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명한 케빈 워시(56)가 15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에 공식 취임했다. 워시는 13일 상원에서 찬성 54표 반대 45표로 인준됐다.
현대 역사상 가장 표 차이가 적었던 의장 인준이다. 민주당에서는 존 페터먼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 한 명만 찬성표를 던졌다. 워시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연준 이사를 지냈고 8년간 의장을 맡았던 제롬 파월의 후임으로 17대 의장 자리에 올랐다.
취임 시점부터 시장은 새 의장을 거칠게 시험하고 있다. 글로벌 매크로 전략가 다리오 퍼킨스는 과거 사례를 분석한 결과 새 연준 의장이 취임하면 시장이 그 자질을 시험하는 흐름이 거의 예외 없이 반복돼 왔다고 지적했다.
바클레이스 분석에 따르면 새 의장 취임 후 첫 달 주가는 평균 5% 가량 하락하고 3개월이 지나면 낙폭이 13%까지 확대됐다. 국채 금리도 취임 후 6개월간 오르는 경향이 뚜렷했다. 퍼킨스는 시장이 의장을 시험하는 게 아니라 매파적 신뢰를 빨리 쌓으려는 새 의장이 시장을 시험하는 구조라는 해석을 내놨다.
워시의 등장이 채권시장에 던진 충격은 컸다. 15일 만기 30년 미 국채 금리는 8.6~11bp(1bp는 0.01%포인트) 급등해 5.1% 부근까지 치솟았다. 2025년 5월 이후 최고치다. 13일에는 250억달러 규모의 30년물 입찰에서 낙찰 금리가 5.058%로 결정됐다.
30년 만기 국채를 5%대 금리로 발행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같은 날 10년물 금리는 4.55~4.59%까지, 2년물은 4.06~4.08%까지 올랐다. 단기 금리에 해당하는 2년물이 연준이 정한 기준금리 상단(3.75%)을 넘어선 것은 현재 금리 수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에 부족하다고 시장이 판단하고 있다는 신호다.
문제의 핵심은 다시 거세진 물가다. 미국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3.8% 올라 전망치(3.7%)를 웃돌았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는 2.8%로 약 3년 만의 최고치다.
도매 물가에 해당하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6.0% 급등해 2022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2월 이란과의 전쟁이 시작된 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운송이 거의 마비된 영향이 크다. WTI 유가는 배럴당 102달러, 브렌트유는 107달러를 넘었고 미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50달러를 웃돌고 있다.
이런 환경 탓에 시장은 워시 취임 전부터 금리 인하 기대를 빠르게 거둬들였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기준 연내 금리 인상 확률은 한때 60%를 넘어섰고 14일에도 12월 25bp 인상 가능성은 38%를 웃돌았다.
6월 16~17일 열리는 워시 체제의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가 동결될 확률은 97%로 집계됐다. 한 달 전만 해도 시장이 3차례 인하를 점치고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힌 셈이다.
워시는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박을 대놓고 받아온 인물이다. 그러나 인준 청문회에서는 대통령이 특정 금리 결정을 미리 약속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으며 설사 요구하더라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무디스의 마크 잔디는 현재 물가 환경에서는 워시가 금리 인하 지지를 얻기는커녕 동결 유지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금리 인하를 기치로 임명된 워시가 첫 임무로 오히려 인상을 검토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전임자인 파월은 의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이사직은 유지한다. 임기가 2028년 1월까지 남은 데다 트럼프 행정부가 연준 본부 리노베이션 사업과 관련해 그를 겨냥해 진행한 형사 조사가 이번 인준 과정과 연계되어 논란을 빚었기 때문이다.
해당 수사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측 검사가 워시 청문회 직후 갑작스레 종결시켰다. 의장직을 떠난 인물이 이사회에 남는 것은 80년 만의 일이다. 워시가 12명으로 구성된 FOMC에서 매번 전 의장과 한 테이블에 앉아 표를 행사해야 한다는 의미다.
워시는 인플레이션 대응을 최우선에 두고 연준의 대외 메시지를 줄이며 중앙은행의 역할 범위를 좁히겠다는 구상을 밝혀왔다. 6.7조달러까지 불어난 연준 자산을 축소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한편 AI 확산이 물가를 끌어내리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금리 인하 여지를 시사한 발언도 있어 향후 행보의 방향을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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