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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타 2주치밖에 없다…中 불황 속 중동발 공급 충격까지 겹친 석화업계

  • 고건 기자
  • 입력 2026.03.26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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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서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원료 고갈 위기에 몰렸다. 여수 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공장 가동 중단이 현실화하는 가운데 정부는 나프타 수출 제한 조치를 이번 주 안에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사인 여천NCC는 나프타 수급 차질을 이유로 고객사에 제품 공급 불가를 통보했다. 에틸렌은 플라스틱·합성수지·합성섬유 등을 만드는 기초 원료로, 여천NCC는 연간 228만5000톤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여천NCC는 이미 구조조정 차원에서 3공장(연 47만톤) 가동을 중단한 상태에서 남은 1·2공장마저 가동률을 최소 수준으로 낮추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설비가 완전히 식어 재가동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을 막는 수준으로만 공장을 돌리고 있다고 했다. 

 

LG화학도 23일 여수 NCC 2공장 가동 중단을 공시했다. 나프타 공급이 원활해질 때까지 1공장만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롯데케미칼도 일부 품목의 공급 불가 가능성을 고객사에 사전 통보했다.

 

국내 석화 기업이 보유한 나프타 재고는 약 2주 분량에 불과하다. 나프타는 석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중간 물질로, 이를 고온에서 분해해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 화학 원료를 만든다. 재고가 동나면 플라스틱·비닐·고무 제품 생산 라인이 연쇄적으로 멈출 수 있다. 

 

동북아시아 국제 나프타 가격은 3월 들어 톤당 918달러로 전달(611달러) 대비 50% 가까이 급등했다. 주요 공급사의 불가항력 선언과 해상운임 폭등이 겹치면서 플라스틱 원료인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가격은 1주일 새 17.9%, 타이어 원료인 스티렌부타디엔고무(SBR)도 11.9% 뛰었다. 

 

업계에서는 지금 재고 수준으로는 앞으로 2주가 버틸 수 있는 데드라인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부는 23~24일 산업통상자원부 브리핑을 통해 긴급 대응 방안을 잇달아 내놨다. 양기욱 산업자원안보실장은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나프타의 생산·도입 물량을 정부에 의무 보고하고 매점매석을 금지하며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이번 주 중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나프타 수요의 약 55%는 정유사 생산분으로 충당하는데 정유사들이 이 물량 일부를 해외에 팔고 있다. 정부는 이 수출분을 국내 석화업체에 우선 공급하도록 강제하겠다는 계획이다. 상황이 더 악화할 경우 긴급 수급 조정 명령도 발동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정유사 수출 물량을 내수로 돌리고 긴급 수급 조정 명령까지 발동하면 가동 중단 위기 시점을 4월 말이나 5월까지 늦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23일부터 서울청사에 '공급망지원센터'를 설치하고 12명의 전담 인력이 30~40개 핵심 품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도록 했다.

 

원유 수급에 대해서도 정부는 4월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UAE에서 도입하기로 한 2400만 배럴 중 400만 배럴이 3월 말과 4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입항하고, 나머지 1800만 배럴도 4월 초중순부터 순차 입항한다. 민간 재고가 소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4월 중순에 맞춰 비축유 방출도 준비 중이다. 

 

러시아산 원유·나프타 도입에 대해서는 미국의 한시적 제재 완화로 공해상 물량 거래 가능성이 열렸지만, 국내 정유사들은 금융 결제 리스크와 제3자 제재 우려 등을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결제 문제가 해소되더라도 선박 확보, 해상보험, 금융 전 과정에서 제약이 크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러시아는 2021년 기준 한국의 최대 나프타 공급국(수입 비중 22.8%)이었지만 2022년 7월 대러 제재 이후 수입이 사실상 끊긴 상태다. 이 같은 외부 충격은 이미 수년간의 업황 부진으로 체력이 소진된 업계에 엎친 데 덮친 충격이다. 국내 석화업계는 2020년대 초부터 중국의 대규모 설비 증설로 공급 과잉이 심화하며 수조 원대 적자를 누적해왔다. 

 

여천NCC의 경우 3년 누적 적자가 8200억 원에 달해 부도 위기까지 갔다가 한화·DL그룹이 3000억 원을 긴급 지원하면서 간신히 버텨온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도 속도를 내고 있다. 20일 여천NCC·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DL케미칼 4개사는 산업통상자원부에 '여수 1호 프로젝트' 사업재편 계획서 최종안을 제출했다. 핵심은 여천NCC 2·3공장을 폐쇄하고, 남은 1공장을 롯데케미칼 여수 공장과 통합해 신설 법인을 세우는 방안이다. 

 

여천NCC의 연간 에틸렌 생산량은 현재 228만 톤에서 90만 톤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게 된다. 이전에 이미 완료된 충남 대산 산단의 '1호 프로젝트'(롯데케미칼 110만 톤 설비 중단, HD현대케미칼과 합작 법인 설립)와 합산하면 국내 에틸렌 설비 감축량은 250만 톤에 달한다. 

 

정부가 목표로 제시한 감축 규모(270만~370만 톤)의 절반 이상을 채우는 수치다. 통합 법인은 기존 범용 제품 대신 의료용 LDPE(저밀도 폴리에틸렌), 자동차·전선용 기능성 POE(폴리올레핀엘라스토머) 등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전환할 방침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같은 날 롯데케미칼과 여천NCC 간 기업결합 사전심사 신청서를 접수하고 심사에 착수했다.

 

재편안 제출 이후 금융 지원 논의도 이어졌다. 산업은행은 25일 4개사의 채권단을 소집해 설명회를 열고 1조5000억 원 규모의 금융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기존 채무 상환 유예와 신규 자금 수혈을 병행하는 방식이다. 

 

다만 호르무즈 봉쇄 사태가 변수로 지목됐다. 원유에서 추출하는 나프타를 주원료로 사용하는 NCC 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급증할 경우 통합 법인의 수익성 전망이 불확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가들은 구조조정 명분이 외부 충격으로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지금 이란 전쟁 같은 외부 충격이 오히려 국내 석화 기반 설비가 왜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며 당장 싸다는 이유로 기초 설비를 버리는 것은 요소 산업을 포기했다가 공급 위기를 겪은 것과 같은 실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3대 석화 산단 가운데 여수와 대산이 재편안을 제출하면서 울산 산단만 남겨두게 됐다. 정부는 울산까지 포함한 전면적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산업 경쟁력 회복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사진 출처: Beston Group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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