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국내 증시가 역대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 코스피는 이날 장 마감 기준 452.22포인트(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지수 산출 이후 단 하루 동안 빠진 포인트로는 사상 최대다. 코스피가 종가 기준 처음으로 6,000포인트를 넘어선 것이 불과 3거래일 전인 지난달 25일이었다. '육천피'는 채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배경은 중동이다.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합동 공습해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등 지도부를 제거하자, 이란은 즉각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통과 선박에 대한 공격을 선언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쿠웨이트 등 주요 산유국의 원유가 빠져나가는 길목으로 전 세계 원유 수출량의 약 2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한국은 전체 원유 도입량의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그 95% 이상이 이 해협을 지난다. 이란이 해협을 틀어막겠다고 선언하자 유가 급등과 공급망 붕괴 우려가 동시에 터져나왔고, 그 충격이 3일 개장과 함께 국내 증시를 강타했다.
이날 외국인 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5조 2,963억원을 순매도했다. 한국 증시 역대 두 번째 규모의 외국인 이탈이다. 기관도 6,151억원을 팔아치웠다. 개인 투자자들이 5조 6,829억원을 사들이며 버텼지만 쏟아지는 외국인 매도 물량을 받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공포 지수라 불리는 VKOSPI(코스피200 변동성 지수)는 이날 16.37% 급등해 62.98을 기록했다.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최고치다.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은 방산주 한 곳을 제외하고 전멸했다. 삼성전자는 9.88% 내려 '20만 전자'가 깨졌고, SK하이닉스는 11.50% 폭락해 주가 100만원 선이 무너졌다.
현대차(-11.72%), 기아(-11.29%), 삼성전자 우선주(-10.15%), LG에너지솔루션(-7.96%), SK스퀘어(-9.92%), 두산에너빌리티(-8.84%),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두 자릿수 하락이 속출했다. 업종별로는 자동차가 15.71% 급락해 가장 큰 타격을 받았고 IT(-13.56%), 증권(-13.55%), 건설(-12.72%), 반도체(-10.93%)가 뒤를 이었다.
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9.83% 급등했고, 한화시스템은 29.14% 폭등했다. 전쟁 발발로 방위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한꺼번에 몰리며 방산 관련 종목만 나홀로 폭등세를 탔다.
같은 날 글로벌 증시와 비교하면 한국의 낙폭은 압도적이었다. 그리스(-5.75%), 스페인(-4.58%)이 뒤를 이었고, 아시아권에서는 중국 선전(-3.24%), 일본(-3.06%)에 그쳤다.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도 4.58% 하락했지만, 한국의 7.24%에는 미치지 못했다.
올해 들어 코스피가 다른 나라 증시를 압도하는 상승세를 보였던 것이 오히려 더 큰 충격으로 돌아왔다. 연초부터 2월 말까지 코스피 상승률은 48.17%로 세계 1위였다. 그 48%를 쌓는 데 두 달이 걸렸지만 하루 만에 7%가 증발했다.
장 마감 이후에도 충격은 이어졌다. 시간외 거래에서 대형주의 추가 매도가 쏟아졌다. 삼성전자는 정규장 종가 19만 5,100원에서 18만 6,000원대까지 더 밀렸고, SK하이닉스는 93만 9,000원에서 89만 7,000원 안팎으로 추가 하락했다. 현대차는 59만 5,000원에서 55만 4,000원대까지 내려갔다.
국내 정규장이 문을 닫은 뒤에도 미국 주요 주가지수 선물이 약세를 이어가면서 시간외 매도로 연결됐다. 유동성이 정규장보다 얇은 시간외 거래 특성상 매도 물량이 집중되면 가격 낙폭이 더 크게 벌어진다.
장중에는 거래를 일시적으로 멈추는 조치도 발동됐다. 코스피200 선물 지수가 전 거래일 대비 5%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 이상 지속되자 오후 12시 5분에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사이드카는 선물 가격의 급변이 현물 주식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프로그램 매도 호가의 효력을 5분간 정지시키는 제도다.
증권가에서는 원유 의존 구조가 이번 충격의 핵심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대신증권은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돌파했고 이란과의 전면전 우려와 유가 폭등이 겹치면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대내외 불안이 동시에 확대되는 국면에 들어섰다고 봤다.
키움증권은 주가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하는 구간에 일시적으로 진입한 것이라며 기술적 조정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코스닥도 이날 55.08포인트(4.62%) 하락한 1,137.70에 마감했다. 시가총액은 4거래일 만에 5,000조원 아래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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