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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회사채 시장의 '조용한 경고'…부실기업 자금줄부터 막힌다

  • 고건 기자
  • 입력 2026.09.04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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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회사채 시장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어긋남이 나타나고 있다. 영국 리서치기관 롱뷰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최근 몇 달 사이 가장 위험한 등급의 회사채는 자금 조달 비용이 눈에 띄게 뛰고 있는 반면 시장 전체는 여전히 안정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신용등급 'CCC 이하'로 분류되는 회사채다. 신용등급은 기업이 돈을 제때 갚을 능력을 평가한 성적표로, CCC 이하는 부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최하위권에 속한다. 

 

이런 기업들이 새로 돈을 빌릴 때 물어야 하는 가산금리, 즉 스프레드가 빠르게 오르고 있다. 

 

스프레드는 안전한 국채와 비교해 위험한 회사채에 얼마나 더 높은 이자를 얹어주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로 이 값이 커진다는 것은 시장이 해당 기업의 부도 위험을 그만큼 크게 본다는 의미다. 실제로 CCC 등급 스프레드는 9월 초 10%를 웃돌았다.


이상한 대목은 전체 하이일드(고위험·고수익) 회사채 시장이다. 부실기업 자금줄은 마르는데 시장 전체 스프레드는 수십 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위험 신호와 안도감이 한 시장 안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부실 징후는 이미 수치로 드러나고 있다. 자산운용사 스테이트스트리트의 3분기 신용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투기등급 기업 부도율은 4.0%까지 올라 지난 20년 중간값인 2.9%를 크게 웃돌았다. 

 

유럽도 4.6%로 장기 평균 2.3%의 두 배가 넘는다. 투기등급은 투자 위험이 큰 기업들을 묶은 분류로, 이들의 부도가 늘고 있다는 것은 기업 재무 상태가 전반적으로 나빠지고 있다는 신호다.


스테이트스트리트는 시장의 표면적 안정이 이런 취약성을 가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금의 낮은 스프레드는 경제가 큰 충격 없이 무난히 흘러갈 것이라는 낙관을 이미 반영한 수준으로 실제 기업 실적이 나빠지면 이를 버텨낼 여유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이 하락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있을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금리 변수가 더해졌다. 지난주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연례 경제 심포지엄에서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물가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내비쳤다. 

 

워시 의장은 미국 경제의 전반적 힘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여름철 물가 지표가 예상보다 나았을 뿐 근본적인 흐름이 뚜렷이 개선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소비자물가는 7월까지 1년간 3.4% 올라 여전히 2% 목표를 웃돌고 있다.


발언 직후 시장은 9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유력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금리 전망 도구를 보면 9월 0.25%포인트 인상 확률은 워시 의장 연설 전 3분의 1 수준에서 연설 뒤 절반을 넘어섰고 이후 60%대까지 올랐다. 


한편 미국과 이란 사이의 군사적 충돌이 다시 불거지며 에너지 가격이 뛴 점도 물가 압력을 키웠다. 지난달 말 미군이 이란의 미사일 발사대를 타격한 뒤 브렌트유는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고, 원유 수송의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 통항량은 급감했다.


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오래 유지되면 빚이 많은 기업들이 먼저 타격을 받는다. 스테이트스트리트는 실적이 나빠지는 와중에 자금 조달 비용까지 오르면 부채 부담이 큰 기업일수록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19 시기 초저금리 환경에서 빚을 낸 기업들이 만기 도래로 더 비싼 이자에 돈을 다시 빌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시장에는 서로 다른 두 신호가 공존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부실기업의 자금줄이 마르고 부도율이 오르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시장 전체 스프레드가 역사적 저점에 머물러 있다. 스테이트스트리트는 올 하반기에 경기 침체가 오지 않더라도 신용시장 일부에서 의미 있는 부도 사이클이 나타날 만한 조건이 갖춰져 있다고 진단했다.

 

(썸네일 사진 출처: 롱뷰 이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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