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비디아를 둘러싼 회계 논란이 11월 말 실적 발표 이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기록적인 매출과 이익을 내놓았음에도 주가는 흔들렸고 일부 투자자들이 외상 매출 회수 기간과 재고 증가를 문제 삼으면서 의구심이 커졌다. 논란의 핵심은 두 가지다.
DSO(매출채권 회수 기간), 그리고 재고 증가율이다. 이 숫자들을 두고 “뭔가 숨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확산된 배경을 차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적은 역대급, 그러나 주가는 흔들리면 공격을 받는다
엔비디아는 원래 게임 그래픽 카드 회사였지만 지금은 AI 시대의 핵심 부품인 데이터센터용 GPU를 만드는 회사로 변모했다. 챗GPT 같은 대규모 AI 모델을 학습하고 실행하는 데 사실상 표준처럼 쓰이는 칩이 엔비디아 제품이다.
전 세계 빅테크와 AI 기업들이 너나없이 엔비디아 GPU를 확보하려고 경쟁하면서 회사 매출은 몇 년 동안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시가총액이 5조 달러를 넘는 시점도 있었다.
하지만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시장 불안이 생기면 “숫자에 뭔가 있는 것 아니냐”는 공격이 붙기 쉽다. 이번에도 그 패턴이 반복됐다. 증시가 예민해진 타이밍에 DSO 증가와 재고 확대라는 두 숫자가 주목을 받았다. 오늘은 엔비디아의 실적에 대한 의구심을 파헤치고 진실(일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외상으로 팔고 돈 받기까지 걸리는 기간, DSO
먼저 논란의 한 축인 DSO부터 보자. DSO는 Days Sales Outstanding의 약자로, 기업이 외상으로 제품을 팔고 실제로 돈을 받기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을 뜻한다. 예를 들어 서버 한 대를 팔고 “두 달 뒤 결제를 하겠다”라고 계약하면 이 거래의 회수 기간은 약 60일이다. 여러 건을 평균 내면 회사의 DSO가 된다.
이 수치가 갑자기 늘어나면 투자자들은 보통 두 가지를 의심한다. 제품이 잘 안 팔린다는 신호일 수 있고 고객이 일부러 결제를 늦추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는 장부에는 매출이 잡혔지만 실제 현금은 아직 들어오지 않는, 회계 왜곡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따라붙는다.
엔비디아의 경우 최근 몇 년 평균 DSO는 약 46일이었지만 문제가 된 분기에는 53일로 늘었다. 숫자만 보면 불안해 보인다.

DSO는 고객 구성 변화의 결과다?
TF인터내셔널증권의 애널리스트 밍치궈는 이 숫자만 보고 문제라고 판단하는 것은 오해라고 했다. 그는 “엔비디아 고객 구성이 크게 바뀌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엔비디아의 최대 고객은 이제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같은 초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이다. 이들을 흔히 CSP(Cloud Service Provider)라고 한다. GPU를 한 번에 수만 개씩 계약하는 ‘초대형 손님’이기 때문에 결제 조건에서도 매우 강한 위치를 가진다. 공급사 입장에서는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
밍치궈는 자료에서 “과거 엔비디아 매출채권 중 CSP 비중은 20%대였지만 최근에는 65%까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즉, 결제를 천천히 하는 대형 고객의 비중이 크게 늘면서 평균 회수 기간이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이다.
비교 대상이 잘못되었다는 지적
밍치궈는 또 다른 오류도 지적했다. DSO가 이상한지 판단하려면 어떤 기업과 비교하느냐가 중요하다. 일부 비관론자들은 엔비디아를 소비자 상대 기업이나 일반 제조업과 비교했지만 이는 적절하지 않은 기준이다.
엔비디아처럼 CSP를 주 고객으로 두는 업체, 예를 들어 아리스타(데이터센터 네트워크 장비), 셀레스티카(전자제품 위탁생산), 버티브(전력·냉각 장비) 같은 기업들의 DSO는 통상 60~70일 수준이다. 같은 손님을 상대하는 업계 평균이 이 정도라면 엔비디아의 53일은 오히려 짧은 값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CSP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는 DSO가 높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객 특성 때문에 생기는 숫자 변화이다 보니, 이를 회계 문제로 해석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 논란, 재고 32% 증가
두 번째 논란은 재고 증가다. 엔비디아는 최근 분기 재고가 직전 분기 대비 32% 증가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GPU가 매진이라고 말해놓고 재고가 늘어나는 건 모순 아니냐”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여기서 핵심은 재고의 구성이다. 재고에는 완제품뿐 아니라 생산 라인에 올라간 미완성 칩도 포함된다. 이걸 ‘공정 중 재고(Work-in-Process, WIP)’라고 한다.
밍치궈 분석에 따르면 엔비디아 재고 중 가장 크게 늘어난 항목이 바로 이 공정 중 재고였다. 전체 재고의 44.2%를 차지했고, 금액은 전 분기 대비 98% 증가했다. 즉, 창고에 팔리지 않은 GPU가 쌓인 게 아니라, TSMC 생산 라인에서 조립 중인 칩이 크게 늘었다는 뜻이다.
이유는 블랙웰(B300) 양산 시작 때문?
이 현상은 엔비디아가 2025년부터 차세대 GPU 블랙웰(Blackwell)의 양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점과 정확히 겹친다. 공정 복잡해지고 체류 시간이 길어지는 과정에서 자연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블랙웰 칩은 기존 H100·H200보다 크고 복잡하며 고대역폭 메모리(HBM)도 더 많이 들어간다. 웨이퍼를 찍고 여러 층으로 칩을 쌓아 올리는 고급 패키징(CoWoS) 공정까지 포함하면 라인에서 보내는 시간 자체가 길어진다. 그 결과 공정 중 재고가 늘어난다.
생산을 담당하는 TSMC도 같은 분기에 CoWoS 생산능력을 25~30% 확대했다. 생산라인이 늘어나면 그만큼 가공 중인 칩 물량도 커지는 구조다. 결국 이번 재고 증가의 핵심은 팔리지 않아서 쌓인 완제품이 아니라 생산 과정에 있는 미완성 칩 증가인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비슷한 패턴이 존재했나.
일각에서는 “H100이 잘 팔리던 초기에 재고가 줄었는데 이번에는 왜 반대냐”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FY23 2분기 재고를 보면 실제로는 전 분기 대비 23% 증가했었다. 당시에도 세대 전환기에 신제품 생산을 위해 공정 중 재고가 늘어난 패턴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왜 이번엔 논란이 크게 번졌나.
DSO와 재고 논란이 이번에 유독 크게 커진 데에는 시장 분위기가 작용했다. 메타가 구글의 AI 전용 칩 TPU 도입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엔비디아 의존도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져 있었다. 여기에 메모리·패키징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엔비디아의 성장 속도가 주춤할 수 있다”는 걱정도 겹쳤다.
이런 상황에서 평소라면 크게 주목받지 않을 숫자들도 확대 해석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 DSO 증가는 결제 기간이 긴 초대형 클라우드 고객(CSP) 비중이 늘어난 데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
○ 53일 DSO는 CSP 상대 공급사 기준에서 보면 오히려 짧은 편
○ 재고 증가는 완제품이 쌓인 것이 아니라 블랙웰 양산을 위한 공정 중 재고 증가
○ 과거 세대 전환기와 동일한 패턴이 이미 존재
이렇게 정리하면 엔비디아의 성장 둔화를 단정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최근 분기 데이터센터 매출은 다시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블랙웰 출시 전에 이미 수요가 포화된 상태다. 이번 회계 논란은 지엽적인 숫자만을 떼어놓고 해석하면 흔히 생길 수 있는 오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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