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비 시장이 긴 침체의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왔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다만 정책당국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다시 꺼내 들 정도로 급박한 상황 또한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올해 9일간 이어진 춘제(음력 설) 연휴 소비 지표가 시장 예상보다 양호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연휴가 마무리된 직후 발표된 공식 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인 소비 활동은 전반적으로 증가했다. 호텔 예약과 면세 쇼핑, 철도 이용객 수가 모두 늘었다. 하루 철도 이용객은 1,870만 명을 넘기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행 횟수는 전년 대비 하루 평균 5.7% 증가했고 전체 소비 지출은 5.5% 늘었다. 증가율은 작년의 7%보다는 둔화됐지만 여전히 플러스 성장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최근 베이징 당국이 시행한 소비 지원책이 일정 부분 효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국영 금융그룹 계열 증권사는 보고서를 통해 연휴 소비 흐름이 기대를 웃돌았다고 발표했다.
특히 여행과 공연, 테마파크 같은 체험형 소비가 전통적인 상품 구매보다 더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중국 내 소비 구조가 물건에서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의 소매판매는 팬데믹 이후 좀처럼 탄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미국이 현금 지원을 직접 지급하며 소비를 끌어올린 것과 달리 중국은 교체 구매 보조금이나 소비 쿠폰 등 간접적 방식에 집중했다. 최근에는 소비자의 소득과 고용 안정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다음 주 개막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정치협상회의, 이른바 ‘양회’가 주목받고 있다. 리창 국무원 총리는 3월 5일 정부 업무보고를 통해 올해 경제 성장 목표와 정책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시장은 연휴 소비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한 점진적이고 표적화된 완화 조치가 나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전면적인 대규모 부양책이 등장할 가능성은 낮다.
소비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지갑이 완전히 열린 것은 아니다. 관광 1회당 평균 지출액은 전년 대비 0.2% 감소했다. 여행 횟수는 늘었지만 개인당 씀씀이는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이는 중국 경제에 남아 있는 디플레이션 압력을 보여주는 지표이며, 가격 상승 압력이 약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여전히 예산을 의식하며 지출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의 애널리스트는 연휴가 길어지면서 소비 심리가 일부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비용에 민감한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올해 연휴를 작년보다 하루 더 늘렸다. 많은 직장인이 개인 휴가를 덧붙여 장기 여행에 나섰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은 추가 소비도 적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 최대 호텔 체인 중 하나인 H 월드 그룹은 연휴 기간 가족 단위 여행이 뚜렷하게 늘었다고 밝혔다. 가족 여행 증가로 대형 객실과 가족 친화형 객실 수요가 확대됐다는 설명이다.
이 회사는 중국 본토에서 30여 개 브랜드, 1만2천 개가 넘는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연휴 기간 객실 점유율이 90%를 넘은 상위 10개 도시는 모두 남부나 해안 지역에 집중됐다. 열대 휴양지인 하이난성 싼야도 포함됐다.
하이난은 최근 면세 정책 확대의 수혜를 입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하이난에 대한 무관세 정책을 확대해 내륙 소비자들의 면세 명품 구매를 장려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연휴 기간 하이난 면세 매출은 전년 대비 30.8% 증가한 27억2천만 위안, 약 4억 달러에 달했다. 해외 대신 국내에서 명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려는 정책이 일정 부분 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알리바바 계열 여행 플랫폼 플리기는 연휴 기간 호텔과 테마파크 패키지 예약이 작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신장 알타이, 윈난 푸얼처럼 상대적으로 외곽에 위치한 자연 관광지도 예약이 두 배 넘게 증가했다. 대도시뿐 아니라 지방 관광지까지 소비가 확산되는 흐름이다.
중국 정부는 서비스업 육성에도 힘을 싣고 있다. 국가통계국은 최근 소비자물가지수 산정에서 서비스 부문의 비중을 2020년 기준 대비 확대했다고 밝혔다. 이는 경제 구조가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통계에도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소비 회복이 지속되려면 결국 소득과 고용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한 중국 경제학자는 소비자들이 장기적인 수입 전망에 확신을 가져야 지출을 늘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책당국이 쿠폰과 지원금 등을 통한 단기적 소비 진작보다는 고용 안정과 임금 상승 같은 요인에 더 많은 비중을 둘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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