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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막히자 사우디·UAE "딴 길 뚫겠다"…7조 드는 우회로, 현실은

  • 고건 기자
  • 입력 2026.04.0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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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지 한 달여가 지난 현재, 걸프 산유국들이 새로운 해법을 꺼내들었다.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석유와 가스를 수출할 수 있는 새 파이프라인을 짓겠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 "너무 비싸고 복잡하다"며 아무도 손대지 않았던 계획이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추진될 가능성도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폭 54km의 좁은 수로다. 전 세계 원유 해상 거래량의 약 25%,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석유가 이곳을 통과한다. 카타르 LNG(액화천연가스) 수출의 거의 전량도 이 해협을 지난다. 문제는 이란이 이 길목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란은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해협을 통과하려는 선박에 제한을 가하기 시작했고, 현재 하루 통과 선박 수는 전쟁 전 86척에서 5척 안팎으로 급감한 상태다.

 

East-West_crude_oil_pipeline.svg.png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 파이프라인(East-West Pipeline)'이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호르무즈를 우회할 목적으로 건설된 이 파이프라인은 사우디 동부 아브카이크 원유 처리 시설에서 홍해 항구 얀부까지 1200km를 가로지른다.

 

설계 용량은 하루 500만 배럴이었으나 2019년 아람코 시설에 대한 후티 드론 공격 이후 일부 천연가스액 파이프라인을 원유 수송으로 전환해 최대 700만 배럴까지 늘렸다.

 

이 파이프라인은 2026년 3월 11일 마침내 최대 용량으로 전환돼 풀가동에 들어갔다. 아람코 최고경영자 아민 나세르는 3월 10일 실적 발표 콜에서 "며칠 안에 최대 용량에 도달할 것"이라고 밝혔고, 실제로 얀부 항에서의 원유 수출은 3월 첫 열흘 동안 하루 평균 220만 배럴로 2월(110만 배럴)의 두 배 수준으로 치솟았다. 

 

현재 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하루 최대 500만 배럴이 수출되고 나머지 200만 배럴은 사우디 서부 해안 정유시설로 보내진다.

 

UAE도 자체 우회 인프라를 운영 중이다. 아부다비 원유 파이프라인(ADCOP·Abu Dhabi Crude Oil Pipeline)은 아부다비 내륙 유전 하브샨에서 오만만의 후자이라 항까지 380km를 연결하며 하루 150만 배럴 처리 능력을 갖췄다. 


글로벌 상품정보업체 클레플러의 분석에 따르면 이 파이프라인은 현재 71% 수준으로 가동 중이며 비상시 180만 배럴까지 끌어올릴 여지가 있다. 후자이라의 원유 수출량은 3월 들어 하루 162만 배럴로 2월(117만 배럴) 대비 38% 증가했다.


그러나 이 두 파이프라인이 호르무즈 봉쇄를 대체하기엔 수치가 맞지 않는다. 평시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원유는 하루 약 2000만 배럴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현재 사우디 동서 파이프라인과 UAE ADCOP를 합산한 추가 가용 용량을 하루 350만~550만 배럴로 추정한다. 단순 계산으로도 1500만 배럴가량의 공백이 채워지지 않는다.

 

또 다른 한계도 있다. 동서 파이프라인을 원유 전용으로 최대 가동하면 병행 운영하던 천연가스액 수송 기능을 포기해야 한다. 에너지 컨설턴트 엘런 왈드는 "원유를 최대로 보내면 가스나 석유제품은 함께 운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얀부 항의 실제 하역 처리 능력은 하루 약 300만 배럴로 알려져 있어 파이프라인 설계 용량인 700만 배럴 전량을 수출로 연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에너지 리서치업체 라이스타드에너지는 "UAE 루와이스 정유단지의 석유제품 수출은 여전히 호르무즈 의존 선박 운송에 묶여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위협은 이란의 공격이다. 3월 중순 이란의 드론 공격이 후자이라 항 터미널에 여러 차례 가해지며 저장 탱크에 화재가 발생했고, ADCOP의 하역 운영이 일시 중단됐다. 얀부 역시 이란 미사일 공격을 받은 전력이 있다. 

 

에너지 분석가 게오르기 볼로신은 "파이프라인과 펌프 시설은 고정된 고가치 목표물"이라며 2019년 동서 파이프라인 펌프 시설이 후티 드론에 피격돼 일시 운용을 멈춘 사례를 상기시켰다.

 

홍해 경로도 안전하지 않다. 얀부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원유는 예멘과 지부티 사이의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후티 세력이 이란 지지 의사를 밝히며 재공격 준비를 거론하고 있어 호르무즈를 피한 원유가 또 다른 해협에 막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우디는 한 병목을 피해 다른 병목 앞에 서있는 셈이다.


그래서 과거엔 비용과 복잡성을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던 신규 파이프라인 건설 논의가 다시 떠올랐다. 사우디 동서 파이프라인의 주요 시공사 캣그룹의 크리스토퍼 부시 최고경영자는 "걸프 정책 입안자들이 이 문제를 이제 긴급 사안으로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서 파이프라인 건설 당시 사우디 서해안 히자즈 산맥의 현무암 지형을 폭파하며 공사했는데, 같은 규모의 파이프라인을 지금 다시 짓는다면 최소 50억 달러(약 7조원)가 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라크에서 요르단, 시리아, 또는 터키를 거치는 복잡한 노선은 150억~200억 달러(21조~28조원)로 비용이 급등하고 안보 리스크와 험준한 지형 문제도 따른다. 대서양위원회 중동 프로그램 수석 고문 마이순 카파피는 단일 대안 파이프라인보다 여러 경로가 얽힌 '회랑 네트워크'가 가장 회복력 있는 옵션이라고 설명했다.


단기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는 기존 인프라 확장이다. 사우디 동서 파이프라인 용량을 더 늘리거나 UAE의 후자이라 노선 처리 능력을 키우는 방안이 우선 검토된다. 

 

UAE ADNOC는 후자이라에 이미 4200만 배럴 규모의 지하 저장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아부다비 유전 지역 제벨 다나 항에서 후자이라까지 연결하는 500km 신규 파이프라인도 2026년 개통 예정으로 별도 추진 중이다.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는 독자적인 우회 파이프라인이 없어 사우디아라비아를 경유하거나 이라크 북부를 거쳐 터키 세이한 항으로 빠지는 이라크-터키 원유 파이프라인(하루 최대 160만 배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다만 이라크 남부 바스라 유전은 이 북부 파이프라인과 내륙을 연결하는 경로가 없어 현재 저장 탱크가 가득 찬 상태에서 생산 자체를 멈추고 있다.

 

IEA는 현재 사우디와 UAE 파이프라인을 통한 대체 수출 가용 용량을 하루 350만~550만 배럴로 보고 있다. 호르무즈 봉쇄 이전 같은 규모의 물량을 이 경로로 대체하려면 지금 가용 용량의 4배가 필요하다.

 

더 장기적인 구상으로는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23년 G20 뉴델리 정상회의에서 미국 주도로 발표된 이 프로젝트는 인도에서 UAE, 사우디, 요르단, 이스라엘을 거쳐 유럽까지 철도, 항만, 파이프라인을 연결하는 구상이다. 가자 전쟁 이후 사실상 중단됐던 이 계획이 호르무즈 위기를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특히 이스라엘 하이파 항을 지중해 관문으로 활용하는 에너지 수출 경로가 구체적인 옵션으로 거론된다. 인도 모디 총리도 최근 이스라엘 방문에서 IMEC와 I2U2(인도·이스라엘·UAE·미국 4개국 협력체) 협력 강화를 촉구했다. 다만 현재 중동 전역의 긴장 상태에서 IMEC의 단기 실현 가능성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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