다. 워싱턴 D.C. 인근 대서양 연안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사업지인데, 이 지역은 특히 군사 시설과 해군 기지가 밀집해 있어 안보 관점에서는 민감한 위치이기도 했다.
해상풍력이 전면 좌초된 다섯 개 구역은 전부 대도시 전력 수요 한가운데를 겨냥한 핵심 해상풍력 거점이었고 이미 돈과 시간이 상당히 들어간 상태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이번 조치가 미국 해상풍력의 심장을 멈춘 결정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해상풍력을 강제로 멈추기 위한 명분, ‘국가안보’
미국 정부가 해상풍력에 제동을 건 직접적인 명분은 국가안보였다. 특히 미국 국방부는 대형 해상풍력 터빈이 군사 레이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풍력 발전기는 수백 미터 높이의 구조물이며 그 위에서는 거대한 날개가 계속 회전한다.
미국 동부 해안에 배치된 레이더는 물체의 반사 신호를 잡아 움직임을 추적하는 장비인데, 이 회전하는 날개가 레이더 화면에 잡음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실제 비행기나 미사일 같은 표적이 풍력 터빈 신호에 가려질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 문제는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과거에도 군사 기지 인근 육상풍력에서 비슷한 논란이 있었지만 그때는 위치 조정이나 기술 보완으로 넘어갔다.
이번 사안이 달랐던 이유는 해상풍력 단지 규모가 훨씬 커졌고 위치가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버지니아비치 인근은 미 해군 기지와 훈련 구역이 밀집한 곳이다. 동부 해안은 대서양 방어선의 핵심 축이기도 하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전력 정책보다 군사 감시 능력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없었다.
하지만 미국의 모든 산업계가 전력을 1와트라도 더 달라고 아우성치는 마당에 대규모 해상풍력 프로젝트 다섯 개를 동시에 멈췄다는 것은 얼핏 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무언가 숨겨진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사실은 재생에너지를 싫어하는 트럼프가 손대기에는 해상풍력이 상대적으로 훨씬 쉬웠을 뿐이다.
트럼프가 풍력만 공격하는 이유, 더 쉽기 때문
풍력에 비하면 태양광은 트럼프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해상풍력이 태양광보다 먼저 찍힌 이유는 시스템의 성격 차이에 있다. 풍력은 중앙집중형 인프라이고 태양광은 분산형 인프라다.
해상풍력은 한 단지에 수십 기의 대형 터빈을 몰아서 설치하고 해저 케이블 하나로 대도시 전력망에 직결된다. 전력 공급 방식으로 보면 사실상 하나의 거대한 발전소다. 이 구조에서는 어느 한 지점에서 문제가 생기면 단지 전체가 멈춘다. 해저 케이블, 상륙 지점, 변전소 중 하나만 막혀도 전력 공급이 끊긴다.
반면 태양광은 흩어져 있다. 위 사진과 같은 대단위 태양광 발전소는 미국 내에서도 흔하지 않고, 대부분은 공장 지붕, 물류창고, 사막, 주차장 위에 쪼개서 깔린다. 한 곳이 멈춰도 전체 시스템에는 큰 영향이 없다. 국가 입장에서 보면 리스크가 분산된 전원이 훨씬 관리하기 쉽다.
트럼프식 사고방식에서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한 번에 크게 멈출 수 있는 시스템은 곧 정치적 리스크가 된다. 해상풍력은 그 조건을 정확히 충족한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난 대규모 정전 사태도 이 리스크와 무관하지 않다.
권한 구조도 다르다. 해상풍력은 연방 해역을 쓴다. 연방정부 소유 바다에 임대권을 받아야 하고 승인 주체도 연방기관이다. 대통령과 내무부가 버튼을 쥐고 있다. 실제로 이번에 그랬던 것처럼 임대권을 일시 정지시키는 것만으로 공사를 아주 간단히 멈출 수 있다.
반면 태양광은 대부분 주 정부 관할 땅에서 진행된다. 연방이 직접 개입하면 주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거냐는 논쟁이 따라붙어 정치적 비용이 커진다. 트럼프는 싸움이 되는 영역과 되는 상대만 친다.
해상풍력은 연방 권한 안에 있고 태양광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풍력은 치기 쉬운 타깃이 되고 태양광은 못 본 척 넘어가기 좋은 타깃이 된다.
여기에 시간 문제가 더해진다. 해상풍력은 대체로 태양광보다 훨씬 오래 걸리는데, 그 이유는 공정과 절차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태양광은 땅만 확보되면 사실상 조립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닥을 탄탄히 다지고, 패널과 구조물을 설치하고 인버터를 연결하면 끝이다.
허가부터 전력망 연결까지 빠르면 1~2년이면 가능하다. 반면 해상풍력은 연방 임대권 확보부터 시작해 해저 지질 조사, 환경 영향 평가, 어업과 항로 협의, 군사 시설 검토, 건설 계획 승인까지 수년이 걸린다.
그 다음에야 공사가 시작된다. 공사 자체도 바다 위에서 진행된다. 파도와 바람이 강하면 작업이 중단되고 일정은 계속 밀린다. 특수 설치선과 대형 크레인을 써야 하는데 이런 장비는 공급도 제한적이다. 한 번 지연이 생기면 금융 비용이 급격히 불어날 수밖에 없다.
전력망 연결도 풍력 쪽이 훨씬 까다롭다. 해상풍력은 해저 케이블을 특정 상륙 지점으로 끌고 와야 하고 그 지점에서 육상 변전소와 송전망 증설이 필요하다. 이 중 하나라도 막히면 전체 프로젝트가 대기 상태로 들어간다.
태양광은 규모를 쪼개거나 배터리와 묶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지만 해상풍력은 여러 개의 터빈에서 한 번에 들어오는 대형 전원을 모아 육지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조정 여지가 거의 없다.
결국 트럼프에게 풍력은 느리고, 크고, 중앙집중적이며 연방 권한 안에 있는 시스템이다. 태양광은 빠르고, 작고, 분산되어 있으며 주 권한에 더 가까운 시스템이다.
조금 더 치졸한 이유, 지지 기반과 돈의 흐름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소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지지 기반 문제다. 태양광은 캘리포니아식 진보 상징처럼 보이지만 실제 설치 지역을 뜯어보면 텍사스, 플로리다, 애리조나, 네바다 같은 공화당 강세 주가 핵심이다.
특히 텍사스는 미국 태양광 신규 설치량 상위권 단골이고 농지, 공장 지붕, 물류센터 위에 깔린 태양광은 지역 일자리와 직결되어 있다. 이 부분을 세게 공격하는 순간 도널드 트럼프 입장에선 자기 지지층 주머니를 자기가 찢는 꼴이 된다.
게다가 태양광 산업은 이미 공화당 후원 네트워크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EPC 업체, 모듈 유통, 전기 시공, 지역 개발업자까지 전부 중소 사업자 중심이고 이들은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어 정치적으로, 본보기로 공격할 대상이 마땅히 존재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텍사스에 살고 공화당을 지지하며 태양광 부품 수리점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을 못살게 굴어서 대체 무엇이 남는다는 말인가? 이러한 계산이 이미 다 서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반면 해상풍력은 해안 대도시 중심이고 민주당 주 색채가 강하다. 어차피 무얼 해도 민주당 텃밭인 곳에서는 굳이 공격을 삼갈 이유가 없다.
이 차이 때문에 트럼프는 재생에너지를 싫어하면서도 태양광은 건드리지 못하고 풍력은 마음껏 손댈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어떤 재생에너지가 지금의 권력 구조와 리스크 계산에 맞지 않는지를 적나라하게 가려내는 과정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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