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자들이 금리 인하 기대를 거두고 있다. 중동 전쟁발 에너지 가격 급등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되살리면서 "금리가 더 오를 것"이라고 보는 가계가 급격히 늘어난 결과다. 연방준비제도(Fed) 내부에서도 이견이 커지며 4월 회의는 1992년 이후 가장 많은 반대표가 나왔다.
독일계 투자은행 도이체방크가 4월 말 발표된 컨퍼런스보드 소비자 신뢰 설문 결과를 분석한 데 따르면 응답자의 62.8%가 향후 1년 내 금리가 오를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2023년 8월 이후 최고치다.
반면 금리가 내릴 것이라고 본 응답자는 13.6%에 그쳤는데 이 역시 2023년 10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금리 인상을 예상하는 비율과 인하를 예상하는 비율의 격차는 약 50%포인트에 달했다.
컨퍼런스보드는 미국의 민간 경제연구기관으로 매달 소비자에게 경기·노동시장·물가·금리 전망 등을 물어 지수로 산출한다. 이번 4월 조사에서 소비자 신뢰지수는 92.8로 전월 92.2보다 소폭 올랐지만 세부 내용은 달랐다.
현재 경기와 고용을 평가하는 현황지수는 123.8로 0.3포인트 내렸고 향후 소득·경기·고용 전망을 담은 기대지수는 72.2로 1.2포인트 올랐다. 4월 1일부터 22일까지 진행된 설문 기간 중 이란과의 중동 분쟁 휴전이 2주간 선언되고 주가가 반등하면서 심리가 소폭 개선된 영향이 반영됐다.
그러나 컨퍼런스보드 수석이코노미스트 다나 피터슨은 소비자들이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고 향후 1년 내 금리가 오를 것이라고 보는 응답자 비율은 순 기준 50%에 육박했다. 향후 12개월 안에 경기침체가 "매우 가능성 높다"고 답한 비율도 다시 올랐다.
미시간대학이 별도로 실시하는 소비자 심리 조사에서도 우려는 뚜렷했다. 4월 최종치 기준 소비자 심리지수는 49.8로 사상 최저 수준에 머물렀다. 이 조사에서 향후 1년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3월 3.8%에서 4월 4.7%로 급등했는데 한 달 기준 상승 폭으로는 2025년 4월 이후 가장 컸다.
5~10년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치도 3.5%로 올라 2025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득·연령·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전 계층에서 심리가 악화됐다.
미시간대 조사 총괄 디렉터 조앤 수는 현재 소비자들이 휘발유 가격이나 체감 물가에 반응하는 것이지 연준이 공식 지표로 삼는 근원 물가 수치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연준의 소통 부담이 커졌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Fed는 4월 2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5~3.75%로 동결했다. FOMC는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준 내 위원회로 연 8회 회의를 열어 금리 방향을 결정한다. 이번 회의에서는 8대 4로 결정이 내려졌는데 4명의 반대표는 1992년 10월 이후 단일 회의 최다 반대 기록이다.
한 명은 25bp(1bp는 0.01%포인트) 인하를 지지했고 나머지 세 명은 향후 금리를 다시 내릴 여지를 시사하는 성명 문구 자체에 반대했다. 세 명의 반대는 실질적으로 현 금리 수준을 유지하거나 올려야 한다는 입장에 가까웠다.
도이체방크는 이번 FOMC를 분석하면서 현 상황을 "매파적 분열"로 규정했다. 선물시장에서 올해 금리 인하 가능성은 사실상 가격에서 빠졌고 내년 4월까지 금리 인상 가능성은 55%로 반영됐다고 밝혔다. 선물시장은 투자자들이 향후 금리 방향에 대한 기대를 실제 돈을 걸어서 표현하는 파생상품 시장이기도 하다.
도이체방크는 앞서 4월 17일 2026년 내 금리 동결을 공식 전망으로 발표하면서 기존에 유지하던 9월 25bp 인하 전망을 철회했다.
연준 공식 성명에서 제롬 파월 의장은 중동 사태가 경제 전망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고 언급했다. 파월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연준 이사회 이사직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임기가 2028년 1월까지인 파월은 의장직이 5월 15일 케빈 워시에게 넘어가더라도 이사로서는 남겠다는 것이다.
J.P.모건도 비슷한 판단을 내놨다. 인플레이션이 높고 인플레이션 기대가 흔들릴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연준 관리들이 금리 인하 의지를 거두고 있으며 고용시장이 눈에 띄게 약화되거나 에너지 충격으로 인한 경제 피해가 심화되지 않는 한 인하는 어렵다고 봤다.
3월 FOMC 의사록에 따르면 당시 원유 선물 가격은 분쟁 발발 이후 약 50% 급등했고 1년물 인플레이션 스와프 금리는 50bp 가까이 올랐다. 인플레이션 스와프는 시장 참가자들이 미래 물가 수준을 서로 교환하는 파생상품으로 시장의 인플레이션 기대를 측정하는 데 쓰인다.
당시 기준 2026년 금리 인하 가능성은 시장에서 거의 사라진 상태였고 금리 인상 확률은 30%로 올라 있었다. 이후 3월 27일에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를 넘어서면서 CME 그룹 기준 선물시장의 금리 인상 확률이 처음으로 50% 문턱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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