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9일 미국 AI 기업 앤트로픽이 자사 최상위 모델 클로드 페이블5(Fable 5)와 미토스5(Mythos 5)를 공개했다. 페이블5는 일반 사용자도 쓸 수 있는 공개판이었고 미토스5는 심사를 거친 일부 기업에만 제공되는 고성능판이었다.
그런데 출시 사흘 만인 6월 12일 두 모델은 전 세계 모든 사용자 앞에서 사라졌다. 앤트로픽 스스로 서비스를 멈춘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의 명령에 따른 조치였다.
앤트로픽에 따르면 미 동부시간 12일 오후 5시 21분, 상무부의 하워드 러트닉 장관 명의로 한 통의 서한이 도착했다. 두 모델에 대한 접근을 모든 외국 국적자에게 차단하라는 내용이었다. 미국 밖에 있는 사람은 물론, 미국 안에 있는 외국 국적자, 심지어 앤트로픽에서 일하는 외국 국적 직원까지 대상에 포함됐다.
사용자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실시간으로 가려내 차단할 방법이 없었던 앤트로픽은 결국 두 모델을 전 세계 모두에게 꺼버리는 방식을 택했다. 다만 클로드 오푸스 4.8 등 나머지 모델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 사태의 핵심은 미국 정부가 꺼내 든 도구가 '수출통제(export control)'였다는 데 있다. 수출통제는 본래 반도체나 군사기술처럼 적성국에 넘어가면 안 되는 물자가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막는 제도다. 이번에 적용된 법적 근거는 2018년 제정된 수출통제개혁법(ECRA)으로 추정된다.
미국 상무부가 이 법에 따라 쓰는 방식 중 하나가 이른바 '통보 서한(is-informed letter)'이다. 특정 기업에게 "당신의 이 활동은 수출 허가가 필요하다"고 비공개로 알리는 편지다. 상무부는 그동안 중국으로 향하는 반도체 장비 등을 막을 때 이 서한을 종종 활용해 왔다. 서한은 공개되지 않으며 더 광범위한 공개 제재의 전조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수출통제 제도에서 '수출'의 정의다. 통제 대상 기술을 외국 국적자에게 보여주거나 쓰게 하는 행위는, 그 사람이 미국 안에 있더라도 사실상 해외로 기술을 내보낸 것으로 간주된다. 차단 명령이 미국 내 직원에게까지 미치고 앤트로픽이 전면 중단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칩을 다루던 제도가 언어모델에 처음으로, 그것도 전 세계 외국인 전원 차단이라는 전례 없는 범위로 적용된 사례다. 이미 수억 명에게 상업적으로 풀린 AI 모델에 이런 도구가 쓰인 것은 처음이다.
미국 정부가 명령을 내린 직접적 계기는 '제일브레이크(jailbreak)'였다. 제일브레이크란 AI에 걸린 안전장치를 우회해 원래는 답하지 않도록 막아둔 정보를 끌어내는 기법을 말한다.
앤트로픽의 설명을 종합하면 정부는 페이블5의 안전장치를 뚫는 방법이 발견됐다고 판단했다. 페이블5와 미토스5는 같은 기반 구조를 쓰되 페이블5에는 사이버보안처럼 위험한 영역의 답변을 걸러내는 '분류기'가 들어 있다. 이 분류기를 뚫으면 그 아래 깔린 미토스의 강력한 사이버보안 능력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우려였다.
앤트로픽은 명령에는 따르되 그 판단에는 반박했다. 회사는 정부가 제시한 증거가 구두 설명뿐이었고, 문제의 기법도 모든 안전장치를 무력화하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 코드를 읽고 결함을 고치게 하는 좁은 범위의 우회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같은 기법은 오픈AI의 GPT-5.5 등 다른 공개 모델에서도 통하는데 그 모델들은 비슷한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정부가 위험한 서비스를 막을 권한 자체는 인정하지만 그것은 투명하고 공정하며 기술적 사실에 근거한 절차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왜 다른 미국 AI 기업이 아니라 앤트로픽만 표적이 됐는지를 두고는 의문이 남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AI 수출규제를 완화하는 기조를 보여왔기에 이번 조치는 결이 다르다.
2026년 2월 국방부가 앤트로픽을 통상 외국 적성국에 쓰던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했고 이 지정에 맞선 앤트로픽의 소송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번 차단이 그 갈등의 연장선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복귀 시점은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다. 백악관 과학기술자문위 공동의장 데이비드 색스는 14일, 앤트로픽이 취약점만 고치면 페이블5가 일반 공개로 돌아올 것이며 행정부도 가능한 한 빨리 규제를 풀고 싶다고 밝혔다. 다만 이것이 수출통제 명령인 만큼 해제하려면 회사의 결정이 아니라 정부의 공식 조치가 필요하다.
BEST 뉴스
-
[환경]아마존 데이터센터, 미국 최대 '탄소 배출 공장'으로 둔갑하다
아마존이 텍사스주에 짓는 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대형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발전소가 완공되면 미국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내뿜는 단일 시설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에너지 시장분석 업체 클린뷰(Cleanview)는 위성 사진과 텍사스주 인허가 서류를 대조해 아마존이... -
"소 잡는 칼로 닭 잡지 마라"…초고가 AI, 언제 써야 본전 뽑나
기술 경쟁력의 지표가 되는 AI 최상위 모델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다만 우리 같은 일반 사용자들의 입장에서 "성능이 좋다"는 말과 "값을 한다"는 말은 다르다. 2026년 8월 현재 시장에 나온 가장 비싼 AI 모델들은 대부분의 일상적인 작업에서 한 단계 아래 모델과 결과물 차이가 거의 없으면서... -
빛으로 잇는 칩…AI 데이터센터 '연결 병목' 뚫는 CPO 상용화 시작
AI 반도체 경쟁의 초점이 연산에서 연결로 옮겨가고 있다. 그동안은 얼마나 빠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보하느냐가 관건이었지만 데이터센터가 커지면서 수천에서 수만 개에 이르는 GPU를 얼마나 빠르고 적은 전력으로 이어 붙이느냐가 새로운 걸림돌로 떠올랐다. 해법으로 주목받는 기술이 코패키지... -
출력의 한계를 극복하다...노이즈에서 시작해 문장을 '한 번에' 빚는 확산 AI
챗GPT나 클로드 같은 대부분의 AI 언어 모델은 글자를 하나씩 순서대로 써 내려간다. 앞에 나온 단어들을 보고 그 다음에 올 단어 하나를 예측하고, 다시 그 결과를 보고 또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식이다. 문장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어 붙이는 이 방식은 2019년 GPT-2 이후 사실상 모든 언어 모델의 ...
전체댓글 0
NEWS TOP 5
실시간뉴스
-
출력의 한계를 극복하다...노이즈에서 시작해 문장을 '한 번에' 빚는 확산 AI
-
빛으로 잇는 칩…AI 데이터센터 '연결 병목' 뚫는 CPO 상용화 시작
-
낸드를 쌓아 HBM 옆에 붙이다…‘HBF’ 파일럿 라인 연내 가동
-
막힌 길과 우회로, 중국은 수출규제 속 자체 AI를 어떻게 키우나
-
칩도 통제하고 AI 모델도 통제하고…클로드 사태가 보여준 'AI 수출통제'
-
AI가 쓰는 '연료'를 사고판다…'AI 토큰 선물'이라는 새 시장
-
그래픽카드 다 놔두고 왜 '맥미니'일까…로컬 AI 의외의 표준
-
"비영리인데 기업, 오픈소스인데 돈 받는다?" 자주 헷갈리는 AI 분류 용어들
-
AI가 만든 콘텐츠를 AI가 잡아내는 창과 방패의 싸움
-
내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AI, 클라우드 없이 얼마나 쓸 만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