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의 신용등급을 동시에 Baa2로 낮췄다. 최근 2년간 이어진 한국 화학 업황 침체와 글로벌 배터리 시장 둔화가 한꺼번에 겹치며 두 기업의 재무 체력을 짓눌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디스는 이번 조정의 근거로 “향후 1~1년 반 동안 높은 레버리지(부채 부담)가 유지될 가능성”을 들었고 실적 회복도 예상보다 더딜 것으로 판단했다.
무디스는 14일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의 신용등급을 기존 Baa1에서 Baa2로 한 단계 낮췄다. 등급 자체는 떨어졌지만 전망은 기존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바꿨다. 이는 두 회사의 신용 위험이 단기적으로 더 나빠질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당장 개선될 조짐 역시 뚜렷하지 않다는 뜻이다.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의 지분 79% 이상을 들고 있는 만큼 두 회사의 재무 구조는 사실상 하나의 덩어리로 움직인다는 점도 평가에 반영됐다. 무디스는 “등급 평가의 초점을 LG화학 연결 기준에 두었다”고 설명했다.
등급을 끌어내린 핵심 배경에는 한국 화학 업황 부진이 자리 잡고 있다. 2023년 이후 중국이 대규모 석유화학 설비를 잇달아 증설하면서 글로벌 공급이 급증했고 한국 기업들의 수익성은 빠르게 약화됐다.
원료 가격보다 더 중요한 ‘스프레드(원가와 판매가의 차이)’가 얇아지자 LG화학의 기초소재 부문 영업이익은 예전의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EBITDA가 줄어들면 분자(부채)는 그대로인데 분모(영업이익)가 줄어드는 만큼 레버리지가 높아진 것처럼 보이게 된다.
무디스가 “조정 순부채 대비 EBITDA 비율이 2025~2026년 3.4~3.7배까지 오를 것”이라고 판단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양극재 사업 역시 부담 요인이다. 전기차 판매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고가 양극재 수요가 줄었고 판가도 떨어졌다. LG화학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아온 양극재 부문의 이익 기여도가 낮아지자 연결 실적 전체가 흔들리는 효과가 나타났다.
무디스는 보고서에서 “양극재 가격과 물량 모두 예상보다 약하다”며 실적 부진이 2026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제기했다.
배터리 업황도 살얼음판을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공장 증설 투자로 현금 지출이 급증했지만 전기차 수요는 2020~2022년만큼 폭발적으로 늘지 않고 있다.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의 보조금 효과는 시간이 필요하고 완성차 업체들은 생산 계획을 조정하고 있다.
공장은 계획대로 짓고 있는데 매출 증가 속도가 예상보다 느려지면서 LG엔솔의 수익성은 초기 가동 구간에서 압박을 받게 됐다. 무디스가 “LG엔솔에서도 부채 증가 우려가 있다”고 언급한 이유가 바로 이 점이다.
두 회사 모두 투자 규모는 줄이기 어렵다는 점도 위험요인이다. 화학 사업은 업황 반등이 오기 전까지 설비 효율화 투자를 계속해야 하고 배터리 사업은 기술 경쟁을 위해 CAPEX를 늦추기 힘든 구조다.
당장 실적은 부진한데 지출은 크게 줄지 않으니 부채 부담이 완화되기 어렵다. LG화학의 연결 기준 재무지표가 계속 눌리는 모양새가 된 것도 결국 이 때문이다.
다만 무디스가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바꾼 것은 재무 개선 여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LG화학이 일부 자산 매각을 검토하고 있고 LG에너지솔루션은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 확대를 통해 수익성을 보완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시장에서도 북미 전기차 수요가 회복되고 양극재 가격이 안정되면 2026년 이후 연결 실적이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등급 강등에 대해 “두 회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업황에 회사가 발목을 단단히 잡힌 결과”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화학·배터리 모두 글로벌 공급과 수요가 어긋나는 구간에 들어서면서 한국 기업들의 체력이 동시에 약해졌고 그 충격이 신용평가에 반영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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