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 간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미 국채시장이 즉각 반응했다. 대통령이 연준 의장을 직접 해임할 수 있는지와 무관하게 연준의 독립성이 정치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신호 자체가 시장에 계속 풀리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정책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금융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경제정책 불확실성 지표가 상승하면 투자자들은 단기적으로 안전자산을 찾으며 국채로 몰리지만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면 오히려 장기 금리에 더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2025년 4월 트럼프가 연준을 공개적으로 압박하던 시기에도 10년물 미 국채금리는 단기간 3.8%대까지 급락한 뒤 곧바로 반등했다. 당시 금리 하락은 안전자산 선호에 따른 일시적 반응이었고, 이후에는 정책 신뢰 훼손 가능성이 부각되며 장기 금리가 다시 상승했다.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이 현상을 정책금리 전망이나 인플레이션 기대와는 별도로 불확실성 그 자체가 장기금리 하락을 제약하거나 오히려 반등 요인으로 작용한 사례로 해석했다.
역사적 사례도 있다. 1970년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연준에 통화 완화를 압박하며 중앙은행 신뢰가 훼손됐던 시기, 미국은 고물가와 함께 장기금리가 급등하는 국면을 겪었다. 2013년 테이퍼 텐트럼 당시에도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이라는 정책 신호 하나로 10년물 금리가 한 달 만에 1%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시장은 연준이 정치적 압력이나 예측 불가능한 정책 변화에 노출될 가능성을 가장 민감하게 가격에 반영해왔다. 현재 국채시장의 움직임도 이 연장선에 있다.
미 국채 수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연기금과 보험사는 자산과 부채의 만기를 맞추기 위해 장기채를 보유하는 것이 기본 전략이지만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금리 변동성 확대가 손익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최근처럼 10년물 금리가 4~5% 수준에 형성된 환경에서는 단기 국채나 현금성 자산만으로도 충분한 이자 수익을 확보할 수 있어 굳이 변동성이 큰 장기채 비중을 늘릴 유인이 크지 않다.
해외 중앙은행 역시 자국 성장률 대비 높은 이자 수익을 이유로 미 국채를 보유해왔지만 정책 신뢰 훼손 가능성이 부각될 경우 위험 대비 보상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중국의 미 국채 보유 규모는 2025년 기준으로 2009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감소했다.
헤지펀드의 움직임은 보다 직접적이다. 글로벌 매크로 헤지펀드들은 파월 의장 교체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한 이후 단기물 매수와 장기물 매도를 동시에 수행하는 이른바 스티프너 거래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단기금리는 인하 기대에 따라 하락하고, 장기금리는 연준 독립성 훼손에 따른 인플레이션 위험 프리미엄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에 기반한 전략이다. 실제로 2년물 국채금리는 하락 압력을 받는 반면 10년물과 30년물 금리는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며 금리차가 확대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국채 경매에 참여하는 일반 딜러들의 입장도 부담이 커졌다. 연준이 양적긴축을 통해 국채를 순매도하는 환경에서는 신규 발행 물량을 민간이 소화해야 하는 비중이 커지는데 장기금리가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될 경우 딜러들은 재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게 된다.
해외 공식기관과 헤지펀드의 수요가 약화될수록 그 부담은 딜러들에게 전가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연준 의장 교체 가능성이라는 정치적 변수는 장기금리 하방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케빈 해싯, 크리스토퍼 월러, 케빈 워시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정책적 코드 일치 여부나 통화정책 완화 성향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연준의 통화정책은 의장 개인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며 연방공개시장위원회라는 합의 기구를 통해 운영된다. 새 의장이 취임하더라도 단기간에 극단적인 통화 완화로 전환되기는 어렵다는 점도 시장에 반영돼 있다.
그럼에도 연준 지도부 교체 가능성 자체만으로도 단기금리 인하 기대와 장기금리 상승 우려가 동시에 가격에 반영되며 금리 곡선의 형태를 변화시키고 있다. 파월 해임설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그 가능성에 대비한 기관투자자들의 포지션 조정은 이미 수개월째 진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2년물과 10년물, 30년물 국채 간 금리 격차는 확대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정책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기 전까지 장기금리의 의미 있는 하락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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