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이 11일(현지시간) 발표한 반기 경제전망 보고서 '글로벌 경제 전망(Global Economic Prospects)'에서 2026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로 낮췄다. 지난해 2.9%에서 0.4%포인트 하락한 수치이며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19년 말 이후 가장 낮다.
세계은행은 2월 말 시작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무력 충돌이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리고 물가를 자극하면서 전 세계 차입 비용까지 높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전망은 직전인 올해 1월 전망치 2.6%에서 0.1%포인트 더 낮아진 것이다. 1월만 해도 세계은행은 무역 갈등과 정책 불확실성에도 세계 경제가 예상보다 견조하다고 평가했으나 넉 달 사이 상황이 급변했다. 세계은행은 전 세계 국가의 3분의 2에 대해 성장률 전망을 1월보다 하향 조정했다.
성장률 둔화의 핵심 원인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에서 외해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로, 전 세계 원유의 약 20%와 비료 교역량의 약 3분의 1이 이곳을 지난다. 가장 좁은 구간의 폭이 33㎞에 불과해 드론이나 기뢰 같은 값싼 수단만으로도 막을 수 있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한 뒤 이란이 보복에 나서면서 이 해협은 사실상 닫혔고 걸프 지역 산유국들은 원유를 실어 나르지 못해 생산 자체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세계은행은 무력 충돌이 얼마나 오래 이어지느냐에 따라 세 가지 경로를 제시했다. 기준 시나리오는 국제 유가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가 배럴당 평균 94달러를 기록하고 물가 상승률이 4.0%에 머무는 경우다. 이는 7월쯤 에너지 공급 차질이 최악의 국면을 지난다는 가정에 기반한다.
사태가 길어지는 시나리오에서는 유가가 배럴당 115달러로 오르고 물가 상승률은 4.4%까지 높아진다.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에너지 충격이 금융시장까지 번져 시장 전반에 패닉이 확산되는 경우로 이때 세계 성장률은 1.3%까지 주저앉는다.
연료뿐 아니라 비료도 문제다. 페르시아만에서 나오는 비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식량 공급 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세계은행은 별도의 원자재 시장 보고서에서 올해 비료 가격이 평균 31%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비료가 비싸지면 농민들이 사용량을 줄이고 이는 다음 수확기 작황 부진으로 이어진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충돌이 길어지면 올해 4500만 명이 추가로 심각한 식량 부족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인더밋 길은 충돌이 계속되면 다음 차례로 식량 가격이 영향을 받고 이는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역별로는 명암이 갈린다. 개발도상국의 집단 성장률은 3.6%로 떨어져 팬데믹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4.4%에서 크게 둔화한 것이다. 특히 걸프 산유국들이 가장 큰 폭으로 깎여 지난해 3.9%에서 올해는 0%에 가까운 수준으로 추락한다.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전체 성장률도 지난해 4%에서 올해 1.6%로 떨어진다.
반면 남아시아는 6.3%로 모든 지역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이 예상되지만 이 역시 지난해 7%에서 둔화한 수치다. 인도는 6.6% 성장이 전망돼 주요 경제국 가운데 가장 빠른 성장세를 유지한다.
주요국의 성적표는 엇갈린다. 미국은 올해 2.2% 성장한 뒤 2027년 2.1%, 2028년 2%로 점차 둔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유로존은 지난해 1.4%에서 올해 0.8%로 둔화하고, 일본은 1.1%에서 0.7%로 낮아진다.
중국은 지난해 5%에서 올해 4.2%로 0.2%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세계은행은 2027년과 2028년 세계 성장률이 2.8%로 완만하게 회복할 것으로 봤지만 이는 2010년대 평균보다 0.4%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의 세계 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물론 2018년과 비교해도 충격을 견디는 힘이 약해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책 불확실성이 높고 물가가 좀처럼 잡히지 않으며 고금리가 이어지는 상황이 수년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은행은 고령화, 정체된 민간·공공 투자, 늘어나는 국가 부채, 막힌 무역이 앞으로도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기적이 없는 한 2020년대는 일부 예외적 국가뿐 아니라 수십 개 개발도상국에 '잃어버린 10년'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썸네일 사진 출처: 세계은행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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