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첨단 반도체의 대중(對中) 수출을 틀어막은 지 4년째다. 그사이 중국은 AI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더 비싸고 더 비효율적인 길로 돌아가면서도, 자체 칩과 우회 경로를 동원해 격차를 좁혀왔다.
중국 AI 자립의 핵심은 화웨이가 만든 AI 전용 반도체 '어센드(Ascend) 910C'다. AI 모델을 훈련하고 구동하려면 그래픽처리장치(GPU)라 불리는 고성능 칩이 대량으로 필요한데, 미국은 엔비디아의 최고급 칩을 중국에 팔지 못하게 막았다.
어센드 910C는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중국산 대안이다. 다만 성능은 아직 뒤진다. 칩 하나가 처리하는 연산량은 엔비디아 최신 칩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중국은 이를 '물량'으로 메운다. 칩 한 개의 성능이 떨어지면 여러 개를 묶어 한꺼번에 돌리는 방식이다.
대표적 사례가 화웨이의 'CloudMatrix 384' 시스템이다. 어센드 910C 384개를 그물처럼 촘촘히 연결한 이 장비는 엔비디아의 최상위 서버 제품보다 약 두 배 높은 연산 성능을 낸다.
대가는 전력이다. 같은 작업을 하는 데 전기를 네 배 넘게 먹는다. 그러나 중국은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 규제가 느슨하고 전기요금도 싸 이 비효율을 감당할 수 있다. 화웨이는 올해 910C를 약 60만 개 생산할 계획으로, 지난해의 거의 두 배다.
'중국산 칩'이라는 말은 사실 절반만 맞다. 어센드 910C는 설계만 중국에서 했을 뿐, 핵심 부품은 외국산에 크게 의존한다. 칩에 들어가는 고성능 메모리는 삼성, 칩을 찍어내는 웨이퍼는 대만 TSMC, 생산 장비는 미국·네덜란드·일본 제품이다.
미국 정부가 입수해 분석한 화웨이 칩에서는 전부 TSMC가 만든 부품이 나왔다. 화웨이는 다른 회사를 앞세워 5억 달러어치의 웨이퍼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제재를 빠져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자체 칩의 또 다른 약점은 훈련 단계의 불안정성이다. AI 개발은 크게 모델을 학습시키는 '훈련'과 완성된 모델을 실제로 굴리는 '추론'으로 나뉜다.
어센드 칩은 추론에는 쓸 만하지만 가장 무거운 작업인 대형 모델 훈련에서는 아직 한계가 있다. 하드웨어 효율로 명성을 쌓은 딥시크조차 어센드 칩으로 모델을 훈련하다 대규모에서 문제를 겪고 엔비디아 칩으로 되돌아갔다.
막힌 장비를 우회하는 기술도 발달했다. 최첨단 칩을 만들려면 'EUV'라 불리는 극자외선 노광장비가 필요한데 이 장비의 중국 수출은 막혀 있다.
중국은 규제 대상이 아닌 한 세대 전 장비에 '여러 번 겹쳐 새기는' 공정을 적용해 첨단에 가까운 칩을 만들어낸다. 수율이 떨어지고 비용도 많이 들지만 대규모로 돌리면 AI에 쓸 칩을 충분히 찍어낼 수 있다.
가장 노골적인 방법은 밀수다. 올해 3월 미국에서 적발된 밀수 사건들은 2022년부터 시행된 수출 통제가 사실상 뚫려 있었음을 보여준다. 가장 큰 사건에서는 엔비디아 칩이 든 25억 달러어치 AI 서버가 중국으로 빼돌려졌다.
일당은 동남아 회사로 주문을 넣고 서류를 위조했으며 감사를 피하려 가짜 서버까지 동원했다. 한 사람은 헤어드라이어로 상자의 라벨과 일련번호를 바꿔치기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중국행 물량을 감추는 환적 거점으로 자주 쓰였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규제는 중국의 자립을 앞당겼다. 규제가 중국의 반도체 진전을 늦추기는커녕 국산화 드라이브에 불을 붙였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중국 AI 칩 시장에서 자국산 비중이 50%까지 오를 것으로 본다.
중국 정부는 엔비디아 칩 수입이 일부 허용됐는데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미국산 보이콧을 권하고 첨단 칩 수입 총량에 상한을 두는 규칙까지 준비 중이다. 알리바바는 자체 AI 칩을 10만 개 넘게 내놨고, 화웨이·바이두 등 9개 이상 기업이 1만 개 이상 출하·주문을 넘겼다.
이렇게 쌓아 올린 결과는 모델 성능으로 드러난다. 지난 5월에는 단 12일 사이 중국 AI 기업 네 곳이 누구나 내려받아 쓸 수 있는 '오픈웨이트' 모델을 잇따라 내놨다.
모두 서구 최상위 모델과 견줄 성능을 내면서 가격은 3분의 1 미만이다. 지푸AI의 'GLM-5.1'은 엔비디아 칩을 전혀 쓰지 않고 화웨이 어센드 칩 10만 개만으로 훈련을 마쳤다. 중국이 엔비디아 없이도 최상급 AI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다만 전체 그림에서 중국은 여전히 뒤처져 있다. 엔비디아 칩 수출이 완전히 허용되는 상황을 가정해도 올해 미국이 확보할 AI 연산 능력은 중국의 21배에서 49배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격차를 좁히는 것보다는 훨씬 높은 비용과 낮은 효율을 감수하며 쓸 만한 AI를 만들어낼 능력을 유지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가장 큰 모델의 훈련과 최첨단 장비에서는 아직 미국과 동맹국 생태계에 기대고 있다.
(썸네일 사진 출처: 36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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