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차에 접어들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갈등이 겨우 봉합된 지금, 엉뚱한 곳에서 새로운 전쟁이 터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향해 군사적 압박을 급속하게 높이면서 침공설까지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9월부터 미군이 카리브해에서 베네수엘라 선박을 연달아 격침시키며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국제사회는 “저강도 무력 충돌을 넘어선 국면”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여기에 11월 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상공과 주변 공역을 전면 폐쇄해야 한다”고 공개 발언하면서 긴장 수위는 정점을 향해 치솟았다. 핵심은 미국이 마두로 정권을 “마약 조직과 결탁한 불법 정권”으로 규정하고 그 명분 아래 군사 작전의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이 마두로 정권 핵심 인물들을 ‘카르텔 데 로스 솔레스’라는 이름의 마약·무기 조직으로 지정해 테러 단체로 간주한 것은 앞으로 공습이나 지상 작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국제사회는 유엔 인권기구를 중심으로 미국의 선박 폭격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남미 국가들 사이에서도 미국의 개입을 둘러싼 의견 차가 커지고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근본적인 갈등 원인부터 시작해 상황의 전개와 앞으로의 전망까지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본다.
미국과 베네수엘라, 왜 오랜 기간 갈등해 왔나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건 1999년 우고 차베스가 집권하면서다. 차베스는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강하게 비판하며 친미 정책을 전면 거부했다. 그는 국영 석유회사 PDVSA의 통제권을 강화하고 에너지 산업을 ‘국가의 자주권 상징’으로 내세웠다.
미국 입장에서는 베네수엘라가 갖고 있던 방대한 석유 매장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워지는 순간이었다.
차베스는 쿠바와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를 넓히며 “반미 블록”을 공개적으로 구축했다. 미국은 이 과정을 ‘권위주의 확산’으로 규정하고 강한 제재로 대응했다.
2013년 차베스 사후 마두로가 권력을 승계한 뒤에는 선거 조작 논란, 시위 진압, 인권 문제 등이 겹치면서 관계가 더 악화됐다.
미국은 2019년 야권 지도자 후안 과이도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며 사실상 정권 교체를 밀었고 마두로를 고립시키기 위해 금융 제재, 원유 수출 제재를 총동원했다. 이때부터 미국과 베네수엘라는 사실상 단절된 상태로 들어갔고 이후의 외교 행보는 제재 강화와 맞대응이 반복되는 흐름이 됐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원유 보유국이라던데.
베네수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보다도 많은 약 3천억 배럴 이상의 매장량을 확보한 것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추정한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오리노코 벨트’라 불리는 초중질유인데 일반 원유보다 가공이 까다롭고 생산 단가도 높다.
미국 기업과의 연결도 오래됐다. 본래 PDVSA의 미국 자회사인 시트고(Citgo) 는 미국 내 정유·유통망을 갖춘 대형 에너지 기업이다. 이 덕분에 베네수엘라산 원유는 미국 걸프만 정유시설과 구조적으로 맞닿아 있으며 한때는 미국이 베네수엘라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두로 정부가 들어선 뒤 미국의 제재가 강화되면서 이 연결망은 차례로 끊어졌다. 시트고는 미국 법원의 보호 아래 사실상 베네수엘라 정부에서 분리됐고 PDVSA는 미국 금융시장 접근이 막혀 사실상 국제 거래가 어렵게 됐다.
미국 기업 입장에서 베네수엘라는 여전히 매력적인 에너지 자원국이지만 정권의 불안정, 국유화 정책, 제재 리스크 때문에 본격적 투자는 멈춘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최근 다시 강경 기조로 돌아가고 군사적 압박을 높이는 흐름은 “마두로 이후의 에너지 시장 재편까지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마두로 정권은 어떤 태도를 유지해 왔나.
니콜라스 마두로는 차베스의 후계자로 집권한 이후 일관되게 두 가지 노선을 유지해 왔다. 하나는 미국의 제재와 압박을 외세의 ‘침략’으로 규정하며 강경 대치하는 반미 노선이다. 다른 하나는 국내 정치적으로는 군부 결속과 민병대 동원을 통해 체제를 방어하는 방식이다.
마두로는 집권 이후 경제 위기, 하이퍼인플레이션, 대규모 이민 탈출로 국가가 붕괴 직전까지 간 상황에서도 “미국의 경제 전쟁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는 서사를 반복해 왔다. 군부와 정보기관을 통해 주요 도시와 국영기업을 통제했고 쿠바의 정보·보안 전문가들을 받아들여 체제 안전망을 강화했다.
특히 미국이 자신을 겨냥해 5천만 달러의 현상금까지 걸고 마약·테러 조직과 결탁했다고 규정하자 그는 이를 “정권 전복 위한 거짓 프레임”이라고 반박하며 오히려 반미 결집을 강화하는 데 활용했다.
최근 미군의 해상 타격으로 사망자가 늘어나자 정부는 해안 방어 훈련, 민병대 동원 행사, 대규모 반미 집회 등 ‘전쟁 대비’에 가까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영공을 폐쇄하라고 요구한 이유

11월 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이 운영하는 트루스소셜에 “베네수엘라 상공과 주변 공역은 전면적으로 폐쇄됐다고 간주해야 한다”는 글을 남기면서 큰 이슈가 되었다.
문제는 미국 대통령이 당연하게도 법적으로 타국 영공을 닫을 권한이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런 문장을 공개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정치적 신호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
미군이 이미 카리브해 일대에서 대규모 작전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발언은 사실상 “우리가 원하는 경우 베네수엘라 상공까지 군사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선언에 가깝다.

베네수엘라 주변에서 GPS 교란과 군사 활동이 잦아지자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민간 항공사에 경보를 낸 직후 나온 발언이라는 점도 의미가 크다. FAA 경보에 따라 여섯 개 국제 항공사가 베네수엘라 노선을 중단했고 이에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 항공사들의 운항 허가를 박탈했다. 사실상 ‘공역 충돌’이 이미 시작된 셈이다.
다만 실시간 글로벌 항공기 운행 현황을 나타내는 Flightradar24에서는 아직 베네수엘라 상공을 비행하고 있는 민간 항공기가 관측되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는 같은 게시물에서 지상 작전 가능성까지 시사하는 문구를 함께 남겼다. “지상의 위험한 마약 조직과 인신매매망을 제거하는 조치가 다가오고 있다”고 언급하며 특정 지역에 대한 정밀 타격, 혹은 제한적 지상 투입 가능성을 우회적으로 흘린 것이다.
미군의 배치 규모는 어디까지 왔나.
9월 이후 카리브해에는 미군 전력이 빠르게 늘어났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항공모함 전단 투입이다. 미국은 최신 항모인 제럴드 R. 포드호를 파견해 전투기 편대와 해상작전 능력을 베네수엘라 인근까지 끌어올렸다. 이 항모 전단만 해도 수천 명의 인원이 움직이며 주변 해역을 감시하고 공중 타격 능력을 제공한다.
여기에 이오지마 상륙함 전단(ARG) 이 추가로 배치됐다. 상륙강습함과 상륙수송함이 포함된 이 전력은 본래 해병대가 상륙 작전을 전개할 때 쓰는 전형적인 ‘해안 돌파 세트’로 알려져 있다. 해병대 병력, 헬기, 상륙정까지 묶여 있는 형태여서 베네수엘라의 해안 도시나 특정 거점을 단기간 장악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갖춘 편이다.
또 푸에르토리코와 카리브해 주변 공군기지에는 F-35 스텔스 전투기 10대가 전개됐고 미 남부사령부는 마약 조직 감시를 이유로 ISR(정보·감시·정찰) 자산도 확대했다. 이 모든 전력을 합치면 일대 미군 병력은 약 1만 2천~1만 5천 명 규모로 추정된다. 파나마 침공 이후 가장 큰 집결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이 병력 규모만으로 베네수엘라 전역을 점령하는 ‘전면 침공’을 수행하기는 어렵다. 군사 전문가들은 지금 배치된 전력이 항만·군 기지·마약 생산 시설 등 특정 지점을 정밀하게 타격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고 본다. 즉 대규모 지상전을 벌이기보다는 공습과 특수부대 중심의 제한적 작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의미다.
향후 전개될 유력한 시나리오는?
미국이 실제로 어느 지점까지 밀어붙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로이터·타임·워싱턴포스트 등을 통해 흘러나오는 익명 브리핑을 종합하면 몇 가지 시나리오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첫째는 지금처럼 ‘마약 운반선 타격’을 계속하면서 작전 빈도와 강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이 경우 베네수엘라 정부는 반미 여론 결집에 나설 것이고 국제사회에서는 인권·국제법 논란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둘째는 베네수엘라 영토 내 특정 목표물에 대한 정밀 공습이다. 이는 마두로 정권이 장악한 군 기지, 정보기관 시설, 마약 조직 관련 시설 등이 명령 타깃이 될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정치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으면서도 ‘정권 압박’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옵션이다.
셋째는 가장 위험한 단계인 제한적 지상 작전이다. 상륙준비단이 배치된 점을 고려하면 특정 해안도시나 마약 생산 거점만 빠르게 점령하는 단기 작전이 설계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다만 이 시나리오는 베네수엘라 군부의 반발, 중남미 국가들의 집단 반대, 유엔의 제동 등 국제적 비용이 커 트럼프 행정부가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남미 국가들의 입장도 전개 전망을 크게 좌우한다. 브라질, 멕시코, 콜롬비아는 미국의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을 준비 중이고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에콰도르는 미국의 압박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남미가 둘로 갈라진 상황에서 미국이 단독 행동을 선택할 경우 외교적 후폭풍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향후 전개는 세 가지 변수에 의해 결정될 전망이다. 미국이 추가로 병력을 증원하느냐,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명분을 얼마나 강하게 밀어붙이느냐, 그리고 마두로 정권이 내부 균열을 보이느냐다.
국제사회는 지금 상황을 “전면 침공 직전 단계까지 열려 있는 위험한 국면”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향후 1~2주 미군의 행보가 매우 중요해 보인다. 일반적으로 군사 준비 태세가 3주를 넘어가는 경우 효과가 크게 약화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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