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금산분리 다시 수면 위로…왜 지금 한국 증시의 화두가 됐나

  • 신상호 기자
  • 입력 2025.12.14 17:42
  • 댓글 0
  • 글자크기설정

2025년 12월 중순, 한국 증시에서 갑자기 ‘금산분리’라는 오래된 단어가 다시 등장했다. 금산분리는 말 그대로 금융과 산업을 분리하자는 제도다. 쉽게 말해 은행 같은 금융회사를 일반 기업이 마음대로 지배하지 못하게 하고, 반대로 은행도 일반 기업을 마음대로 지배하지 못하게 막아 둔 장치다. 


이 제도는 “기업이 은행을 자기 돈주머니처럼 쓰는 상황”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고 한국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비교적 강하게 유지돼 왔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산업자본, 즉 제조업이나 유통업 같은 비금융 기업이 은행 주식을 4% 이상 의결권 있게 보유하지 못했고 의결권을 포기해도 10% 정도가 상한선이었다. 

 

은행 역시 일반 기업 지분을 과도하게 보유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받아왔다.


그런데 2025년 들어 이 금산분리가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섰다. 한국 경제의 주력 산업이 ‘조 단위 투자’를 요구하는 AI와 반도체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수십조 원이 들고, AI 데이터센터 역시 전력·토지·장비까지 한꺼번에 투자가 이뤄진다. 

 

문제는 이 돈을 조달하는 과정이 너무 느리다는 점이다. 한국 대기업들은 대부분 지주회사 체제를 쓰고 있는데, 지주회사 규제와 금산분리 규제가 겹치면서 투자 구조를 설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불만이 계속 나왔다. 

 

해외 경쟁국들은 정부 보조금, 프로젝트 금융, 합작 투자 등을 빠르게 엮어 공장을 올리는데 한국은 제도 때문에 발이 묶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정부와 정치권이 말하는 ‘금산분리 완화’가 예전처럼 은행 지분 규제를 통째로 푸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데 있다. 현재 논의의 중심은 “원칙은 유지하되, 첨단 전략 산업에 한해 병목을 풀자”는 쪽이다. 

 

다시 말해 “재벌이 은행을 지배하게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반도체나 AI 같은 분야에서 투자를 빠르게 집행할 수 있도록 제도 일부를 손보자”는 접근이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최근 증시에서 왜 지주사 주가가 움직이고, 왜 반도체 설비·전력 관련 종목이 함께 엮이는지 맥락을 놓치게 된다.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방법은 세 가지 정도다. 

 

첫째는 지주회사 단계 규제 완화다. 현재 일반 지주회사는 자회사, 손자회사, 증손회사로 단계가 내려갈수록 지분을 거의 100% 가까이 보유해야 한다. 이 때문에 대규모 합작이나 외부 자본 유치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반도체나 AI 같은 전략 산업에 한해서는 이 지분 요건을 낮추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둘째는 투자 수단을 늘리는 방식이다. 기업형 벤처캐피털, 즉 대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투자회사나 리스 회사를 활용해 장비와 설비를 조달하는 구조를 더 유연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리스는 쉽게 말해 장비를 한 번에 사지 않고 빌려 쓰는 방식인데, 이걸 활용하면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셋째는 아예 특별법을 만드는 방식이다. 공정거래법이나 금산분리 원칙은 그대로 두되, 반도체특별법처럼 특정 산업에 한해 한시적으로 예외를 허용하는 시나리오다.


이 논의가 증시에서 주목받은 결정적 계기는 12월 들어 정부 고위 인사들이 “관련 대책이 상당 부분 준비됐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으면서다. 

 

확정된 법안이나 시행령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방향성이 공개되자 시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지주회사 할인 해소 기대가 붙었고, 대규모 설비 투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에 반도체 장비, 전력 인프라, 데이터센터 관련 종목이 함께 거론됐다. 금융주 가운데서는 은행보다는 투자 구조와 연결되는 비은행 영역이 더 자주 언급됐다.


물론 반대 의견도 분명하다. 금산분리는 한국 경제에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계열사 부당 지원을 막는 핵심 장치였다. 한 번 예외를 열어주면 “이번엔 반도체, 다음엔 다른 산업”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래서 정부와 당국도 표현을 상당히 조심스럽게 쓰고 있다. ‘완화’라는 단어보다 ‘보완’이나 ‘실용적 개선’이라는 표현이 더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실제로 은행 지분 4% 규제를 크게 손대는 방안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 확정된 법이나 규정은 없지만, 정책 방향이 공개된 것만으로도 시장은 먼저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이 이슈를 볼 때 중요한 질문은 “금산분리가 풀리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어떤 산업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느냐”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구체화될수록 증시에서의 수혜와 실망도 함께 갈릴 가능성이 크다.

ⓒ 와이이코노미 & yeconomy.ai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전체댓글 0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금산분리 다시 수면 위로…왜 지금 한국 증시의 화두가 됐나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