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약회사들을 향해 전면 압박에 나섰다. 그는 최근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비싸게 약을 사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하며 의약품 가격을 직접 낮추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백악관은 지난 9월 30일 화이자와 첫 번째 합의가 이뤄졌다고 발표했다.
이 합의에 따라 화이자는 앞으로 모든 주(州)의 저소득층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 프로그램에 자사 의약품을 가장 낮은 국제 기준 가격으로 공급하고 미국 소비자들이 화이자의 약을 제조사 직거래로 살 수 있게 만드는 ‘트럼프알엑스(TrumpRx.gov)’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다.
정부는 “미국이 해외보다 비싼 약값을 더 이상 감수하지 않겠다”며 이를 ‘가장 우대국가(MFN) 가격제’라고 이름 붙였다.
트럼프는 이 발표 직후 수입되는 브랜드 의약품 전품목에 100% 관세를 매기겠다고 경고했지만 실제로 세금이 부과되지는 않았다. 백악관은 “당장 시행하지는 않지만 미국 안에 공장을 짓거나 가격 인하 협상을 하지 않는 회사에는 언제든 세금을 매길 수 있다”고 밝혔다.
지금은 구두 협박 단계에 있지만 제약사 입장에선 언제든 관세가 터질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가격 압박에 더해 ‘약값 공개’ 규칙도 새로 시행했다. 10월 1일부터 약을 사는 사람은 어떤 약이 얼마인지, 병원과 약국이 제조사로부터 얼마에 사는지까지 한눈에 볼 수 있게 됐다.
또 정부 의료보험국(CMS)은 2026년 약값 보조 프로그램(파트 D) 평균 보험료가 더 낮아질 거라고 발표했다. 정부가 직접 가격 인하 흐름을 밀어붙이는 셈이다.
주(州) 정부들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콜로라도주는 세계적인 관절염 치료제 ‘엔브렐(Enbrel)’에 대해 상한선을 정해 그 이상으로는 아무도 지불할 수 없게 했다. 일종의 ‘가격 상한제’다. 제약업계는 “가격 통제를 정부가 직접 하는 건 위험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식품의약국(FDA)은 10월 3일 새로운 제도를 발표했다. 미국에서 직접 만들어지는 복제약(제네릭)에 한해 심사를 빨리 끝내주는 ‘패스트트랙(신속심사)’ 제도다. ‘미국산 복제약은 바로 승인’이라는 메시지를 주면서 제약회사들이 생산공장을 다시 미국으로 옮기게 하려는 계산이다.
제약사들은 이 압박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화이자처럼 정부와 협상해 ‘가격 인하+공장 건설’ 조건을 수용하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제약사 단체들은 “이런 방식은 신약 개발 의욕을 꺾는다”고 주장하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트럼프가 예고한 관세가 미뤄진 틈을 타 미국 내 투자 계획을 발표하거나 로비를 강화하는 회사도 늘고 있다.
복제약 회사들은 반대로 기회로 보고 있다. 미국에서 만든 복제약은 빨리 승인받을 수 있으니 미국 공장을 세우거나 기존 생산라인 일부를 옮기려는 움직임이 많다. 작은 회사들은 혼자 감당이 어렵기 때문에 대형 제조업체와 손잡거나 기술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바이오벤처들은 사정이 다르다. 자금이 부족한 소규모 회사들은 정부 정책이 불안정하자 신약 후보물질을 대형 제약사에 미리 팔거나, 로열티 계약을 맺어 현금을 확보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시장에서는 “지금은 불확실하니 현금을 쥐는 게 먼저”라는 분위기다.
보험사와 약값 중간유통업체(PBM)들도 긴장하고 있다. 정부가 약값과 리베이트(제약사에서 받는 환급금) 구조를 모두 공개하라고 하자, 이들은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하는 자체 약국이나 인터넷 판매망을 만들며 이익이 줄어드는 걸 막으려 한다.
도매유통업체들도 제약사들이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할 가능성에 대비해 운송과 데이터 서비스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바꾸고 있다.
병원 쪽은 복잡하다. 정부가 정한 낮은 가격으로 약을 살 수 있게 되면 병원 부담이 줄 수 있지만, 제약사와의 기존 할인 계약이 바뀌면서 협상 구조가 다시 짜일 가능성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내년 초 ‘트럼프알엑스’ 사이트가 열리면 직접 제조사에서 약을 살 수 있게 된다. 다만 처음에는 일부 약만 해당되고, 무보험자나 본인부담금이 큰 사람에게 혜택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언론은 “할인 폭은 커 보이지만 실제 절감 효과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올해 5월 트럼프는 “자발적으로 약값을 내리지 않으면 직접 내리게 하겠다”고 선언했고, 7월에는 17개 제약사에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9월 25일에는 “100% 관세”를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닷새 뒤 화이자 합의가 발표됐다.
관세는 10월 1일 발효될 예정이었으나 멈췄고 같은 날 가격 공개 규칙이 시행됐다. 10월 3일엔 복제약 신속심사 제도까지 나왔다.
이제 남은 건 관세 실행 여부와 내년 정부의 약값 협상 결과다. 트럼프가 약값을 실질적으로 얼마나 낮출 수 있을지는 다음 협상 테이블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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