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원유 수송의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모든 화물에 20%의 통행료를 물리겠다고 선언했다가 하루 만에 이를 거둬들였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과 아라비아반도 사이의 좁은 바닷길로 전쟁 이전까지 세계에서 거래되는 원유의 약 5분의 1과 액화천연가스(LNG)의 상당량이 이곳을 통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미국이 앞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수호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지역의 안전과 보안을 유지하는 데 드는 모든 비용을 보전받는 차원에서 통과하는 모든 화물에 20% 요금을 부과하겠다고 했다.
동시에 이란 항구를 봉쇄하는 조치도 다시 시행하겠다고 예고했다. 이 봉쇄는 이란을 오가는 선박의 입출항을 막는 것으로 이란의 원유 수출을 차단하는 효과를 낸다. 미국은 앞서 4월 13일부터 6월 18일까지 이란 항구를 봉쇄했다가 지난달 이란과 임시 휴전 양해각서를 맺으면서 해제한 바 있다.
문제는 통행료 부과가 미국이 수십 년간 지켜온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국제법상 호르무즈 같은 국제 항로는 어느 나라도 통행을 이유로 요금을 매길 수 없다.
실제로 이란이 앞서 통행료를 물리려 하자 미국은 이를 불법이라며 강하게 반대했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지난달 어떤 나라도 국제 수로에 통행료나 요금을 부과할 수 없으며 이는 기존 국제법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해운 안전을 총괄하는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도 단지 해협을 지난다는 이유로 강제 통행료를 물릴 법적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해운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통상 화주는 화물 가치의 2~3% 수준을 운임으로 부담하는데, 20%는 그 열 배에 달해 사실상 아무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제 해운단체 빔코(BIMCO)는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한 척이 한 번 항해할 때 내야 할 요금이 약 27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3~6월 두바이산 원유 평균 가격인 배럴당 89달러를 기준으로 화물 가치의 20%를 계산한 수치다. 미국이 실제로 안전한 통항을 보장할 수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지난 몇 주간 이란의 공격을 막지 못한 상황에서 요금만 물리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란은 조롱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안전한 통항을 제공하는 쪽이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트럼프의 말은 옳다면서도 이란이야말로 늘 호르무즈 해협의 수호자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맞받았다. 그는 20%는 너무 많다며 이란은 공정하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통행료 계획을 철회했다. 그는 걸프 국가 지도자들과의 생산적인 대화 끝에 20% 요금을 걸프 국가들이 미국에 하는 무역·투자 거래로 대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등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다만 투자 규모나 참여국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요금은 없던 일로 하되 해협은 이란을 제외한 모든 상업 선박에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란 항구 봉쇄는 예정대로 14일 오후 4시부터 재개됐다.
통행료 소동과 별개로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오히려 고조됐다. 이란은 오만 영해 인근에서 세 척의 선박을 공격했고 이 가운데 UAE 국영 석유회사와 연관된 초대형 유조선 두 척이 큰 손상을 입어 선원 한 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다쳤다.
이란은 바레인과 요르단 등 걸프 국가들을 겨냥한 공격도 이어갔다. 쿠웨이트 군은 자국 함정이 피격돼 병사 네 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시장도 요동쳤다. 국제 유가는 봉쇄 재개 발표 이후 브렌트유 기준 배럴당 83달러를 넘어섰다. 호르무즈 통항량은 전쟁 전 하루 100척 이상에서 최근 하루 20여 척 수준으로 급감했다.
전쟁 위험이 커지면서 선박 보험료도 치솟았다. 선박 가치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던 전쟁위험보험료는 최근 2~6% 수준까지 올랐다. 1억 달러짜리 유조선 한 척이 호르무즈를 한 번 지나는 데 최대 600만 달러의 보험료가 드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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