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자기 회사 주식(자사주)을 어떻게 써먹을지를 두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국회에서 ‘자사주를 반드시 없애야 한다’는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커지고 금융감독원이 자사주를 담보로 한 채권 발행에 제동을 걸면서다.
이번에 문제가 된 건 ‘교환사채(EB·Exchangeable Bond)’라는 금융상품이다. 이는 회사가 돈을 빌리면서 ‘나중에 현금 대신 자사주로 갚을 수도 있다’는 조건을 붙이는 채권이다. 명목상으로는 채권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사주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
이 때문에 금감원이 칼을 들이댔다. 지난달 20일 금감원은 EB 발행 때 반드시 발행 목적, 시점의 타당성, 주주에게 미칠 영향, 재매각 계획, 주선기관 등 세세한 내용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했다. 이제는 이런 내용을 제대로 안 밝히면 정정명령이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기업마다 반응이 엇갈린다. 반도체 검사장비업체 테크윙은 법 개정 전에 서둘러 EB를 발행했다. 돈은 신제품 개발과 공장 라인 증설에 쓰겠다고 밝혔다.
반면 광동제약은 비슷한 방식으로 EB를 내려고 했다가 금감원이 공시가 불완전하다고 판단하자 계획을 철회했다. 금감원은 “자사주를 팔아치우는 편법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긴장감의 배경엔 곧 통과될 가능성이 큰 ‘3차 상법 개정안’이 있다. 이 법안은 기업이 자사주를 사면 일정 기간 안에 반드시 소각, 즉 없애버리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는 자사주를 사놓고 언제든 재판매하거나 경영권 방어용으로 묵혀두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법이 바뀌면 이런 편법이 불가능해진다. 어떤 안은 자사주를 산 뒤 1년 안에 무조건 소각하라고 하고, 예외적으로 보유할 때는 주주총회 승인을 받도록 한다.
이 때 대주주는 의결권을 3%로 제한해 영향력을 줄이게 된다. 기업 입장에선 자사주를 마음대로 못 쓰게 되는 셈이다.
자사주는 회사가 시장에서 자기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말한다. 원래 목적은 주가를 안정시키거나 남는 돈으로 주주에게 보답하는 식의 주주환원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자사주가 종종 ‘경영권 방패막이’로도 쓰였다.
기업이 자사주를 보유하는 이유 중 하나는 외부 세력의 경영권 위협을 막기 위해서다. 외부 투자자나 경쟁 세력이 주식을 대량 매입하면 경영에 간섭하거나 경영권을 노릴 가능성이 생긴다.
그러나 회사가 미리 자기 자금을 사용해 자사주를 사두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 외부 세력이 지분을 일정 비율 이상 확보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즉 자사주가 많을수록 외부의 적대적 인수 시도가 사실상 차단되는 셈이다.
일부 기업은 이런 자사주를 나중에 오너 일가나 계열사 등 우호 세력에게 넘겨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방식으로도 활용해왔다. 이 때문에 자사주가 경영권 방패로 불려온 것이다. 그런데 법이 바뀌면 이렇게 활용할 수 있는 무기가 사라진다.
기업들로서는 “주가 안정도 어렵고 방어도 힘들어진다”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업들은 지금 각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일부는 자사주를 미리 소각해 버리며 ‘규제 리스크’를 없애고 일부는 제3자에게 넘기거나 임직원 보상용으로 돌리고 있다.
또 다른 기업들은 테크윙처럼 EB 같은 형태로 자금 조달에 활용한다. 결국 자사주를 돈처럼 쓰던 시대가 끝나고 이제는 정부가 그 흐름을 투명하게 관리하려는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시장의 흐름도 달라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자사주 매입을 위한 신탁계약을 새로 체결하는 기업 수가 꾸준히 줄고 있다. 7월에는 17곳이었는데 10월엔 8곳으로 떨어졌다. 어떤 기업은 이미 체결한 계약을 조기 종료하고 현금을 회수하고 있다.
이는 법안이 통과되면 자사주가 현금처럼 쓰기 어려워질 거란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법이 기업들의 재무 전략을 통째로 바꿀 거라는 관측이 많다. 법이 바뀌면 기업이 마음대로 자사주를 보유하거나 되팔 수 없게 되고 자사주는 경영권 보호나 자금조달 수단으로서의 활용보다는 주주환원 중심의 활용을 사실상 강제당하게 된다. 시장은 그 전환점을 앞두고 숨을 고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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