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 오스탄 굴스비가 14일(현지시간) 이란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급등이 올해 금리 인하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워싱턴 D.C.에서 열린 세마포 세계경제 2026 컨퍼런스 패널 토론에 참석한 굴스비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금리 인하 시점이 2027년으로 밀릴 수 있다고 밝혔다.
굴스비 총재는 이란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올해 여러 차례 금리를 내릴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전쟁 전에는 2026년에 금리를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인하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충격이 이 전망을 바꿨다는 설명이다.
굴스비 총재는 현재 연준이 처한 상황을 "위험하고 미끄러운 지점"이라고 표현했다. 관세 인상으로 이미 물가 상승 압력이 높은 상황에서 에너지 충격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꺾이지 않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금리 인하 시점도 그만큼 뒤로 밀린다는 것이다.
나아가 물가가 더 오를 경우 금리를 오히려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번 경고의 배경에는 실제로 악화된 물가 지표가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이 지난 10일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3.3% 상승해 전달 2.4%에서 크게 뛰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가계가 실제로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변동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 중 에너지 가격은 3월 한 달에만 10.9% 올랐으며 특히 휘발유 가격은 한 달 새 21.2%, 1년 새 18.9% 폭등했다. 미국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12달러로, 전쟁 전 2.94달러에서 1달러 이상 급등했다. 미국 기준 1갤런은 약 3.8리터다.
에너지 가격 급등은 항공료 상승으로도 이어졌다. 3월 항공료는 1년 전보다 14.9% 올랐다. 아마존도 오는 17일부터 연료비 인상을 이유로 제3자 판매자에게 3.5%의 연료·물류 추가 비용을 부과할 예정이다. 에너지 비용 상승은 운송과 제조 등 산업 전반으로 파급되기 때문에 물가를 더 끌어올리는 구조다.
같은 날 발표된 3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전월보다 0.5% 상승했다. 생산자물가지수는 기업이 제품을 팔 때 받는 가격의 변동을 측정하는 지표로 향후 소비자물가를 예측하는 선행 지표 역할을 한다. 시장 예상치인 1.1%보다는 낮았지만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이 공급망을 타고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굴스비 총재는 연준이 과거 인플레이션 판단 실수를 거울삼아 더욱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팬데믹 이후 물가 급등 당시 연준은 초기에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잘못 판단해 대응이 늦었고 그로 인해 신뢰도에 타격을 입었다.
그는 "2025년 한 해 동안 인플레이션 개선이 완전히 멈췄다"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연준 목표치 2%를 이미 5년째 웃돌고 있다.
현재 연준의 기준금리는 연 3.50%~3.75% 수준이다. 연준은 지난해 말 세 차례 금리를 낮췄지만 올 1월과 3월 회의에서 연속으로 동결을 결정했다. 3월 회의 당시 19명의 통화정책 위원 중 7명이 올해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시장에서는 오는 28~29일 열릴 4월 회의에서도 금리가 동결될 가능성을 97% 이상으로 본다. CME 페드워치는 현재 2026년 내 단 한 차례의 금리 인하도 없을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CME 페드워치는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베팅을 집계해 향후 금리 변동 확률을 실시간으로 산출하는 도구다.
굴스비 총재는 에너지 충격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할 수 있는 요인도 언급했다. 미국이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와 달리 지금은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 중 하나가 됐기 때문에 고유가가 지속되면 국내 셰일오일 시추 투자가 늘어나 공급이 자연스럽게 늘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소비자와 운송업계가 당장 비용 압박을 느끼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소비 심리 악화도 굴스비 총재가 주목한 위험 요인이다. 현재 미국의 소비자 심리지수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휘발유 가격 급등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소비자 지출은 미국 경제의 70% 안팎을 차지하는 핵심 성장 동력이다. 아직 실제 소비가 크게 줄지는 않았지만 심리가 흔들리면 소비가 꺾이고 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는다는 것이 그의 경고다.
연준 독립성 문제도 거론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에 대한 금리 인하 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굴스비 총재는 연방준비제도법(Federal Reserve Act)에는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 외에 다른 어떤 기관도 만족시킬 의무가 명시돼 있지 않다고 단언했다.
한편 AI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현재의 생산성 향상이 AI 덕분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실제 AI 도입 규모는 아직 그 정도의 효과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오히려 미래 AI 수익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식 가치가 지나치게 오를 경우 2000년대 닷컴 버블과 유사한 과열과 붕괴 사이클이 반복될 수 있으며 연준이 과열 방지를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썸네일 사진 출처: Trading Economics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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