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10%에서 최대 50%에 이르는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하자 글로벌 기업들이 가격 인상과 투자 축소, 생산 조정에 나섰다. 수십 년간 유지돼 온 글로벌 공급망 구조가 단기간에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초 전면적 관세 인상을 단행했다. 그는 이를 통해 미국 내 일자리를 되찾고 무역 조건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기업 경영진들은 관세가 비용 상승과 수요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책 방향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면서 기업들이 신규 투자와 채용을 미루는 ‘대기 모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글로벌 해운사들은 가장 먼저 경고음을 냈다. 세계 2위 컨테이너 선사인 머스크는 이번 조치가 세계 경제와 교역 안정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독일의 하팍로이드 역시 관세가 물동량과 운임, 비용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서비스 노선 조정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식품업체 코나그라 브랜드는 코코아와 팜오일, 통조림용 강판 등 주요 원재료 일부를 해외에서 조달하고 있다. 회사 측은 관세 비용을 상쇄하기 위해 가격 인상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소비재 기업들이 가장 먼저 선택하는 대응 방식은 가격 전가다. 관세로 오른 비용을 소비자에게 넘기는 방식이다. 다만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는 마진 축소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상반된 움직임이 나타났다. 스텔란티스는 멕시코와 캐나다 공장의 생산을 일시 중단하면서 이를 지원하는 미국 미시간·인디애나 시설 직원 약 900명을 임시 해고하겠다고 발표했다. 관세로 인한 생산 차질이 미국 내 고용에도 즉각 영향을 미친 셈이다.
반면 제너럴모터스는 인디애나 포트웨인 공장의 경트럭 생산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멕시코와 캐나다에서도 같은 차종을 생산하는 만큼, 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생산 일부를 미국으로 옮길 수 있다는 판단이다. GM은 이미 실적 발표 자리에서 관세에 따라 생산지 조정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통해 해외 생산을 미국으로 되돌리는 리쇼어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단기간에 공급망을 재편하는 데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중국에 추가로 34%의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베트남과 캄보디아에도 각각 46%, 49%의 관세를 적용하면서 대체 생산기지 선택 폭도 좁아졌다. 최근 수년간 중국을 벗어나 동남아로 생산을 이전해 온 기업들로서는 다시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영향은 스포츠웨어 업계에서도 즉각 나타났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푸마 등 주요 브랜드 주가는 급락했다. 이들 기업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비중이 높다.
관세가 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경우 가격 인상 또는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반영된 결과다. 미국 증시 전체도 거의 5년 만에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미국 내 유통업체들도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 타깃과 베스트바이는 관세 부담을 소비자 가격에 일부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다만 마진 압박도 동시에 우려하고 있다. 애플 주가는 하루 만에 9% 하락했다. 아이폰의 주요 생산 거점이 중국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아이폰 가격이 30~40% 오를 경우 고가 모델은 2000달러를 넘길 수 있다고 추정했다.
유럽 기업들도 대응에 나섰다. 이탈리아의 일리카페와 페라리는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 고급 커피와 스포츠카는 가격 전가 여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다른 커피업체 라바짜는 미국 공장 확장 계획을 앞당길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내 생산 비중을 높여 관세 영향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이탈리아 패션·가죽 업계를 대표하는 단체는 이미 비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미국 관세가 수요 둔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소비자들이 추가 비용을 감내할지 여부에 따라 업계 실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소규모 기업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영국 리버풀에 기반을 둔 향신료 판매업체 스파이스 키친은 미국 시장 진출을 확대하려던 계획이 관세로 인해 불확실해졌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 회사에 핵심 수출 시장이다. 관세가 사업 확장 전략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시장에서는 가장 큰 위험으로 기업 투자 중단을 꼽는다. 관세율이 단기간에 급등하고 정책 방향이 수시로 바뀌면 기업은 설비 투자나 신규 채용을 미루는 경향을 보인다.
경제 성장률이 일정 폭 하락하는 것이 예측 가능한 상황이라면 대응이 가능하지만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면 기업들은 현금 보유를 늘리고 리스크를 줄이는 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여러 측면을 종합하면 관세가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공급망은 이전과 다른 형태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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