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새로운 행정명령을 통해 H-1B 비자 신청에 1회성 10만 달러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인도 정부와 IT 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조치는 이민 규제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인도 출신 인력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는 정책으로 평가된다.
인도인은 전체 H-1B 비자 소지자의 약 71%를 차지하고 있으며 뉴델리 당국은 “가족에게 큰 혼란을 야기하는 인도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이유로 인도산 제품에 최대 50%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한 직후 나왔다. 연이은 통상·이민 규제 강화로 인해 한때 ‘전략적 동반자’로 불렸던 미국-인도 관계는 갈수록 삐걱이고 있다. 특히 미국 내 승인된 H-1B 비자의 절반 이상이 컴퓨터 관련 업무 종사자에게 발급되는 만큼 이번 수수료는 미국 기업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19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트럼프 골드 카드’ 도입과 H-1B 비자 신규 신청 수수료 부과를 포함한 행정명령 두 건에 서명했다. ‘트럼프 골드 카드’는 100만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면 영주권과 시민권 취득 경로를 제공하는 제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 제한과 고액 투자 유치를 동시에 밀어붙이며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책이 역효과를 낼 가능성을 지적한다. 시카고대학 스티븐 더럴프 교수는 “고액 비자 수수료는 글로벌 노동시장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를 미국 기업이 채용하지 못하게 만들 것”이라며 “이는 오히려 해외 경제 활동을 촉진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가 오히려 자국 내 인공지능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계기가 된 사례로 거론된다.
인도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오히려 글로벌 역량 센터(GCC) 확산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GCC는 기업이 직접 해외 인재 거점에 설립하는 원격 사무소로, 기존 아웃소싱과 달리 인소싱에 가까운 형태다. RSM US 소속 아디티야 메타는 “중견 미국 기업들은 인도에 GCC를 세우는 방식으로 비용 절감과 인재 확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맥킨지에 따르면 인도에는 1600개 이상의 GCC가 운영 중이며 170만 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인도 부동산 컨설팅사 아나록은 최근 2년 반 동안 인도 7대 도시에서 공급된 오피스 공간의 38%를 GCC가 임대했다고 밝혔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빅테크와 JP모건, 골드만삭스, HSBC 같은 글로벌 금융사들이 이미 대규모 GCC를 운영 중이다. ANSR의 비크람 아후자는 “포춘 500대 기업 중 30% 미만만이 인도에 GCC를 보유하고 있어 성장 여지가 크다”며 향후 2~3년 내 60% 증가를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비자 규제 강화가 단기적으로 인도 인력의 미국 진출에 큰 타격을 주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인도 내 고급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인도 IT 인력 중 절반 이상이 신규 H-1B 신청자였다는 점에서 당장의 충격은 불가피하다.
실제로 아마존의 신규 H-1B 승인 건수는 2021년 6152건에서 2024년 37% 감소했고, 인도 대표 IT 기업 타타컨설턴시서비스(TCS) 역시 2021년 3062건에서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이는 현지 채용 확대와 GCC 확장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또 다른 변수는 인공지능(AI), 데이터 분석, 클라우드 인프라 분야의 인재 부족이다. 인도 인력 컨설팅사 퀘스 코프의 카필 조시는 “AI와 데이터 분석 분야의 인재 부족률은 42%에 달한다”며 GCC 확대가 이 공백을 메우는 핵심 수단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워싱턴발 규제가 인도 경제에 충격을 주고 있지만 인도는 이를 자국 기술 산업 도약의 기회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인도 IT 산업은 1990년대 말 아웃소싱 붐을 시작으로 성장해 글로벌 소프트웨어 서비스와 코딩 허브로 발전했고 이는 인도 중산층의 확대와 벵갈루루·하이데라바드 같은 도시의 번영을 이끌었다.
이번 조치가 미국행을 막는 벽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인도 내에서 다시 한 번 기술 산업의 ‘부메랑 성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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