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가 미국 정부의 압박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회사는 11월 5일(현지시간) 자사 대표 비만·당뇨 치료제 ‘오젬픽(Ozempic)’과 ‘위고비(Wegovy)’, ‘라이벨서스(Rybelsus)’의 약가를 미국 정부가 정한 가격에 맞추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약들은 모두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라는 성분을 기반으로 하는데 이번 합의는 2022년 제정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에 따라 2027년 1월부터 미국 연방의료보험인 메디케어(Medicare)가 직접 약가를 협상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결과다.
이번 조치는 미국 정부가 고가 의약품 가격을 억제하기 위해 밀어붙여온 ‘최대 공정 가격(Maximum Fair Price·MFP)’ 정책의 대표적 사례다. MFP는 말 그대로 정부가 “이 가격 이상은 불공정하다”고 정한 상한선으로 제약사가 이를 넘겨 판매하면 메디케어가 보험 지원을 하지 않는다.
노보노디스크는 그동안 이 정책이 기업의 가격 자율권을 침해한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지만 결국 “모든 법적 권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메디케어 가격을 수락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사실상 미국 정부의 가격 압박에 굴복한 것으로 해석된다.
노보노디스크는 이번 조치가 올해 바로 시행됐다면 “글로벌 매출에 낮은 한 자릿수 비율의 부정적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대략 매출의 1~3%가 줄어드는 규모다.
투자은행 JP모건은 이로 인한 매출 감소액을 약 60억 덴마크 크로네(미화 약 9억 3천만 달러)로 추산하면서 “예상보다는 낫다”고 평가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메디케어 시장 진입을 확보하는 편이 더 이익이라고 본 것으로 보인다.
노보노디스크는 같은 날 발표한 3분기 실적에서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덴마크 크로네 기준 5%, 환율 조정 기준 11% 증가했다고 밝혔다. 다만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30% 감소했다.
이는 회사가 진행한 대규모 구조조정과 생산시설 인수에 들어간 일회성 비용 약 90억 크로네(약 13억 8천만 달러)가 영향을 미친 탓이다. 순이익도 27% 줄어든 2만 크로네(약 3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에 회사는 올해 매출 성장 전망치를 기존 최대 14%에서 11%로, 영업이익 증가율은 최대 10%에서 7%로 하향 조정했다.
노보노디스크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비만약 제조사다. 특히 ‘위고비’는 체중 감량 효과가 확실하다는 입소문으로 미국 전역에서 품귀 현상을 일으켰고 회사는 한때 유럽 일부 국가 GDP를 넘어서는 시가총액을 자랑했다.
그러나 폭발적인 수요와 달리 공급이 부족해 생산시설을 늘려야 했고 최근에는 비용 상승과 정부 규제로 수익성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이번 메디케어 가격 협상 수락은 수익률 압박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 의도도 짙다. 트럼프 행정부는 비만약 약가를 낮추는 협상을 주도하며 중산층 유권자들의 약값 부담을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백악관은 최근 노보노디스크 및 경쟁사 일라이릴리(Eli Lilly)와 비만약 가격을 낮추는 대신 메디케어 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국민 불만이 높은 고가 비만약 문제를 정치적 성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노보노디스크의 결정은 제약 업계 전반에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 정부가 이번 사례를 바탕으로 향후 암 치료제나 희귀질환약 같은 고가 의약품까지 협상 대상을 넓힐 경우 다국적 제약사들의 수익 구조가 크게 바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합의가 “가격 인하의 전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향후 글로벌 의약품 시장에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회사 내부에서는 이번 결정을 ‘전략적 양보’로 표현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의 대립을 지속하기에는 정치적 리스크가 너무 크고 보험 시장 진입을 포기하면 비만약 시장 점유율이 경쟁사에 넘어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일라이릴리의 비만약 ‘젭바운드(Zepbound)’ 판매가 급증하고 있어 노보노디스크가 시장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가격 인하를 받아들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건은 “제약사가 정부 정책에 굴복한 첫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노보노디스크는 약가 자율권을 잃는 대신 메디케어 시장 접근권을 얻었고 미국 정부는 정치적 성과를 챙겼다. 시장은 이 결정을 피할 수 없는 타협이라고 인정한 동시에 향후 약가 정책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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