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하지 않았는데도 문제를 푼다.”
AI가 학습한 내용에 대해서만 답변을 내놓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그 중심에는 ‘제로샷 러닝(Zero-shot Learning)’이라는 기술이 있다. 이는 한 번도 예시를 주지 않은 작업을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 AI에게는 새로운 일을 시키려면 해당 작업에 맞는 데이터를 다시 모아 재학습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2026년에 접어든 현재, 대규모 언어모델은 추가 학습 없이도 새로운 분류, 번역, 요약, 추론 과제를 수행한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제로샷 러닝은 말 그대로 ‘학습 사례가 0개인 상태’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뜻한다. 여기서 ‘샷(shot)’은 특정 작업에 대해 모델이 추가로 제공받는 예시 데이터를 의미한다. 예시 없이 지시문만으로 작업을 수행하면 제로샷, 몇 개의 예시를 주면 소수샷(few-shot) 방식이라 부른다.
기존 지도학습은 입력과 정답이 쌍으로 묶인 데이터를 통해 모델의 계산 방식을 조정하는 구조였다. 반면 제로샷 러닝은 이미 방대한 자료를 학습한 모델이 새로운 작업 설명을 이해하고, 그 설명을 기존 지식과 연결해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 능력은 대규모 사전학습에서 비롯된다. GPT 계열, 제미나이(Gemini) 계열, 클로드(Claude) 계열, 라마(Llama) 계열 등 주력 AI 모델들은 인터넷 문서, 책, 코드, 이미지 설명 등 방대한 자료를 사전에 학습했다.

(사진 출처: 나노 바나나 프로 생성)
이 과정에서 모델은 개별 문장을 암기하는 대신 단어와 개념 사이의 관계를 수학적 표현 형태로 저장한다. 이를 통해 “이 문장을 요약하라”는 지시가 들어오면 요약이라는 개념과 연결된 패턴을 찾아 핵심 정보를 압축한다. 별도의 요약 전용 학습을 거치지 않아도 수행이 가능하다.
최근 발표된 벤치마크 연구들은 이러한 제로샷 능력을 정량적으로 비교하고 있다. 2026년 초 공개된 대형 언어모델 평가 논문에서는 GPT-4 계열, Claude 3 계열, Grok 계열 등 주요 모델들이 제로샷 상황에서 분류와 추론 과제에서 높은 정확도를 기록했다고 보고했다.
다수의 모델이 별도 예시 없이도 복잡한 텍스트 분류, 코드 생성, 문제 풀이 과제를 수행했으며, 일부 과제에서는 소수샷 성능에 근접하는 결과를 보였다.
대표적인 종합 평가 지표인 MMLU, GSM8K, HumanEval과 같은 벤치마크에서도 제로샷 성능은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수학적 추론 문제를 다루는 GSM8K에서 최신 모델들은 예시 없이도 상당 수준의 정답률을 기록했다. 코드 생성 능력을 평가하는 HumanEval에서도 제로샷 조건에서 통과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멀티모달 영역에서도 제로샷 확장이 진행 중이다.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와 음성을 함께 학습한 모델들은 이미지 설명이나 시각적 질의응답(VQA) 과제에서 제로샷으로 결과를 생성한다.
예를 들어 특정 사물을 한 번도 별도로 학습하지 않았더라도 “줄무늬가 있고 초식성인 동물”이라는 설명을 토대로 이미지를 해석하고 답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서로 다른 형태의 정보를 하나의 개념 공간 안에서 연결해 처리하기 때문이다.
제로샷 러닝은 산업 현장에서 비용 구조를 바꾸는 요소로도 작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작업별 모델을 별도로 개발하고 재훈련해야 했다. 이런 방식으로는 데이터 수집, 라벨링, 모델 튜닝에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범용 모델의 제로샷 활용이 가능해지면서 기업은 별도 모델을 새로 학습하지 않고도 다양한 업무에 AI를 적용할 수 있게 됐다. 고객 상담 답변 생성, 문서 분류, 코드 리뷰 보조, 회의 요약 자동화 등 여러 영역에서 즉시 활용 사례가 늘고 있다.
다만 제로샷 러닝이 모든 상황에서 충분한 정확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 진단, 법률 자문, 금융 리스크 평가처럼 전문성과 최신 정보가 중요한 분야에서는 오류 가능성이 높다.
모델이 그럴듯한 답을 생성하지만 사실과 다른 내용을 포함하는 ‘환각’ 현상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제로샷 조건에서의 환각 발생률을 분석하며 도메인 특화 데이터와 결합하지 않으면 정확도가 제한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때문에 기업 환경에서는 순수 제로샷 대신 검색 증강 생성(RAG) 방식과 결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외부 데이터베이스나 내부 문서를 실시간으로 불러와 모델의 응답에 반영하는 구조다.
또한 특정 도메인 데이터로 추가 조정하는 미세조정(fine-tuning) 기법을 병행해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모델이 추론 과정을 단계별로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방식도 연구되고 있다. 이는 모델이 어떤 근거로 답을 도출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시도다.
규제 환경도 제로샷 활용 범위를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AI 관련 규제 체계는 고위험 영역에서의 AI 활용에 대해 엄격한 책임 요건을 요구한다.
의료, 금융 등 특정 분야에서는 제로샷 모델을 단독으로 사용하는 대신 검증 절차와 인간 검토를 병행하도록 하는 내부 정책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기술적 가능성과 별개로 신뢰성과 책임 구조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오늘날 생성형 AI의 경쟁력은 제로샷 상황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새로운 작업을 수행하는지 여부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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