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형 상장사 대부분이 AI에 막대한 돈을 쓰고도 재무적 성과를 거의 얻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AI 효과가 소수 빅테크에만 쏠려 있고 나머지 기업에서는 매출과 이익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26일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사모펀드 운용사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의 토르스텐 슬록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4일(현지시간) 발간한 시장 노트 '데일리 스파크'에서 AI가 기술 업종 밖 미국 기업에 가져다준 재무적 성과가 전무하다고 평가했다.
슬록은 미국 대표 주가지수인 S&P500 구성 종목을 둘로 나눴다. 알파벳·아마존·애플·메타·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테슬라 등 이른바 '매그니피센트7(M7)'과 이들을 뺀 나머지 493개 기업인 ‘S&P 493’이다.
결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물가 상승분을 걷어낸 노동자 1인당 매출은 M7의 경우 2022년 약 55만달러에서 올해 80만달러 가까이로 늘었지만 S&P 493은 제자리였다. 매출 가운데 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인 이익률도 M7은 2023년 1분기 약 15%에서 올해 1분기 약 25%로 뛰었으나 S&P 493은 10% 안팎에서 정체했다.
노동과 자본 투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생산 증가분으로 기술 혁신 효과를 가늠하는 '총요소생산성'에서도 AI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자료에 따르면 경기에 따른 가동률 변화를 걷어낸 총요소생산성은 올해 1분기까지 4개 분기 동안 0.07% 오르는 데 그쳤다.
슬록은 성과가 나지 않자 일반 기업들이 AI 지출을 줄이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AI 모델은 글자를 '토큰'이라는 작은 단위로 쪼개 처리하고 기업은 쓴 토큰 양만큼 요금을 낸다. 기업들이 이 토큰 비용을 성장 동력이 아니라 이익률을 깎는 비용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은 토큰 지출을 늘리고 있지만 전통 기업은 최신 고성능 모델이 필요하지 않고 그 값을 치를 생각도 없다고 슬록은 설명했다.
지출 쏠림은 기업 지출관리 업체 램프의 결제 데이터에서도 드러난다. 슬록이 인용한 램프 자료에서 상위 10% 기업은 AI 모델 구동과 추론 지출의 99.5%를 차지했다. 추론은 학습을 마친 AI가 실제 질문에 답을 내는 과정이다. AI 전용 클라우드인 '네오클라우드' 지출의 99%와 오픈AI·앤트로픽 관련 지출의 95% 이상도 이들 몫이었다.
램프가 14일 공개한 지수를 보면 상위 1% 기업은 9월 직원 1인당 월 9568달러를 AI에 썼다. 7월 기준 중간값 기업의 1인당 지출은 월 11.95달러였다. 램프는 8월과 9월 두 달 연속 토큰 지출이 사실상 늘지 않았다고 밝혔다.
슬록은 AI 활용이 경제 일부에 갇혀 있는 한 거시경제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봤다. 모델이 평준화되고 값이 떨어져도 일반 기업이 싸진 지능을 매출과 이익률로 바꾸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는 AI가 계산에는 뛰어나지만 사업에서 지능은 대부분 판단의 영역이며 판단은 맥락과 묻는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고 짚었다.
AI는 책임·신뢰·조직문화·불문율·윤리적 선택·공정성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런 요소가 기업 평판 위험을 좌우하고 결국 매출과 이익률을 결정한다는 설명이다. 슬록은 AI의 성패가 M7이 아닌 S&P 493에서 판가름 날 것이라고 했다.
그는 8월 노트에서도 헬스케어 이익률이 2015년 이후 절반으로 줄었고 필수소비재와 경기소비재는 각각 6%, 8% 수준에 머물렀다며 AI 투자 붐의 과실이 AI를 파는 쪽에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기업 현장 조사도 같은 흐름이다. 미국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올해 초 공개한 보고서에서 미국·영국·독일·호주 기업 임원 약 6000명 중 89%가 지난 3년간 AI가 노동생산성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답했다. 응답 기업의 69%가 AI를 쓰고 있었지만 고위 임원의 사용 시간은 주당 평균 1.5시간이었다.
빅테크 투자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메타는 21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올해 설비투자 전망을 1350억~1450억달러로 제시했다. 3분기 설비투자 349억달러가 영업으로 번 현금을 넘어서면서 잉여현금흐름은 마이너스 21억달러를 기록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AI 매출이 투자를 뒷받침하지 못하면 2030년까지 3조5000억달러 이상의 AI 인프라 투자가 자산 가치를 장부에서 깎아내는 손상 처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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