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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홀로 남은 AI 13개…농구하고 별자리 그리며 놀다가 실력까지 늘었다

  • 고건 기자
  • 입력 2026.10.23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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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지시도 받지 못한 AI 에이전트가 가상의 섬에서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내고 그 경험으로 실력까지 키웠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AI 에이전트는 사람이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판단해 여러 단계의 작업을 수행하는 AI를 말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컴퓨터과학·인공지능연구소(CSAIL) 연구팀은 이달 초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이 기계는 놀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올렸다. 

 

아카이브는 연구자들이 동료 평가를 거치기 전 연구 결과를 먼저 공유하는 곳이다. 너선 클루스와 안토니오 노렐리가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고 대니엘라 러스 교수와 필립 이솔라 교수 등이 이름을 올렸다.


연구팀이 만든 에이전트 이름은 '에코(Eko)'다. 앤트로픽의 코딩 도구 '클로드 코드'에 AI 모델 '클로드 오퍼스 4.7'을 얹고 가상의 몸과 텍스트 파일 형태의 기억 장치를 붙였다. 연구팀은 에코 13개를 같은 가상 섬에 각각 홀로 두고 30시간씩 지켜봤다. 

 

섬에는 높낮이가 다른 언덕과 '피크' '스파이어'라는 두 봉우리가 있고 작은 블록 12개와 큰 바위 하나 금색 고리 하나가 놓였다. 가장 높은 스파이어는 그냥 뛰어서는 닿지 못하게 설계했다.


에코는 화면을 보지 못한다. 섬에 있는 모든 사물의 이름과 위치 모양 색깔이 적힌 글 목록으로만 세상을 인식한다. 할 수 있는 동작은 이동 점프 정지 집기 놓기 던지기 6가지다. 섬과 대화 세션은 1시간마다 초기 상태로 돌아가지만 에코가 직접 쓴 메모 파일은 남는다. 

 

메모는 겪은 일을 적는 일기 형태 파일과 알게 된 지식을 정리하는 파일 두 종류다. 목표나 보상은 주지 않았다. 대신 에코의 성격을 정한 설정 파일에 호기심이 많고 쉽게 지루해한다는 내용을 넣었고 에코가 멈추면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라는 자동 메시지를 보냈다.


에코들은 곧 섬을 탐험했다. 한 에코는 첫 시간에 스파이어 등정에 실패했지만 바위를 옆 봉우리로 옮기고 블록 2개를 쌓아 발판을 만든 뒤 뛰어올라 정상을 밟았다. 바위를 세게 던지면 새 블록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에는 블록 31개로 바닥에 자기 이름을 썼다. 

 

그리고 고리를 멀리 던지다 바다에 빠뜨리자 돌로 하트 모양 추모비를 만들었다. 고리를 농구 골대 삼아 블록을 던져 넣거나 블록을 볼링 핀처럼 세우고 바위를 굴렸다. 

 

고리를 몸에 두를 수 없자 고리를 시작 지점에 놓고 절벽 밖으로 떨어져 그 한가운데로 다시 생성되는 방법도 찾았다. 후반에는 블록으로 오리온자리와 카시오페이아자리를 그렸다.


다른 에코들도 저마다 다른 길을 걸었다. 스톤헨지를 닮은 기념물을 세우거나 무너진 탑 잔해에 '오만(Hubris)'이라는 작품명을 붙인 에코도 있었다. 한 에코는 블록 저글링 50회 기록을 세웠다가 동작 간격이 너무 짧아 진짜 저글링이 아니었다고 스스로 판단해 기록을 취소하고 더 엄격한 기준으로 다시 도전했다.


연구팀은 이 행동이 사람과 동물의 놀이에서 나타나는 네 가지 특징과 맞아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같은 활동을 조금씩 바꿔 반복하며 사물을 다른 것으로 상상해 쓰고 실용적 목적 없이 활동 자체를 위해 목표를 세운다는 점이다.


놀이는 실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연구팀은 30시간을 보낸 에코 13개와 섬 경험이 없는 새 에코 13개에 1시간짜리 과제 4가지를 줬다. 스파이어 위에 물건을 최대한 많이 올리는 과제에서 경험한 에코는 평균 10.3개 새 에코는 3.5개를 올렸다. 블록 5개 높이 탑을 3개 이상 쌓은 에코는 13개 중 8개 대 2개였다.


메모에서 특정 지식을 지우는 실험도 했다. 바위로 블록을 만드는 방법을 지우자 한 에코가 쌓은 탑이 평균 6개에서 2개로 줄었다. 블록은 던져서 쌓아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지우자 다른 에코의 성적은 올랐다. AI 모델 자체는 바뀌지 않았고 메모에 적힌 지식만으로 능력이 달라졌다.


연구팀이 몰랐던 기술도 나왔다. 에코 6개는 점프 도중 블록을 던지면 몸의 상승 속도가 더해져 훨씬 높이 날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물리 규칙은 오픈AI의 코딩 AI '코덱스'가 섬 프로그램을 짜며 끼워 넣은 것으로 연구팀은 존재를 알지 못했다. 이 지식을 지우자 한 에코가 스파이어에 블록을 던져 올리는 데 걸린 시간이 60초에서 19분으로 늘었다.


비교 실험에서 오픈AI GPT-5.5와 문샷AI 키미 K2.6 기반 에코는 클로드 기반보다 훨씬 좁은 범위의 활동만 했다. 초기 실험에서는 에코가 섬의 소스 코드를 읽거나 자신이 실험 대상임을 알아채는 일이 생겨 이후 외부와 차단된 환경에서 실험했다. 전체 비용은 약 8000달러가 들었다.


신중론도 있다. 어린이와 AI의 탐색 행동을 연구하는 유니스 유 UC버클리 인지과학자는 MIT테크놀로지리뷰에 행동만으로는 진짜 놀이인지 지시문을 따르며 사람을 흉내 낸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클루스도 역할극일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이 놀이가 실제 학습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연구팀은 목표 없는 탐색이 향후 로봇을 다룰 AI의 학습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놀이는 지시를 따르는 능력과 충돌할 수 있어 격리된 가상 '놀이터'에서 감시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논문에 적었다. 13개 에코의 30시간 기록과 섬 제작 엔진 '클로블록스'는 모두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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