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내부에서 시장과의 소통 방식을 놓고 균열이 표면화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지난 6일 이탈리아 중앙은행이 로마에서 주최한 통화정책 콘퍼런스에서 '포워드 가이던스'가 여전히 유효한 정책 수단이라고 밝혔다.
새 의장 케빈 워시가 이 관행을 의도적으로 뒷전으로 밀어내는 흐름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이다.
포워드 가이던스란 중앙은행이 앞으로 금리를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시장에 미리 신호를 보내는 소통 방식을 말한다. 투자자와 기업이 그 신호를 보고 미리 대출과 투자 계획을 조정하기 때문에 실제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기도 전에 시중 금리와 경제 활동이 먼저 반응하는 효과가 있다.
월러는 이 수단이 제대로 쓰이면 정책 효과가 경제에 전달되는 속도를 앞당긴다고 설명했다. 그가 든 사례는 2021년 가을이다. 당시 연준은 앞으로 몇 달 안에 긴축에 나서겠다는 신호를 보냈고 실제 금리 인상은 2022년 3월에야 이뤄졌다.
그런데도 2021년 9월부터 이듬해 2월 중순까지 2년물 미국 국채 금리는 약 200bp(1bp는 0.01%포인트) 올랐다. 금리 인상이 경제에 영향을 주기까지 보통 12~24개월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리 보낸 신호가 그 시차를 약 6개월 단축한 셈이라는 것이 월러의 분석이다.
다만 그는 신호가 지나치게 경직되면 오히려 정책 전달을 가로막는다고 지적했다. 2020년 9월 연준은 물가가 2%를 얼마간 웃돌 것으로 예상되고 고용이 최대치에 이르렀을 때 금리를 올리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 문구는 물가가 빠르게 2%를 넘어서고 실업률이 급락하던 2021년 내내 바뀌지 않았고 '얼마간'이 언제까지인지 시장은 알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약속이 2021년 연준의 손발을 묶어 금리 인상을 불필요하게 늦췄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월러는 여러 경제 시나리오가 비슷한 확률로 놓여 있을 때도 포워드 가이던스가 힘을 잃는다고 했다. 그는 이를 노란 신호등 앞에 선 운전자에 빗댔다. 멈추거나 지나가야지 교차로 한복판에서 설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러 시나리오를 단순 평균 내 '기본 전망'으로 삼아 신호를 보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는 포워드 가이던스가 "과학이라기보다 예술에 가깝다"며 정책을 도운 적도 있지만 방해한 적도 있다고 평가했다.
월러의 발언은 워시 체제가 이 관행 자체를 축소하려는 시점에 나왔다. 지난 5월 취임한 워시는 6월 17일 자신이 주재한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정책 성명서에 담기던 향후 금리 방향 문구를 삭제했다.
금리는 연 3.50~3.75%로 동결됐지만 위원 18명 가운데 9명이 연내 최소 한 차례 인상을 예상하는 매파적 점도표가 함께 공개됐다. 점도표란 위원들이 각자 예상하는 금리 수준을 점으로 찍어 보여주는 도표다. 워시 본인은 개인 전망을 제출하지 않았다. 개별 예측이 정책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워시는 연준의 소통 방식과 대차대조표, 데이터 활용, 물가 판단 체계, 인공지능 시대의 생산성 등 다섯 개 분야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태스크포스 5개도 발족했다. 포워드 가이던스와 점도표의 존폐가 이 검토 대상에 포함되며 소통 담당 태스크포스의 외부 전문가 명단은 이달 중 공개될 예정이다. 최종 권고안은 연말께 나온다.
워시의 회의론은 국제 무대에서도 확인됐다. 그는 7월 1일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연례 포럼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 등과 나란히 포워드 가이던스에 회의적 입장을 밝혔다.
라가르드는 재임 중 포워드 가이던스에 얽매인 것이 한 가지 후회로 남는다고 말했다. 워시는 7월 말 회의에서 금리를 올릴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데이터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답만 내놨다.
두 사람의 시각차는 시장 해석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월러는 시장이 연준의 대응 방식을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대응 원칙이 명확히 정의되고 잘 이해된다면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25년 하반기에는 고용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를 지지했으나 이날은 노동시장이 안정 조짐을 보여 정책 초점이 물가로 옮겨갈 수 있다고 했다. "위험이 완전히 뒤집혔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지난달 물가는 2023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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