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으로 2008년 미국 주택시장 붕괴를 예측해 큰 수익을 올린 투자자 마이클 버리가 AI 열풍에서 소외된 종목들로 베팅을 확대하고 있다. 버리는 12일(현지시간) 자신의 유료 뉴스레터 플랫폼 서브스택에 글을 올려 알리바바 어도비 페이팔 비바시스템즈 네 종목의 보유 비중을 늘렸다고 밝혔다.
버리는 시장이 탄탄한 실적과 적은 부채를 가진 대형 우량 기업들의 주가를 오히려 외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가 주목한 기업들은 벌어들이는 현금이 많고 자사주 매입에 적극적인 곳이다.
자사주 매입은 회사가 시장에서 자기 회사 주식을 사들여 소각하는 것으로 전체 주식 수가 줄어 남은 주주가 가진 주식 한 주의 가치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버리는 이런 기업들이 주가 측면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는 이유로, 투자 자금이 AI 관련주로 쏠리고 있는 데다 AI가 모든 산업을 휩쓸 것이라는 극단적 시나리오가 과도하게 반영된 점을 꼽았다.
어도비에 대해 버리는 회사의 매출총이익률이 역대 최고 수준에 가깝다는 점을 들어 주가가 깊이 저평가됐다고 봤다. 매출총이익률은 제품을 팔아 남기는 이익의 비율로, 어도비의 경우 약 89%에 달해 소프트웨어 업종 평균을 크게 웃돈다.
어도비는 하루 전인 11일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분기 매출 66억2000만달러로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고 연간 실적 전망치도 상향했다. AI 우선 전략에서 나오는 연간반복매출이 1년 만에 세 배로 늘어 5억달러를 넘어섰다. 다만 어도비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댄 던이 15일자로 회사를 떠난다는 사실도 함께 공개됐다.
어도비는 앞서 4월 향후 4년간 25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는 프로그램을 승인한 바 있다.
알리바바에 대해서는 중국 기업 가운데 AI 전략이 가장 앞서 있고 꾸준히 자사주를 사들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버리는 시장이 당장은 이를 보상하지 않더라도 가치가 일반 주주에게 계속 쌓이고 있으며, 때가 오면 주가가 빠르게 솟구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다른 홍콩 증시 상장 종목들도 함께 보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알리바바는 2027년 3월까지 191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 여력을 남겨두고 있으며 클라우드와 AI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막대한 투자 부담으로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등 단기 수익성은 압박을 받는 상황이다. 알리바바 주가는 10일 기준 115.38달러로 지난해 10월 고점 대비 크게 내려와 있다.
페이팔에 대해 버리는 경영진 교체가 주가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페이팔은 올해 들어 최고경영자(CEO)가 엔리케 로레스로 바뀌고 사업 조직을 세 부문으로 단순화하는 등 대대적인 개편을 거쳤으며 일부 핵심 임원이 잇따라 회사를 떠났다.
버리는 페이팔이 연간 수천억달러 규모의 결제를 처리하는데도 주가가 순이익의 7~8배 수준에 머물러 있어 사모펀드나 전략적 인수자 모두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또 회사가 공격적으로 자사주를 사들이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페이팔은 최근 1년간 약 1억주를 매입해 주주에게 60억달러를 돌려줬다. 버리는 시장이 수년째 페이팔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지만 정작 시신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비유로, 우려가 과도하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비바시스템즈에 대해서는 주가가 다시 저점까지 내려와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매출비율이 역사적 수준을 크게 밑돈다고 평가했다. 비바시스템즈는 제약·생명과학 기업에 특화된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회사로 같은 분야에 뛰어든 세일즈포스와의 경쟁이 위협 요인으로 거론돼 왔다.
버리는 세일즈포스와의 경쟁이 비바 사업의 일부에만 해당하는 문제이며 그 의미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봤다.
실제로 비바 매출의 절반 이상은 임상·규제·안전 등 FDA 규제를 받는 개발 부문에서 나오는데, 이 영역은 한 번 도입하면 다른 시스템으로 바꾸기 어려워 경쟁사가 파고들기 쉽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바는 2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진행 중이며 60억달러의 순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버리는 앞서 4월부터 팔란티어 공매도와 엔비디아 풋옵션 등 AI 대표주에 대한 하락 베팅을 유지하는 한편 저평가된 기업용 소프트웨어 종목으로 자금을 옮겨왔으며 이번 발표는 그 연장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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